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일단 피했지만 국정동력은 최악으로…의료·교육·연금·노동 다 '흔들'
포고령 '처단'에 의료계 대화 단절…연금개혁도 난항
2026 의대 증원 원점 우려…AI교과서·유보통합 불안
노동개혁 올스톱…정년연장·근로시간 개편 차질 전망
온실가스 감축 목표 제출 불투명…환경정책도 안갯속
[세종=뉴시스] 박영주 고홍주 김정현 성소의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은 일단 면했지만,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교육·노동·연금개혁 차질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 윤 대통령의 조기 퇴진 절차에 속도를 내고 있고 비상계엄으로 민심마저 악화하면서 사실상 정책 추진 동력을 잃었다는 우려가 나온다.
8일 정부와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7일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졌으나 의결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탄핵안은 재적의원 300명 중 3분의 2인 200명이 찬성해야 하지만, 안철수·김상욱·김예지 의원을 제외한 국민의힘 의원이 표결에 불참하면서 '투표 불성립'으로 폐기된 것이다.
가까스로 탄핵 위기는 면했지만, 국정 동력 약화로 윤석열 정부 출범 때부터 힘을 실었던 의료·교육·노동·연금개혁도 본격적인 시작 전부터 좌초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포고령 '처단'에 의료계 대화 단절…연금개혁도 난항
하지만 지난 3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의료계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반응이 나온다. 당시 발표된 계엄사령부 포고령에는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 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고 적혀 있다.
'처단'이라는 표현을 두고 의료계의 반발이 커지면서 대한병원협회도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참여 중단을 결정했다. 지난 1일 여야의정 협의체가 출범 3주 만에 중단된 데 이어 의료계와 대화의 폭이 더 좁아진 것이다. 여기에 2025년도 예산안 논의마저 멈추면서 내년 예산 증액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6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최근 병협이 의개특위 참여 중단 입장을 밝힌 것에 대매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의료계와의 대화와 협의를 통해 의료개혁을 착실히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예정대로 이달 말 실손보험·비급여 관리강화 대책 등을 담은 '의료개혁 2차 실행 방안'을 차질 없이 발표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를 위한 공청회 날짜도 아직 확정 짓지 못했다.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원점 우려…AI교과서·유보통합도 불안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등 의대 교수들은 최근 잇따라 성명을 내고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취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만 교육부는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의 경우 입시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 만큼 현시점에서 원점으로 되돌리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미 지난 6일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통지됐고, 수시 전형은 증원이 이뤄진 대전 건양대를 비롯해 고려대, 중앙대까지 일부 전형의 최초 합격자가 발표된 상태다.
하지만 2026학년도 이후의 의대 증원에 대해서는 교육계에서도 원점(3058명)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레 제기된다. 정부도 계엄령 사태 이전부터 2026학년도 이후의 의대 정원에 대해서는 대화할 의사가 있음을 거듭 밝혀 왔다.
첫발을 뗀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 교과서) 도입 확대와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유보통합'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AI 교과서는 지난달 말 첫 검정 결과가 발표돼 내년 초·중·고 수학, 영어, 정보 교과에 처음 도입될 예정이다. 유보통합은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올해 6월 보건복지부의 보육 사무를 교육부가 넘겨 받아 추진해 오고 있다.
다음 단계로 진척되려면 현장 교사들 협조가 절실한데 현 정부에 대한 반감이 커진 상황에서는 추진하기에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AI 교과서는 2026년도 이후의 추가 도입, 유보통합은 교사 자격·양성체계 통합안 마련 등을 당초 정부가 제시했던 일정대로 추진하기 어려울 수 있다.
노동개혁도 올스톱…정년연장·근로시간 개편 물 건너가나
현재 정년 연장 논의를 진행 중인 경사노위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계속고용위원회는 12일 대국민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노동계는 법정 정년을 65세로 늘리는 방안을, 경영계는 퇴직 후 재고용을 주장하고 있는 등 의견 차가 커 공론화를 통해 여론 수렴에 나서겠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한국노총이 불참을 선언하면서 토론회는 결국 내년 1월 이후로 잠정 연기됐다.
경사노위는 이번 사태와 관계없이 사회적대화를 이어 나가겠다는 입장이지만, 정년 연장 문제는 노사정의 합의가 필수적이고 국회 입법도 거쳐야 한다. 하지만 비상계엄 선포 사태로 노정 갈등이 더욱 격화되면서 임기 내 노사정 대타협을 이룰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근로 시간 개편 논의도 마찬가지다. 경사노위 일·생활균형위원회는 현재 1주인 근로 시간 관리 단위를 확대하고, 유연근무제를 확대 도입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노동계는 이러한 개편이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를 불러온다고 반발하고 있어 합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 제출 가능할까…환경정책도 줄줄이 차질
앞으로 10년 간 어디서 얼마만큼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지, 그 목표와 세부 경로를 계획하는 작업인 만큼 NDC 제출 기한(2월9일) 전까지 고도의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NDC는 그 자체로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의지를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량이 큰 주요국들은 '야심 찬' 목표를 마감 기한에 맞춰 제출해야 한다는 국제사회 압박이 크다.
하지만 국무위원들이 전원 사의를 표명하는 등 정책 결정자들이 국정 일선에서 물러나 있고, 국회는 탄핵 정국으로 정상 작동하지 않는 등 사회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NDC 수립에 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다만 환경부는 전문가들과 실무선에서 NDC 수립 작업을 진행 중이기 때문에 탄핵 정국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조금 어수선할 수는 있지만, 정부가 없거나 하는 상황은 전혀 아니다”며 “실무선에서 할 일들은 다 소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통상 연초에 발표해 오던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을 올 연말로 앞당겨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국회의 예산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관련 일정도 영향을 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역점 정책으로 추진하는 기후대응댐의 운명도 가늠할 수 없다.
☞공감언론 뉴시스 gogogirl@newsis.com, adelante@newsis.com, ddobagi@newsis.com, soy@newsis.com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