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한국의 누굴 만나야 하나"…尹 비상계엄에 한국 외교 '비상'
정부·여당이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을 2선으로 후퇴시켜 외교를 포함해 모든 국정에 관여시키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당분간 정상외교 부재로 한국은 외교 무대에서 협상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당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올해의 10배 수준인 최소 100억 달러(약 14조2400억원)를 주장하고 있는데 한국의 대응력이 부족해질 것이란 지적이다. 정상 차원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을 국제사회에 공론화할 수 없는 등의 외교적 공백도 예상된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8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헌법에는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이면서 외교를 총괄하는 책임자"라면서 "정부와 여당이 밝힌 대로 윤 대통령이 2선으로 후퇴한다고 한들 해외 정상들이 우리나라와 무슨 협의와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문 교수는 "국회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고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인용하면 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그대로 이양받아 외교를 포함해 국정의 실권을 쥐고 일할 수 있는 것"이라며 "대통령 거취 문제가 결정되지 않으면 한국에 대한 해외의 투자 등 경제는 물론 외교, 안보, 사회 등 전 분야에서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한국은 외교 무대에서 고립되거나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계엄 선포 배경이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최종건 전 외교부 1차관은 "국내의 정치적 상황이 정상화되기 전까진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시팅덕(Sitting-duck·앉아 있는 오리, 이용당하기 쉬운 대상)이 될 것"이라며 "국제 관행상 타국은 우리나라와 아주 일상적이고 행정적인 소통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한국은 외교 무대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와의 협상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미국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발령 직후부터 '정당성이 없는'(illegitimate), 매우 문제가 있는, 심각한 오판 등의 비판 표현을 썼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지난 5일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의 통화에서 "민주적 절차의 승리를 기대한다"고 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윤 대통령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당장 내년 1월20일 트럼프 당선인이 대통령으로 복귀하면 한국으로선 부담 요소가 늘어난다. 트럼프 당선인은 국가 간 외교에서도 개인적 신뢰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집권 1기 시절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와 3년8개월 동안 14차례 대면 정상회담과 37차례 공식 전화통화를 했는데 이는 아베 전 총리의 개인적 신뢰 관계 구축 노력에 따른 것이었다.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2.3 비상계엄은 사실상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천명한 것"이라며 "정부와 국민의힘이 주장한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이 된다면 외국은 우리에 대한 신뢰를 낮출 것이고 트럼프 당선인은 '한국에서 누구를 만나야 하느냐'고 반문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이 2선 후퇴로 얻을 수 있는 외교적 실익이 사실상 없다고 진단한다. 윤 대통령이 임기 초반 구축한 한미일 경제·안보 협력 체계도 지속하려면 트럼프 행정부와 이시바 시게루 내각 사이에서 한국이 구심점이 돼야 하지만 이를 끌고 갈 추진력이 없어졌다. 트럼프 당선인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탑다운 대화를 해도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거나 사전 공유를 받긴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한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와 공동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 선포와 계엄군의 국회 진입 등의 사태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반헌법적 행위였다"면서 "질서 있는 대통령 조기 퇴진으로 대한민국과 국민들께 미칠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안정적으로 정국을 수습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겠다. 퇴진 전이라도 대통령은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인한 기자 science.in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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