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활동 뒤 논문써야 졸업…스웨덴의 ‘풀뿌리 지·산·학’
- 성공적 모델 ‘트리플 헬릭스’
- 스웨덴 왕립공과대 등 학계가
- 산업계와 협력해 신기술 개발
- 상업화 통해 국가산업에 기여
- 스웨덴의 실리콘 밸리 ‘시스타’
- 유럽 최대규모 ICT 클러스터
- 연구 관련 인력만 2000여 명
-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루 포진
- 앵커기업이 구심점 역할 리드
스웨덴의 성공적인 산학협력 형태로 잘 알려진 ‘트리플 헬릭스 모델(Triple Helix Model)’은 스웨덴 혁신 생태계 발전에 주요한 역할을 한다. 학계 산업계 정부가 협력해 국가 혁신을 촉진하는 모델로, 각 주체가 각자 역할을 넘어 상호작용을 하며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협력 체계의 중심에는 대학이 있다. 스웨덴 왕립공과대학교(KTH)나 찰머스 공대와 같은 학계가 산업계와 협력해 신기술을 개발하고 상업화하면서 직접적인 기여를 하는 식이다. 스타트업과 스핀오프 기업도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산업계도 대학과 함께 새로운 기술을 현장에 적용한다. 에릭슨 스카니아 아스트라제네카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대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스톡홀름 인근 기술 클러스터 ‘시스타 사이언스 시티(시스타·KISTA)’에서는 ICT분야에서 대학과 기업의 기술 개발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산학의 적극적 협력과 성과가 스웨덴의 기술 경쟁력을 만드는 셈이다. 시스타에서 KTH 교수로 산학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성기원 교수를 통해 현지 제도 운용 방식을 살펴보았다. 부산에서 지·산·학(지자체·산업계·학계)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부산테크노파크 김형균 원장, 김현식 지산학협력단장과 동행했다.
▮기업에서 졸업학기, 산학 교두보

지난 10월 방문한 스웨덴 시스타 내 KTH 캠퍼스에선 ‘Degree Project Fair(졸업 논문 박람회)’가 한창이었다. KTH의 경우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려면 학교 외부에서 졸업 논문을 써야 한다. 학생들 대부분은 스톡홀름에 있는 기업에서 이를 수행한다. 기업이 학생에게 프로젝트 기회를 제공하고, 이에 참여한 학생은 기업에서의 업무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논문을 작성하는 식이다. 우리나라의 산학협력과 유사하지만 대부분의 학생이 거치고, 학점 비중이 높다는 점(석사 120 학점 중 30 학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날 현장에서도 다양한 글로벌 기업 담당자가 나와 학생들과 소통하며 기업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KTH 성 교수는 “해당 프로젝트는 ‘풀뿌리 산학협력’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장에서 이뤄지는 기초적인 산학협력 방식으로 기업과 학생 모두에게 성장할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가령 기업은 프로젝트를 통해 인력이나 역량 부족으로 다루지 못했던 문제에 접근하고, 미래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기대 효과는 크다. KTH와의 협력 통로를 마련하고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볼 기회도 생기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실제 현장에서 문제에 접근해보며 업무 역량을 키우고, 취업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협력이 원활하려면 매개 역할이 중요하다. 매년 기업이 얼마나 많은 프로젝트 기회를 제공할 지 알 수 없고, 학생들의 관심사가 어떤지 정확히 파악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성 교수는 “스웨덴은 학비도 없고 복수 전공도 많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케이스가 다양해 그 해 몇 명이 논문을 쓸지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일일이 조율하는 과정이 복잡하지만, 한편으론 그것이 또 하나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현장에 동행한 김 원장은 “신기술이 필요한 분야의 부산 기업과 대학에 적용해 볼 만한 모델”이라며 “구체적 방안은 고민이 필요하지만 일부 현장에서 구현해보겠다”고 말했다.
