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74세에 랭킹 1위 등극-세월을 거스르는 성기춘 KATA 회장
얼마 전 골프장에서 70대 초반의 재벌 오너와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페어웨이 한 가운데까지 카트를 타고 와서 캐디가 놓아주는 공을 두 차례 친 뒤 이동하더군요. 일반인으로는 상상도 못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해 정상적인 라운드가 힘들어 보였습니다.
필자가 희한한 목격담을 꺼낸 이유는 70대 중반에도 테니스 코트에서 펄펄 날고 있는 성기춘 한국테니스진흥협회(KATA) 회장 때문입니다.
1950년에 태어나 74세가 된 성기춘 회장은 최근 막을 내린 2024년 KATA 시즌에서 베테랑부(만 55세 이상 출전)서 종합 1위를 차지했습니다. 올해 15개 대회에 출전해 던롭컵, 서울컵 등 굵직한 대회 베테랑부에서 우승한 것을 포함해 충주사과배 오픈부(25세 이상, 전국대회 우승자 출전) 1위 등 시즌 3승을 거뒀습니다.
며칠 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에서 KATA 시즌 마지막 대회인 하나은행컵이 열렸을 때 일입니다. 성기춘 회장은 주위 테니스 동호인들에게 축하 인사를 받느라 바빴습니다. 이 대회 베테랑부에 출전해 3게임을 치른 주광덕 남양주시장 역시 “대단한 일을 해냈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우더군요. 고미주 KATA 사무차장도 “저 연세에 아직 지치지 않고 저렇게 하시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라고 놀라움을 표시했습니다. 누구에게는 테니스 라켓을 잡기도 버거울 나이에 종합 1위로 시즌을 마감한 결과가 대단했기 때문입니다.
성기춘 회장은 “1위로 한 해를 마감한 건 10년도 넘은 것 같다. 꾸준히 운동에 집중한 덕분 같다”라며 웃더군요.
<사진> 왼손잡이 성기춘 회장의 안정적인 백핸드 발리. KATA 제공
보통 동호인대회에 나가면 예선부터 결승까지 7경기를 치르기도 해야 합니다. 그만큼 체력 소모가 심한 데도 성 회장은 좀처럼 지칠 줄 몰랐습니다. 그는 비결로 쉼 없는 노력을 꼽았습니다. “오전 6시 30분이면 일어나 10분 동안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어요. 이후 20분을 걸은 뒤 라켓을 들고 스윙 연습을 300∼400개 합니다. 이런 루틴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있어요.”
천안중·고 시절 왼손잡이 탁구선수로 뛴 성 회장은 만 36세 때 처음 테니스 라켓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고교 동창이 서울 태릉에서 테니스 치는 걸 본 게 운명적인 만남이었어요. 탁구했던 게 테니스에도 큰 도움이 되더군요.”
성 회장은 KATA가 동호인들의 전국 랭킹 시스템을 도입한 1996년부터 2002년까지 7년 연속 장년부 1위를 지킨 적도 있습니다. 170cm, 67kg의 신체조건은 다소 왜소하지만,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아들 뻘 되는 선수들과도 당당히 맞서고 있습니다. 1982년 급성간염 판정을 받아 생사의 고비에 섰던 그는 술, 담배를 완전히 끊었으며 체중 변화도 수십 년 동안 거의 없다고 합니다. 상대 허를 찌르는 절묘한 로브는 알고도 당한다는 그의 최고 무기입니다.
<사진> 던롭컵 대회에서 시상자로 나선 성기춘 KATA 회장과 홍순성 던롭스포츠코리아 대표. 테니스코리아
선수로 뛰면서 KATA 조직도 이끄는 성 회장은 광폭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동호인 테니스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올해 KATA 대회만도 47개에 이릅니다. 1년이 52주이니 혹서기나 혹한기를 빼면 매주 대회가 열린 셈입니다. 그가 처음 KATA 회장을 맡았던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연간 대회 수는 채 10개를 넘지 못했습니다. 성 회장은 테니스 유망주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엘리트 선수 육성에도 정성을 다하는 키다리 아저씨이기도 합니다. 한국 테니스의 미래를 책임질 대학생 동아리 선수 지원에도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또 장애인 테니스를 위한 발전 기금도 전달하고 있습니다.
KATA는 해마다 연초에 시상식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내년 행사는 1월 4일 열릴 계획입니다. 베테랑부를 비롯해 개나리부, 국화부, 오픈부 1위는 상을 받습니다. 성 회장이 1위에 올랐으니 셀프 시상이라도 해야할까요.
<사진> 성기춘 회장이 주원홍 대한장애인테니스협회 회장에게 발전 기금을 전달하고 있다. 테니스코리아.
최근 테니스 인기가 치솟고 있는데도 성 회장의 공로가 컸습니다. 테니스를 막 시작한 초보자에 대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투자해 연습하고, 자신보다 잘 치는 사람과 공을 쳐야 실력이 늘어요.”
그는 게임에서 승률을 높이는 비결로 무엇보다 실수를 줄여야 하고, 경기 전 랠리를 하면서 상대방의 장단점을 미리 파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서브는 상대방의 취약한 부분을 공략해야 하며 리턴은 자신 있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성기춘 회장은 “몸이 고장 안 나면 (테니스를)계속할 것이다”라며 의욕을 보였습니다. 어딘가 좀 아파도 코트에만 나오면 몸이 개운해진다는 성 회장에게 테니스는 최고 보약이나 진배없습니다. “젊은 사람들과 겨뤄보면 재밌고 즐겁습니다. 다치지 않고 오랫동안 건강하게 테니스를 즐기고 싶습니다.”
평범 속에 진리가 있다고 했던가요. 너무 평범한 표현이지만 성 회장에게는 이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은 없어 보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이제 달력도 한 장밖에 남지 않았고 2025년을 향한 카운트다운도 이미 들어갔습니다. 성 회장은 신년이 부담스러울 수 있는 연배지만 오히려 새로운 기대감에 부풀어 있습니다. 영원한 동반자라는 테니스 라켓과 함께.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ankudong@gmail.com
글= 김종석 기자(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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