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참전용사 얼굴 새긴 워싱턴DC 명물… 디자이너 넬슨 별세
길이 50m 화강암 벽에 참전용사 얼굴 새겨
미국 워싱턴DC의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 속 명물인 벽화를 디자인한 루이스 넬슨(88)씨가 4일 8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대담한 선과 밝은 색상을 선호하는 덥수룩한 눈썹의 디자이너였던 넬슨은 반세기 동안 활동하며 장소, 공간, 제품의 외관을 형성하는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며 “베트남전·2차 세계대전에 가려 ‘잊혀진 전쟁’이라 불리는 6·25전쟁에서 복무하고 희생한 580만명의 미국인을 기리는 기념공원으로 가장 잘 알려진 디자이너”라고 했다.
1995년 7월 내셔널 몰 지역에 건립된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은 연간 400만명이 방문하는 워싱턴의 명물이자 역사 교육의 살아있는 현장이다. 한미 당국의 주요 인사들이 기회가 될 때마다 찾아 6·25전쟁 참전 용사들의 희생에 경의를 표하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기념공원 한가운데 조각가 프랭크 게일로드(1925~2018)의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상 19개가 들어서 있는데 정비사·조리사·의무병 등 각기 다른 군인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2년 전에는 6·25 때 전사한 한미 군인 4만30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의 벽(Wall of Remembrance)’이 추가됐다.
넬슨은 5년 동안 41개 패널로 구성된 길이 약 50m의 화강암 벽면에 참전 용사들의 얼굴을 새겨넣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는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입수한 6·25전쟁 사진 2400장을 바탕으로 했는데, 자신의 저서 ‘모자이크’에서 “나라를 위해 봉사했던 사람들을 내밀하게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름 없이 물결 모양으로 배열된 참전용사들의 얼굴은 관람객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사진의 배치가 한국의 험준한 산맥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거울에는 게일로드가 제작한 조각상 19개가 두 배로 비치는 효과가 일어난다. WP는 “거울에 비치는 38개의 조각상은 남·북한을 가로지르는 38선, 전쟁 기간인 38개월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넬슨은 6·25전쟁 발발 당시 13살이었지만, 대학을 다니며 참전용사들과 많은 교류를 했다고 한다. 또 1961년 독일에 베를린 장벽이 들어설 무렵 서독에서 헬기를 조종하는 육군 대위로 복무한 경험이 있다. 넬슨은 6·25전쟁 때 사진가 매튜 브래디·데이비드 더글러스 던컨이 찍은 사진들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생전 인터뷰에서 “(사진에서 본) 사람들의 눈빛을 벽에 담고 싶었다”고 했다. 기념공원의 군인 용사상을 보면 판초 우의를 입고 있는데 이는 넬슨이 게일로드에게 “이렇게 하면 전쟁의 피와 공포를 연상시키는 대신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줄 수 있다”고 제안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배우자이자 유명 싱어송라이터인 주디 콜린스는 넬슨에 대해 언론에 “모든 걸 주의 깊게 보고 또 봤던 사람”이라고 했다. 넬슨은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낙상으로 인한 부상을 입고 치료를 받던 중이었고, 사망하기 불과 12일 전에 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주한미군 사령관 출신인 존 틸럴리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KWVMF) 이사장은 “소중한 친구인 넬슨의 열정과 천재성은 그가 디자인한 벽화 속 2400개의 얼굴에 영원히 반영돼 있다”고 했다. 버나드 샴포 전 주한 미 8군 사령관도 “모든 6·25 참전용사를 위해 지속적으로 기여하고자 했던 루이스의 열정이 기념공원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며 “우리는 친구를 몹시 그리워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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