▮40년 된 기술 클러스터 ‘시스타’
스웨덴의 ‘실리콘 밸리’라 불리며 유럽에서 가장 큰 ICT 클러스터로 꼽히는 시스타에는 에릭슨 IBM 노키아와 같은 글로벌 ICT 기업이 포진하고 있다.
약 1000개의 기술 회사와 3만2500명의 직원이 상주하는데, 이 가운데 ICT 기업에 근무하는 직원은 2만 명이 넘는다. 박사급부터 학생까지 연구 관련 인력은 2000여 명이다.
1970년대 스웨덴 내 연구 클러스터를 만들자는 논의가 나오면서 시스타 조성은 시작됐다. 1977년 시스타 지하철역이 완공되면서 에릭슨과 IBM을 필두로 한 기업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연구 파트너의 필요성에 따라 1980년대 말 KTH가 ICT 관련 분야 캠퍼스를 시스타로 이전했다.
전반적인 운영을 담당하는 일렉트롬재단은 1986년 설립됐다. 대학 총장, 기업 연구소장과 사장급 인사, 스톡홀름 고위 인사 등이 재단 이사진으로 참여하고, 주기적으로 만나 시스타 운영을 논의한다.
성 교수는 시스타의 장점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혼재한 점 ▷연구소와 대학이 협력하는 구조 ▷앵커 기업의 구심점 역할 ▷스톡홀름 시내와 공항과의 접근성을 꼽았다. 특히 그는 “산학협력 성패는 각 주체가 얼마나 잘 협력하느냐에 달려있는데, 시스타는 재단 설립을 통해 많은 부분을 해결했다”며 정부의 역할 또한 강조했다.
시스타는 클러스터의 장점을 그대로 누린다. 성 교수는 “이곳에서 도보 10분 거리 내에 에릭슨 연구소, 에릭슨 본사, 스톡홀름 대학 캠퍼스, IBM, 화웨이가 있다. 그리고 이 건물들 사이로 수없이 많은 스타트업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지 내 근무하는 사람들이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점심 시간은 시스타에서 많은 비즈니스가 이뤄지는 시간이다. 깊숙한 대화까진 어렵더라도 트렌드가 공유되고 연구 교류가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런 분위기 또한 코로나 팬데믹 이후 많이 꺾였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최근 스웨덴에서 떠오르는 게임 산업이 스톡홀름 시내의 스타트업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젊은 인력들이 진입할 유인이 줄어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산업 구조 변화로 하나의 앵커기업에 의존하는 구조도 굳어지고 있다.
성 교수는 “2010년대 이곳에선 자연스러운 교류가 굉장히 많았다. 우연히 만나서 대화하다 프로젝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팬데믹을 거치고, 여러 변화에 따라 열려있던 문화가 점차 사라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진 것도 사실”이라며 “시스타의 새로운 방향을 생각해 볼 시점”이라고 말했다.
# 에릭슨 둥지 틀며 태동, 스웨덴 경제 핵심역할
▮ 시스타 사이언스 시티
시스타 사이언스 시티는 스톡홀름시에서 북서쪽으로 15㎞ 떨어진 시스타(kista) 지역에 있다. 스웨덴 경제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며 KTH와 같은 학술 기관과 협력하고, 학문적 연구 성과와 산업적 혁신을 연결하는 중요한 모델을 구축했다. 스웨덴 정보통신산업 메카로 무선이동통신과 무선인터넷 분야에 강점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대부분의 클러스터가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된 반면, 시스타는 민간기업인 에릭슨의 역할이 컸다. 1976년 무선통신 관련 사업본부와 연구소를 한 곳으로 통합하려는 에릭슨이 시스타 지역 개발에 착수한 것이 발전의 계기가 됐다.
에릭슨과 KTH 연구진이 개발한 5G 네트워크 구축은 기술 상업화 성공 사례로 꼽힌다. 현재 전 세계 40개국 이상에서 상업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스타에선 매년 수십 건의 글로벌 협력 프로젝트를 통해 연구 성과를 상업화하고 있다.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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