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폭 계엄령’에…중국은 싱글벙글 일본은 울상짓는 이유는 [한중일 톺아보기]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 2024. 12. 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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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톺아보기-151]

◆ 비상계엄 후폭풍 ◆

3일 한국의 계엄령 선포 뉴스를 메인 화면에 띄운 미국 뉴욕 타임즈.
지난 3일밤 비상 계엄령 선포 이후, 극도의 혼란에 휩싸인 한국에 전세계 이목이 계속 집중되고 있습니다. 한국과 관계가 긴밀하거나 이해관계가 깊은 나라들은 잇따라 우려를 표했고, 추후 정세를 예의주시하는 상황입니다.

이번 사태는 정치경제적으로 어엿한 선진국으로 인식되던 한국의 이미지에 씻지 못할 상처를 남기고 말았습니다. 증시는 더 떨어졌고 원화값은 급락하면서 ‘코리아 엑소더스’가 확산됐습니다.

특히 한국의 유일한 동맹미국에서는 언론 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직접적 비판이 가해졌습니다.지난 4일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은 윤대통령이 “심각하게 잘못 판단했다(badly misjudged)”며 계엄령에 대해 “매우 문제적이고 정당성 없는 조치(deeply problematic and illegitimate)”라고 혹평했습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한국이 약 3만명의 주한미군이 주둔중인 동맹국 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계엄령 계획을 전혀 몰랐다”고 말해 당혹스러움을 토로했습니다.

당초 예정됐던 한미 대북 핵억지력 회의 및 연습은 연기됐고, 한미일 안보 협력 논의를 위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의 방한도 취소됐습니다.

한국에서 비상 계엄이 선포된 건 1979년 10.26 이후 45년만 입니다. 그동안 한국이 발전을 거듭하며 국제적 위상도 높아진 만큼 이번 사태에 쏠리는 전세계의 주목도도 훨씬 커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미국 이외에 가장 한국 상황을 주시하는 나라를 꼽자면 역시 지리적으로 인접한 일본과 중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번 사태가 한국의 정국 변화 및 자국과의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日도 ‘계엄 트라우마’ 존재...韓 여행 취소 잇따르기도
4일 오전 한국 계엄 관련 소식에 불안해하는 일본인 여행객들.
한국사회에서 계엄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 억압을 떠올리게 해 일종의 강한 저항감을 반사적으로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일본 역시 군국주의 시절 어두운 역사와 전후 일본의 근간이 된 평화헌법의 영향으로, 군계엄령 같은 강압적 조치에 매우 민감한 편입니다. 이 때문인지 계엄령 소식 이후 불안감에 예정돼 있던 한국행 항공편을 취소하는 일본인들이 눈에띄게 늘어났습니다. 일부시민들은 “한국 민주주의가 끝나는줄 알았다”며 경각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한국 계엄 사태를 계기로 일본 정부가 추진중인 ‘긴급사태 조항’ 도입을 둘러싼 우려도 커지는 모습입니다. 이는 대규모 재해, 무력 공격, 감염증 만연 등을 ‘긴급사태’로 규정하고, 유사시 정부가 법률과 동등한 효력을 가진 긴급 정령을 국회 의결 없이 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골자 입니다.

1938년 당시 일본 신문기사. 우측에 국가총동원법이 성립한 것을 밝히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가 통치의 중심을 차지한 적이 있습니다. 군부가 모든 정치 실권을 쥐던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통해 민관 가릴것없이 인적, 물적 자원을 전쟁에 동원했습니다. 식민지 조선에 대한 수탈로 부족하니 자국민들까지 강제 동원하는 등 억압은 극에 달했습니다. 군부는 폭주했고 언론 기능은 마비됐습니다.

패전이후 일본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1947년 평화헌법을 제정했고, 헌법 9조에서 군사력 보유와 전쟁 포기를 명문화했습니다. 실제로 일본여론도 군사적 통제와 관련된 논의에는 강한 반감을 표출하곤 하는데, 2015년 아베 신조 총리가 안보법제를 추진했을 때 일본 전역에서 수만 명 규모의 시위가 벌어진 적도 있습니다.

지난 2015년 열린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 방침을 담은 안보법제 개정안에 반대하는 집회모습. [연합뉴스]
물론 최근 일본사회가 우경화 되면서 개헌 찬성의견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쟁 포기를 명시한 평화헌법 9조 1항에 대해서는 올해도 개정을 반대하는 의견이 75%에 달할 정도입니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군사적 팽창 등 지역 안보 환경이 변화하면서 방위비 증액과 군사력 강화요구가 커지는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도 결국 방어적 성격에 국한돼야 한다는 게 아직은 다수의 여론입니다. 이는 일본인들이 군사력 강화자체에 반대한다기보다, 계엄령 같은 강압을 수반하는 조치 억압적 통제로 이어지는데 대해 부지불식간 거부감을 갖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日 “한일·한미일 협력 약화 우려”...“文때 보다 더 센 반일 정권 들어설 것”
[그래픽=챗GPT]
계엄령 사태 전까지 한일 양국은 내년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협력 방안을 모색중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국내정치가 극도의 혼란에 빠지면서, 이 같은 계획에 막대한 차질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이미 예정됐던 고위급 교류도 줄 취소된 상태입니다.

