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 전 연인 가족 정보 무단 열람한 공무원 무죄…왜?
법원 "권한 남용 맞지만 법적 처벌 규정 없어"
[부산=뉴시스]권태완 기자 = 부산의 한 공무원이 내부 시스템을 통해 전 남자친구 가족에 대한 정보를 무단으로 열람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공무원의 행위가 징계사유가 될 수 있지만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부산의 한 구청 공무원 A(30대·여)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부산의 한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한 A씨는 2022년 4~6월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통해 전 애인인 B씨와 B씨의 아버지, 동생 등 3명에 대한 개인정보를 총 52차례에 걸쳐 무단으로 열람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B씨와 2021년부터 2022년 5월까지 교제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은 복지 수당 수혜자를 관리하기 위해 정부가 구축한 것으로, A씨는 이 시스템을 통해 B씨 가족의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 전화번호 등을 확인했다.
A씨는 사회복지 업무를 담당하며 개인정보를 열람할 권한을 포괄적으로 갖고 있었다. 하지만 열람 과정에서 B씨의 동의는 없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B씨가 민원을 제기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은 A씨가 B씨 아버지의 동의와 정당한 절차 없이 정보를 습득했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법 제59조 1호, 제72조 2호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59조는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처리했던 사람으로 하여금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취득하거나 처리에 관한 동의를 받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제72조는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취득한 자'를 처벌하고 있다.
1심 재판부는 관련 조항에 따라 A씨가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는 것에 나아가 '부정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얻는 행위가 있어야 범죄가 성립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A씨가 B씨 가족의 개인정보를 열람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이용해 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 로그인했고, 실제로 당시 개인정보를 열람할 때마다 그 사유를 추가로 입력하거나 상급자 결재를 받는 등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추가 절차는 따로 없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A씨가 단순히 정보 주체의 동의를 얻거나 기타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만으로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수단이나 방법'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A씨가 실제로 개인정보 열람을 하는 과정에서 민원인의 서면이나 구두에 의한 신청 등 사유가 필요하다. 그러한 사유가 없음에도 무단열람을 하면 이는 권한 남용이거나 권한의 내제적 한계를 넘은 것이고, 내부 규칙에 따라 징계사유로는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A씨에게 잘못한 점이 없진 않지만, 검찰이 문제 삼은 조항이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A씨가 권한을 넘어 정보를 취득하긴 했지만, 보안 절차를 무력화하거나 허위 사유를 입력한 사실이 없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원심의 판단을 기록과 대조해 검토해 보면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며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춰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에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개인정보보호법위반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즉 사법부는 A씨가 전 남자친구와 그 가족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열람한 행위는 '자신의 권한을 남용한 행위'는 맞지만 이를 처벌할 규정이 없기 때문에 A씨를 형사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더불어 개인정보보호법위반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A씨가 권한 남용을 넘어서 '부정한 수단·방법'이 동원돼야 하지만 A씨는 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 자신의 아이디로 접속했을 뿐 부정관 수단과 방법은 없었기에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유한) 대륜 정사봉 변호사는 "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까지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된 법적 빈틈을 메우기 위해서는 행정부 차원에서 자구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즉 기술적 수단을 통해 보안을 강화하는 등 자구책을 통해 개인정보의 무단 열람을 예방하고, 공무원의 부적절한 정보 열람에 대한 징계 강화 및 권한 관리 등에 대해 보다 엄격한 관리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행정안전부 등은 지난해부터 개인정보를 무단 조회하거나 유출한 공무원은 파면이나 해임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개인정보 보호 법규 위반 비위 징계 처리 지침'을 '징계업무 예규 및 편람'에 반영했다.
이에 대해 정 변호사는 "이 지침에서는 '각종 범죄에 악용'되는 경우와 같이 '정보주체에 대한 심각한 피해'인 경우만을 규정하고 있는데 일반 시민들의 단순 피해까지 막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평가하기 힘들다"면서 "무단열람 당한 시민들의 피해 회복을 위해서는 행정부와 지자체가 개인정보를 무단열람한 행위에 대해 징계를 의결할 때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를 징계양정 기준에 반영하는 것이 최소한의 방안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won9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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