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백지위임장' 받고 탄핵 막은 국민의힘...尹 운명 가른 10시간
"저의 임기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습니다"(윤석열 대통령, 7일 대국민담화)
45년만에 비상계엄령 선포로 대통령에 대한 헌정사상 세번째 탄핵소추안(탄핵)이 표결되는 7일. 윤 대통령은 오전 10시 대국민담화를 통해 표결 전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위해선 재적인원 300명 중 200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야권이 모두 찬성한다고 가정했을 때 국민의힘 108석 가운데 8표의 이탈표를 막아야 했다. 윤 대통령은 임기 단축을 포함해 지난 3일 비상계엄 사태의 수습을 여당인 국민의힘에게 넘기는 것으로 탄핵안 부결을 호소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대국민 담화에 대해 "대통령의 정상적인 직무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대통령의 조기 퇴진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책임총리제 도입 등 정국 안정 방안에 대한 질문에도 "앞으로 대한민국과 국민에게 최선인 방식을 논의하고 고민할 것"이라며 "당과 정부가 책임지고 정국 운영을 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씀도 있었다. 총리와 당이 긴밀히 논의해 민생이 고통받고 대외 상황이 악화되는 일을 막도록 하겠다"고 했다.
전날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 정지가 필요하다"며 탄핵 찬성을 시사했던 한 대표의 발언과는 온도차가 느껴진다. 한 대표는 오전 의원총회에 참석한 뒤 곧바로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을 찾아 한덕수 국무총리를 1시간20분여 만났다. 그는 한 총리에게 "민생 경제와 국정 상황에 대해 더 세심하고 안정되게 챙겨서 국민들이 불안하지 않게 해 달라"고 당부했다. 사실상 윤 대통령의 담화를 수용하고 탄핵안 부결 이후 수습 방안 마련에 착수한 셈이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도 속속 탄핵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내기 시작했다. 탄핵안이 제출된 후 여당에서 가장 먼저 찬성 의견을 냈던 최다선(6선) 조경태 의원은 담화 이후 당론에 따라 반대로 입장을 선회했다. 조 의원은 의원총회 도중 취재진을 만나 "한동훈 대표가 빨리 (윤 대통령의) 조기 퇴진 로드맵을 짜야 한다"며 "일단 한동훈 대표의 뜻에 따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다른 여당 의원들도 SNS(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앞다퉈 탄핵안 반대 의사를 밝혔다. 진종오 최고위원은 SNS에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힌다"며 "오늘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법적·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임기 단축을 포함한 정국 안정 방안을 당에 전적으로 일임했다"고 했다. 당내 소장파로 분류되는 우재준 의원 역시 같은 이유를 들고 "반대표를 행사하려 한다"고 밝혔다.
오후 재개된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선 이번 본회의에 함께 올라온 '김건희 여사 특별검사법안'(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조작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한 당론과 탄핵안에 대한 투표 방식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당 중진인 윤상현 의원은 일찌감치 "김 여사 특검법은 당론으로 반대할 것"이라고 밝혔고 오후 4시50분쯤 의원총회 회의장 안에서 김건희 여사 특검법, 윤 대통령 탄핵안 모두 당론으로 부결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탄핵안에 대한 투표 방식도 본회의 직전 '단체불참'이라는 당론으로 결론냈다고 한다.
법안의 재의요구안(재표결)은 과반 출석에 재석인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되기 때문에 김건희 여사 특검법은 여당 의원 전원이 표결에 참여해 8표 미만으로 이탈표를 막아야 부결된다. 반면 대통령 탄핵안은 국회 재적인원, 즉 300명 가운데 3분의 2(200명) 이상 찬성을 가결 요건으로 하기 때문에 표결에 불참하는 것만으로도 저지가 가능하다.
오후 5시3분 "성원이 됐으니 회의를 시작한다"는 우원식 국회의장의 선언과 함께 본회의가 시작됐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이 제출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안 등 안건이 보고된 후 곧바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 재표결이 시작됐다. 대다수 여당 의원은 특검법 표결 후 본회의장을 나와 의원총회장으로 향했다. 탄핵안 표결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본회의장에 있던 야당 의원과 본회장 밖 보좌진들은 퇴장하는 여당 의원을 향해 "나가지말라" "표결에 참여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남아있던 여당 의원도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찬성 198표, 반대 102표로 부결되고 윤 대통령의 탄핵안이 상정되자 본회의장을 떠났다.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 일정이 없다면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며 탄핵안 찬성 의사를 고수했던 안철수 의원만 남아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제안설명을 들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 모인 우리가 내린 결정이 대한민국의 흥망을 결정한다"며 "탄핵소추안에 찬성 의결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대한민국의 국민 주권이 확고하게 살아있음을 입증해 달라"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자리를 비운 국민의힘 의원 107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돌아오라"고 호소했다.
저녁 6시20분쯤 "투표를 시작하겠다"는 우원식 의장의 안내와 함께 표결이 시작됐다. 직후 안철수 의원은 기표소로 향했고 본회의장을 떠나있던 김예지·김상욱 의원이 복귀해 투표를 마쳤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들에게 감사와 격려를 표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후 3시간여 동안 투표 진행을 하고 나머지 여당 의원의 투표를 독려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조국혁신당 등 야당의 투표 촉구에도 결국 추가로 투표에 나서는 의원은 없었다. 우원식 의장은 투표시작 3시간이 조금 지난 밤 9시27분 정족수 미달로 인한 투표불성립을 선포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은 대국민담화 이후 10시간 반만에 폐기 수순을 밟았다.
김훈남 기자 hoo13@mt.co.kr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안재용 기자 poong@mt.co.kr 김도현 기자 ok_kd@mt.co.kr 안채원 기자 chae1@mt.co.kr 차현아 기자 chacha@mt.co.kr 오문영 기자 omy0722@mt.co.kr 정경훈 기자 straight@mt.co.kr 박상곤 기자 gonee@mt.co.kr 이승주 기자 gre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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