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4대 소재 산업이 흔들린다…中 돈 버는데 韓 '적자 눈물'
에코프로비엠 3분기 412억 적자
中 룽바이는 487억 흑자 기록
자국 보조금·값싼 전기료 영향
"배터리 공급망 훼손 땐 산업 붕괴
세금·보조금 등 정부 지원 절실"
한국 배터리 소재산업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수요 둔화)이 길어지면서 적자 늪에 빠진 에코프로비엠, 포스코퓨처엠, 엘앤에프 등 주요 기업들이 투자 축소와 일부 사업 철수 등 구조조정에 들어가서다. 반면 ‘규모의 경제’와 정부 보조금 등에 힘입어 저원가 시스템을 구축한 중국 업체들은 전기차 시장 둔화에도 불구하고 매 분기 흑자를 내며 투자여력을 쌓고 있다. 배터리산업의 뿌리인 소재 업체가 붕괴되면 밸류체인으로 묶여 있는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셀 업체도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韓 8개 기업 중 7곳 적자
8일 업계에 따르면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 등 배터리 4대 소재 사업을 벌이는 국내 8개 업체 중 7곳이 지난 3분기에 적자를 냈다. 배터리 원가의 40~50%를 차지하는 양극재 분야 국내 1위인 에코프로비엠은 3분기에 412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양극재 라이벌인 중국 룽바이(487억원), 후난위넝(389억원), 베이징이스프링(369억원) 등이 3분기에 흑자를 낸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따라 에코프로비엠은 경북 포항 양극재 공장 준공 시점을 2년 늦추는 등 투자 조정에 나섰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하이니켈 양극재 기술을 보유한 엘앤에프도 3분기에 724억원 적자를 내자 당초 계획한 음극재 시장 진출 프로젝트 재고에 들어갔다.
배터리 원가의 15%를 차지하는 음극재도 마찬가지다. 포스코퓨처엠은 3분기 음극재 부문에서 39억원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됐다. 수요가 급감해 지난해 50%였던 공장 가동률이 올해 평균 30%대로 추락한 탓이다. 반면 산산(686억원), BTR(684억원) 등 중국 음극재 업체들은 수요 감소에 맞춰 가격을 대폭 내렸는데도 흑자 기조를 유지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의 품질과 가격을 감안할 때 국내 음극재 사업은 승산이 없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퓨처엠이 국내에 하나뿐인 음극재 기업이란 점에서 이 사업을 접으면 전체 배터리 밸류체인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분리막 분야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와 더블유씨피가 3분기에 각각 730억원, 194억원의 적자를 냈다. SK그룹은 지난 9월부터 SKIET 지분 매각 계획을 공개했지만 아직 마땅한 주인을 찾지 못했다. 같은 기간 중국 창신신소재(722억원)와 시니어(236억원)는 흑자를 냈다. 전해질 분야도 마찬가지다. 국내 업체인 엔켐은 54억원 적자를 냈는데, 중국 톈츠재료는 461억원 영업이익을 올렸다.
“배터리 소재에 정책 지원 필요”
3분기에 국내 소재업체들이 죽을 쑨 반면 중국 업체들은 날아다닌 이유는 단순하다. 중국 업체들의 가격이 국산보다 20~30%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국내 업체에서 소재를 납품받던 배터리 3사도 중국 업체들로 눈을 돌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전기료, 인건비 등을 감안할 때 가격 측면에서 국내 기업은 중국의 상대가 안 된다”며 “국내 배터리 셀 업체들도 생존 경쟁에 내몰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중국산 비중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중국 정부가 현지 배터리 소재 기업에 조(兆) 단위 보조금을 지급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금 지원과 저금리 대출, 토지 제공 등을 감안한 금액이다. 반면 국내 소재 업체들은 별다른 정부 지원 없이 ‘나 홀로’ 전쟁터로 내몰렸다.
업계에선 배터리 공급망이 무너지면 ‘경제 안보’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중국의 장악력이 높아진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배터리 소재 공급을 중단하면 국내 배터리 셀 생산라인도 멈춰 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배터리 소재 업체에 대한 투자 세액공제, 생산 보조금 등을 지급해야 한다는 요청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부회장은 “지금 당장 정부 지원을 통해 소재산업을 살리지 않으면 중국에 끌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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