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배’ 러시아·이란 발 빼자... 시리아 정부군 바로 무너졌다
중동의 악명 높은 독재자로 2011년 ‘아랍의 봄’ 때도 살아남았던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수도 다마스쿠스로 밀고 들어간 반군에게 밀려나 정권을 사실상 잃었다. 민주화 운동이었던 ‘아랍의 봄’ 이후 시리아는 종교·민족·지정학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내전으로 치달았고 이후 교전과 일시적 휴전이 반복돼 왔다. 긴 시리아 내전은 왜 갑자기 ‘알아사드 축출’이란 새 국면을 맞게 됐을까. 반군은 누구이고 어떻게 갑자기 수도까지 장악했을까. 시리아 정부 붕괴와 관련한 궁금증을 다섯 문답으로 풀었다.
◇Q1. 시리아 내전은 왜 시작됐나
‘아랍의 봄’ 당시 폭정에 저항하는 시위를 알아사드가 무력 진압한 후 반(反)정부 폭동에 이어 반군이 조직되며 내전이 시작됐다. 하지만 반군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친서방 온건 세력,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등으로 갈라지며 정부군에 제대로 맞서지 못했다. 혼란을 틈타 이슬람국가(IS) 같은 극렬 테러 단체가 발호하고, 미국·러시아·이란·튀르키예 등 열강과 주변 강국들이 자국 이해관계에 따라 개입하면서 초기 민주화 운동의 취지는 잊힌 복잡한 내전으로 비화했다.
◇Q2. 바샤르 알아사드는 누구인가
2000년 취임한 시리아의 6대 대통령이다. 아버지인 하페즈 알아사드(1971~2000년 재임)가 사망한 직후에 대통령직을 세습받은 독재자다. 취임 직후엔 과감한 개혁 과제를 추진하기도 했지만, 곧장 장기 집권 토대를 만들기 위한 선대의 ‘철권통치’를 답습했다. 비판적 언론인과 인권 운동가들을 체포하며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막았고, 반정부 인사와 반군을 전기 고문하고 성폭행하는 등 인권 탄압을 일삼았다. 민주화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는 다마스쿠스 근처 반군 지역에 사린가스·염소가스 등 화학 무기를 살포하며 국제사회의 공분을 샀다. 시위가 내전으로 확대되자 권력 유지를 위해 러시아와 이란에 의탁, 시리아 내전을 국제적 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장본인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내전 발발 이래 지금까지 62만명이 숨졌고, 600만명이 넘는 난민이 시리아를 떠났다. 아사드는 국제사회의 비난과 여러 차례 위기에도 권력을 유지하며 ‘중동의 불사조’ 소리를 듣기도 했다.
◇Q3. 이런 아사드를 몰아낸 반군은 어떤 단체인가
시리아엔 크고 작은 반군이 여럿 있다. 7일 수도 다마스쿠스를 장악한 반군의 구심은 시리아 북서부에 기반을 둔 이슬람 무장 조직 하야트타흐리르알샴(HTS)이다. 이들은 시아파 계열인 알아사드 정권을 축출하고 시리아를 수니파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운다. 이슬람 무장 세력인 알카에다 하부 조직으로 2011년 시리아에 만들어진 ‘알누스라 전선’이 전신(前身)이지만, 2016년 알카에다와 관계를 공식적으로 단절하고 2017년 독립 조직으로 분리했다. 이후 여성의 히잡 착용 의무화를 완화하는 등 비교적 온건 노선을 택해 주로 시리아 북서부를 중심으로 세를 불려 최대 반군으로 성장했다. 이런 ‘변신’ 시도에도 미국은 2018년 이들이 여전히 알카에다와 연계됐다고 판단하고 테러 조직으로 지정하고 있다. AP는 “HTS는 자신들이 알카에다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서방 세계에 테러 조직 지정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극단주의 무장 단체보다는 합법적 민간 정부로서 정체성을 강조하려고 노력 중이라고는 해도 이들의 기본 성향이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분석했다.
HTS를 돕고 있는 또다른 반군 세력으로는 수니파 반군 시리아국가군(SNA)이 있다. 역시 알아사드 정권을 전복하고 샤리아(이슬람 율법)의 지배를 받는 이슬람 국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SNA는 튀르키예에서 무기와 자금을 지원받는다고 알려졌다(튀르키예 정부는 부정한다). 이 밖에 ‘아랍의 봄’ 이후 미국 등의 지원을 받으며 북동부에서 활동해 온 쿠르드족 반군이 동부 지역에서 남하하고 다마스쿠스 남부의 지역 반군들도 북진하면서 시리아 정부에 부담이 되고 있다.
◇Q4. 반군은 어떻게 갑자기 진격해 다마스쿠스까지 점령했나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해온 러시아·이란이 시리아 지원을 줄이면서 정부군의 힘이 갑자기 빠진 것이 원인이 됐다. 옛 소련 때부터 시리아와 수교를 맺어온 우방국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벌이는 전쟁이 3년 가까이 이어지며 시리아 지원을 전처럼 이어가기 어려워졌다. 러시아는 반군이 공세를 시작한 최근에도 최소한의 지원만 했다고 전해졌다. 지중해 내 거점으로 활용해 온 시리아 서부 타르투스 해군 기지에서 러시아 군함을 철수시켰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란 및 이란이 후원하는 레바논의 이슬람 무장 단체 헤즈볼라 역시 이른바 ‘초승달 벨트’라고 하는 이슬람 시아파 동맹이라는 이유로 시리아를 지원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이후 이어져온 이스라엘과 하마스(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무장 세력) 간 전쟁이 이란·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전쟁으로 치닫는 등 전선이 확대되면서 자국 상황에 몰두할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헤즈볼라는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가 지난 9월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한 후 조직이 약화됐다.
◇Q5. 앞으로 시리아는 어떻게 되나
시리아 내전은 지금까지 미국 등 서방 세계와 러시아 등 권위주의 세력의 대리전 구도로 진행돼 왔다. 그러나 지난달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가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분쟁은 개입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할지는 불투명하다. 트럼프는 7일 “시리아는 엉망이지만 우리 우방은 아니며, 미국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내전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처럼 미국과 러시아·이란 등의 개입이 어려운 상황을 틈타 튀르키예가 시리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려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7일 “(반군이) 다마스쿠스까지 사고나 재난 없이 계속 진군하기 바란다”며 반군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표시했다. 이러면 반군이 승기를 잡고 나서 극단주의 이슬람, 튀르키예와 오래전부터 대립해 온 쿠르드족, 친(親)튀르키예 세력 등으로 분산된 반군 사이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제2 내전이 벌어질 우려도 있다.
알아사드가 러시아 발표대로 이미 시리아 밖으로 나갔다면 다른 망명 독재자들처럼 나라 밖에서 여생을 보낼 가능성이 크다. 만에 하나 다마스쿠스에 남아 있다면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
최근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한 시리아 반군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이슬람 무장조직. 아랍어로 ‘레반트(서아시아 지중해 연안 지역) 해방 기구’를 의미한다. 2011년 알카에다의 분파인 ‘알누스라 전선(자바트 알누스라)’에서 출발했으나 2016년 알카에다와의 관계를 끊었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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