일본 주요 언론들은 연일 한국상황을 머릿기사로 보도하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한국의 정치적 혼란이 양국관계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내용입니다.

5일 일본 최대 일간지 요미우리신문은 “윤 대통령이 북한 체제를 비판하고 자유 질서를 지킨다면서 국회에 군을 투입하는 등 강권을 휘두른 건 본말전도” 라면서도 “한국의 혼란은 북한만 이롭게 하므로 빨리 수습되길 기대한다”고 보도했습니다.

진보계열 아사히 신문도 같은날 “윤 대통령은 한반도 정세에도 악영향을 끼칠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 며 특히 “동맹과 다자협력을 경시하는 트럼프 체제에서 한미일 협력 지속이 불투명한 상황” 이라고 짚었습니다. 마이니치 신문 역시 “한국의 정치적 위기로 한미일 협력 유지는 더 어려워질 것” 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지난 8월 이재명 대표가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사진.
일부 매체들은 더 직설적입니다. 주간 슈칸 겐다이는 국회에서 탄핵표결이 실시되기 사흘 전인 지난 4일 이미 윤정권에 대해 “사실상 끝났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매체는 박근혜 탄핵사태를 예를 들며 같은 일이 데자뷰처럼 재현돼 조기 대선이 치러지고, 대권은 현재로선 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대표에게 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습니다.

일본에서 이재명 대표는 문재인 전 대통령 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보통 반일성향이 더 강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왜냐면 그는 1965년 국교 정상화로 체결된 한일 기본조약에 대해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에 의해 체결된 것인 만큼, 양국간 전후처리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혀 왔기 때문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그는 경기도지사 재직 시절 “친일 요소를 철저히 제거하겠다” ‘친일 잔재 청산 프로젝트’라는 캠페인을 주도 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강제징용과 관련된 한국과의 과거사 문제가 이미 청산됐다는 입장을 고수중인 일본과 마찰을 빚을 것이란 건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주간 겐다이는 “이재명 정권하 한일관계는 다시 ‘문재인 시대의 악몽’으로 빠져들 것” 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일본 최대 포탈 ‘야후재팬’에 게제된 관련 소식에 한 일본인 네티즌은 “이제 문정권보다 급진적인 이재명 반일 정권이 수립될 것” 이라며 “강건너 불보듯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과 연을 끊을수 있는 기회임에 틀림없다”라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 댓글은 최다추천을 받았습니다.

北中만 이득인 계엄 후폭풍...암울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지난 2019년 북한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과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한편, 한국에서 발생한 상황에 미소짓고 있을 국가와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바로 북한 김정은과 중국 시진핑 주석입니다.

특히 무기판매와 파병으로 ‘러시아 전쟁특수’ 를 누리고 있는 김정은은 한국의 혼란을 또 다른 행운으로 여길것이 분명합니다. ‘적성국’인 한국에서 큰 혼란이 발생한데다, 자신과 강하게 대립하던 윤정권 대신 훨씬 유화적인 이재명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다만 연일 윤석열 퇴진을 주장하던 북한정권은 막상 실제로 상황이 닥치자 아직까지는 침묵하는 모습입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계엄 사태로 인한 한국 내 혼란을 이용해 영향력 확대를 시도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김정은과 마찬가지로, 시진핑 주석 역시 지금 상황을 ‘호재’로 받아들일 것으로 보입니다. 한미일 안보협력의 한축에 큰 문제가 생긴 셈이기 때문입니다. 주지하다시피, 한미일 3국은 인·태 지역에서 공세를 높이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3각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있었던 만큼 중국으로선 불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지난해 6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를 예방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게다가 한국에서는 조만간 다시 전임정부 처럼 중국에 머리를 조아려줄 정권이 탄생할 공산이 커졌습니다.

구체적으로, 현재 유력 후보인 이재명 대표는 지난 3월 “대만해협이 어떻게 되든 우리가 무슨 상관이냐” 면서 “왜 중국에 집적 거리나, 그냥 셰셰 하면 되지”라는 발언을 해 구설에 올랐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해 6월에는 주한 중국대사관을 찾아 싱하이밍 당시 대사와 회동하면서 그의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한다”는 공개 협박성 발언을 공손히 경청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사회에 호시탐탐 국가전복을 노리는 반국가세력이 있다는 건 지각있는 대한민국 국민 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별다른 증거도 없이 내려진 비이성적이고 즉흥적인 계엄령에 국민들이 납득 할리 없다는 것 역시 삼척동자도 알만한 상식입니다.

윤대통령의 자폭은 한국뿐 아니라 지역 정세에도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유일한 동맹 미국의 한국에 대한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고, 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도 훼손됐습니다. 해빙무드였던 일본과의 관계는 곧 다시 악화될 가능성이 크고, 북한과 중국은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려 들 것입니다.

함량 미달의 명분으로 일으킨 시대착오적 계엄령으로 인한 후폭풍은, 국제사회의 질타에 그치지 않고 나라의 미래에 짙은 암운을 드리우고 말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최악의 전환점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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