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지지’ 집회에 100만 운집…탄핵 무산되자 “민주주의 무너져” “과거 계엄령 떠올라”

차창희 기자(charming91@mk.co.kr), 지혜진 기자(ji.hyejin@mk.co.kr) 2024. 12. 7.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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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앞 탄핵 촉구 집회
주최 추산 100만명 운집
“尹탄핵, 체포” 구호 외쳐
국힘 의원 표결 불참에
탄핵 무산되자 실망·분노도
“피로 이룬 민주주의 지켜야”
광화문선 ‘맞불 집회’도
부결 확신에 “우리가 이겼다”
7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수많은 시민이 모여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이승환 기자]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무너졌다.”

과거 계엄령을 경험한 바 있던 심 모씨(70)는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고자 손주와 함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찾았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투표불성립으로 폐기되자 그는 한숨을 내쉬며 과거의 트라우마를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심씨는 “그때 당시에도 두려웠는데 지금 그런 일이 다시 생겼다니 있을 수 없다”며 “반드시 다시 탄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7일 윤 대통령 탄핵안이 저녁 9시20분경에 투표 불성립으로 폐기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투표 불참으로 탄핵안 가결에 필요한 200표조차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탄핵안 통과를 기원하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든 시민들은 손에 쥔 촛불을 힘없이 떨궜다. 허탈감과 분노의 감정에 일부는 욕설을 퍼부었고,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는 시민들도 있었다.

7일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에 참가자들이 모여 있다. [지혜진 기자]
이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주축으로 한 노동·시민단체들은 오후 3시 국회 앞에서 ‘범국민 촛불 대행진’을 열었다. 평소 집회를 주도하는 것은 조끼를 입고 깃발을 휘두르며 구호를 외치는 조직적 참가자들이었지만, 이날은 추운 날씨에도 윤 대통령의 퇴진을 바라는 일반 시민들의 발걸음이 많이 이어졌다.

여의도에선 집회에 참여하기 위한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지며 장관을 연출했다. 여의도역에서 국회의사당 정문까지 약 1㎞에 달하는 길이 시민들로 꽉 차면서 집회 인원은 실시간으로 늘어났다. 주최 측은 최소 100만명, 경찰은 비공식 추산 약 14만명이 모인 것으로 봤다. 지난 2016년 10월 국정농단 사태 당시 첫 촛불집회에서 주최 측 추산 2만명이 모인 것과 비교하면 최대 50배까지 큰 규모로 모인 것이다.

이날 집회 장소로 인파가 급격하게 몰리면서 오후 3시 10분께 9호선 열차가 국회의사당역을 무정차 통과했다. 뒤늦게 집회 장소로 진입하려는 인파가 인근 여의도역으로 쏠리면서 5·9호선도 여의도역을 정차하지 않았다.

7일 서울 지하철 5·9호선 여의도역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가 열리는 국회 쪽으로 향하고 있다. [차창희 기자]
시민들은 “윤석열 퇴진”, “내란 수괴 체포” 등이 적힌 푯말을 들고 민주주의 수호를 외쳤다. 탄핵 표결 시간인 오후 5시가 가까워지자 국회의사당 앞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숨을 죽이며 전광판에 나온 본회의 중계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모든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탄핵 표결 결과를 기다리며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다만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부결되고,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의힘 의원들이 탄핵안 투표 없이 퇴장하면서 장내는 실망감과 분노로 휩싸였다. 투표에 나선 재적의원이 총 195명에 그치면서 탄핵안 가결을 위해 필요한 200표에조차 미달하면서 윤 대통령 탄핵안이 사실상 부결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눈물 흘리는 시민들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김건희 특검법 부결 후,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가 국민의힘 의원들을 호명하는 동안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들은 국민의힘 의원 이름을 한 명 한 명 외치며 “표결에 동참하라”, “윤석열 체포하라”, “국민의힘 해체하라”고 외쳤다. 실망한 일부 시민들은 일찍이 자리를 뜨기도 했다. 경기도 안양시에서 탄핵 집회 참여를 위해 왔다는 40대 주부 김윤영 씨는 부결 예상에 두 아들의 손을 꽉 잡았다.

그는 “국민의 피로 민주주의를 이룬 대한민국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는데 무산됐다”며 “대통령이 본인의 이익을 위해 나라를 망치는 걸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지금까지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에 분노를 표했다.

서울에서 공무원으로 근무 중이라는 20대의 채 모씨는 “선출 권력인 대통령의 명령은 국민을 위해 내려져야 하는데 계엄 선포는 선을 너무 넘었다”며 “탄핵이 무산됐어도 휘하 공무원들은 지시를 따르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학생 최 모씨는 “민주 사회에 있어서 있어선 안 될 일이다. 탄핵안 부결도 이해가 안 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 대선 때 윤 대통령을 찍었다는 노부부는 “윤석열은 전쟁까지 할 사람 같아서 걱정된다”며 “돈 있는 사람들은 달러로 바꿔서 해외로 갈 것 같다”고 전했다.

분노한 시민들은 국민의힘 당사로 몰려 “국민의힘 해체하라”고 분노를 터트렸다. 한 시민은 “욕이나 실컷 하고 가자”며 “매국하는 것들”이라고 외쳤다. 경찰은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당사 주변을 바리케이트로 막았다.

한편 이날 국회의사당 주변 카페에선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추위를 녹이기 위해 커피를 제공하기도 했다. 한 카페는 “시민, 경찰 부담 없이 오세요”라며 커피를 무료로 나눠줬다. 일부 시민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집회에 참여는 못 하지만, 인근 카페에 커피 선결제를 해뒀다. 한 잔씩 받아가라”고 글을 올리기도 했다.

7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주사파 척결 국민대회’ 참가자들이 김건희 여사 특검법 부결과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관한 소식을 듣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날 광화문에서는 윤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맞불 집회가 주최 측 추산 30만명(경찰 추산 3만명) 규모로 열렸다. 자유통일당과 대한민국바로세우기운동본부 등이 주도한 ‘주사파 척결 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은 윤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하는 야당과 탄핵 반대라는 당론에도 윤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주장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비판했다. 오후 1시 집회가 시작되자 동화면세점에서 서울시의회까지 이어지는 차도가 2개 차로를 제외하고 모두 인파로 메워져 국회의 탄핵소추안 부결을 촉구했다.

오후 5시 30분께 국민의힘이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을 정하고 여당 의원 대부분이 본회의장을 퇴장한 사실이 전해지자 광화문 집회 참가자들은 일찌감치 “우리가 이겼다”며 환호했다. 반면 표결에 참여한 여당 의원과 한 대표의 실명을 거론하며 “배신자”라며 “낙인을 찍어야한다”고 날을 세웠다. 단상 위에 오른 사람들은 국민의힘과 한 대표를 향해 욕설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들은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2표 차로 부결되자 또 한번 “우리가 이겼다”며 ‘아! 대한민국’을 열창했다. 집회에 참가한 김 모씨(69)는 “계엄이 위헌이라는 것은 민주당의 일방적인 주장 아니냐”며 “대통령이 얼마나 속이 탔으면 그랬겠냐”며 윤 대통령의 결정을 옹호했다.

이 집회는 탄핵소추안 표결이 여당 불참으로 무산되기 약 1시간 30분 앞선 오후 8시께 해산했다.

경찰은 이날 서울 전역에 경력 135개 중대를 투입했다. 1개 중대는 약 90명으로 이날 하루에만 서울 전역에 경력 1만2000여명이 배치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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