[사설] ‘피의자 윤석열’, 한심하고 참담

조선일보 2024. 12. 9.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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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현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장이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수사 관련 브리핑 전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표결 불참으로 부결됐지만, 윤 대통령 거취를 둘러싼 상황들은 더 긴박해지고 있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장은 8일 윤 대통령을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현직 대통령을 향해 피의자라고 공개적으로 명명한 것 자체가 상황의 심각성을 설명해 준다. 특수본부장은 이번 계엄 사태에 대해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국헌문란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것”이라고 규정했다. 경찰이 “검찰과 합동수사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힌 것 역시 혐의 입증에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비친다. 공수처는 검찰과 경찰에 이번 사건을 자신들에게 이첩하라고 요청했다. 헌법상 내란·외환죄가 아니면 형사 소추될 수 없는 현직 대통령을 향해 수사 기관들이 경쟁적으로 달려들고 있다.

윤 대통령은 탄핵 표결 직전 대국민담화에서 “저의 임기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면서도 조기 퇴진하겠다는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대통령의 거취라는 중대 문제를 여당에 떠넘기는 것 자체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대통령이 자신에게 닥쳐오는 상황의 심각성과 긴박함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을 뿐, 어떤 실효적인 계획과 내용은 없었다. 무엇보다 현직 대통령이 직을 유지한 상황에서 무슨 법적 권한으로 총리와 여당 대표가 이른바 ‘책임총리제’로 국정 운영을 할지 논란만 커졌다. 국민의힘은 탄핵안에 이어 정국 수습 방안을 놓고도 내분이 커지는 등 마비 상태에 빠졌다. 한 대표가 대통령 직무정지 불가피를 강조했지만 탄핵 반대 당론은 유지됐다. 탄핵에 반대한다면 투표에 참여해 반대 의사를 표시하면 되는데, 집단 표결 불참이라는 떳떳하지 못한 방법을 택한 것도 자신들의 선택에 명분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 정치적 혼란은 있었지만 국가 신인도와 경제에 큰 타격이 없었던 것은 ‘예측 가능성’ 때문이었다. 국회의 탄핵과 헌법재판소의 결정, 그리고 대선이라는 시간표가 제시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당장 내일, 다음 주에 무슨 일이 발생할지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렵다. 여권이 극단적인 분열 상황을 몰고올 탄핵만은 피하고 싶다면 ‘질서 있는 퇴진’의 구체적인 방법론과 시간표를 빠른 시간내에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대통령에게도 여당에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민주당 역시 함께 지혜를 모으는 책임 있는 자세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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