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화된 트럼프의 ‘관세’ 폭격…한미 FTA 미래는?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다음 타깃은 한국? 자유무역협정 유지하며 美 체면 살릴 사안 제시해야
(시사저널=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11월25일 미국의 3대 무역 상대국인 캐나다, 멕시코 및 중국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선 취임 첫날 즉시 행정명령을 발동해 양국에서 수입되는 모든 물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강조했다. 캐나다와 멕시코가 펜타닐을 포함한 마약, 그리고 국경을 넘는 불법 이민자 유입에 대한 강력한 단속을 실시할 때까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이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미국 수출 비중이 각각 83%, 75%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의 이 같은 언급은 큰 위협이다.
트럼프는 첫 번째 임기 시작과 동시에 양국을 압박한 끝에 기존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하는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체결했고, 2020년 발효됐다. 형식적으로는 3국간 무관세 무역은 계속되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트럼프는 USMCA에 2026년 재협상을 통해 검토하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재협상을 앞두고 주도권을 장악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압박하는 동시에 만약 양국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이를 명분으로 USMCA를 폐기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반발하는 주변국에도 입장 변화 없는 트럼프
관세 부과 선언 이후 멕시코와 캐나다는 각각 상대와 입장이 다름을 강조하고 나섰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트럼프 발언 직후 전화통화를 통해 입장을 설명하고 담당 장관을 대동하고 플로리다주에 위치한 트럼프 사저를 방문해 별도의 회담을 가졌다. 트럼프는 트뤼도 총리와의 면담 이후 유익했다는 수준의 언급을 남겼지만 관세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캐나다는 대부분의 마약은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유입됨을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 세관에 따르면, 캐나다 국경 지역에서는 43파운드의 펜타닐이 압수된 데 비해 멕시코 국경 지역에서는 2만1100파운드의 펜타닐이 압수됐다. 국경을 넘는 불법 이민 시도의 경우도 멕시코 국경 지역에서 훨씬 빈발하고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의 이런 입장에 대해 멕시코는 분개하고 나섰다. 멕시코로서는 2018년 USMCA 체결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를 배제하고 협정을 체결하자고 주장할 때 자신들이 캐나다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결국 3국 간 협정이 체결됐는데, 캐나다가 그런 멕시코의 노력에 대해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인 것이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트럼프와의 대화를 통해 멕시코의 입장을 설명하고 국경 폐쇄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민을 통제하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셰인바움 대통령이 멕시코를 통한 미국으로의 이주 시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사실상 국경을 폐쇄하는 데 동의했다고 X(옛 트위터)에 밝힘으로써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트럼프는 자유무역이 미국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이러한 트럼프의 주장은 첫 번째 임기 때 무역대표부 대표를 역임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에 의해 구체화됐다. 라이트하이저는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전에는 미국이 일본 등 특정 국가와 직접적인 협상을 통해 무역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거대한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을 무기로 상대방의 양보를 받아낼 수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슈퍼 301조 등 미국의 다양한 법령과 제도들을 활용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라이트하이저의 주장이다. 하지만 WTO 출범 이후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바로잡고 상대에 대한 정당한 보복 조치들마저 정당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면서 미국은 일방적으로 약탈당했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미국으로서는 더 이상 자신을 구속하는 다자간 무역체제를 인정할 수 없으며 여기서 탈퇴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과 일자리를 지키는 길이라는 라이트하이저의 주장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트럼프 당선인이 무력화시켰던 WTO 정상화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면서 암묵적 동조를 함으로써 미국이 더 이상 다자간 무역체제를 존중하지 않을 것임은 명백해졌다.
미국의 태도가 이렇게 변화하면서 관심은 미국이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의 존속 여부에 쏠리고 있다. 미국은 의외로 소수의 국가와 FTA를 체결했다. 대한민국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는 미국 입장에서 지원 대상이며 이들 국가와의 FTA는 경제보다는 외교 및 안보적 관계를 염두에 두고 체결된 것이 많다. 트럼프로서는 캐나다·멕시코, 그리고 한국과 체결한 FTA가 주요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한미 FTA를 즉시 파기하겠다는 언급은 하지 않지만 재협상을 요구할 것은 확실하며, 만약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FTA 중단을 선언할 가능성은 다분하다.
'픽업트럭 관세 20년 연장' 등 전례 참고해야
우리 입장에서는 FTA 협정문의 문구에 매달리기보단 변화된 미국의 입장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몇 년 사이 대한민국 기업의 미국 투자가 증가하면서 각종 설비 및 원부자재 공급이 증가했는데 이것은 수출입 통계상 모두 한국의 수출, 미국의 수입으로 잡히면서 우리의 대미 흑자가 급증한 것과 같은 착시효과를 유발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의 고민이다. 미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미국 제조업 부활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는 점은 잘 인식되지 않고 무역흑자 급증만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한미 FTA 유지가 당연히 바람직하며, 이를 위해 적절한 협상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트럼프 당선인은 첫 번째 임기 동안 한미 FTA 재협상을 추진해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켰다고 생각한다. 당초 2021년 종료 예정이었던 픽업트럭에 대한 25% 관세를 20년 연장함으로써 미국 시장과 일자리를 보호했다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리 중요하지 않은 픽업트럭 관세 연장이라는 명분을 제공함으로써 FTA 유지라는 성과를 얻어냈던 것이다. 이번 재협상 과정에서도 이와 같은 아이템을 발굴하는 것이 급선무다. 미국으로서는 체면과 명분을 세울 수 있고, 우리 입장에서는 큰 타격이나 피해 없이 양보할 수 있는 사안을 제시함으로써 서로가 만족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30년 가까이 유지되던 WTO 체제는 이제 무력화되었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미국이 어떤 길을 걸을지에 대해 우리는 멕시코와 캐나다의 사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양국과의 협상 결과를 토대로 우리에게 유사한 형태와 수준의 요구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자간 무대가 위축되고 양자 협상의 시대가 돌아오고 있는 만큼 현실적 대응이 필요하다. 세계화 시대는 우리에게 큰 기회와 성과를 제공해 줬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고 있는 만큼 과거의 기억은 빨리 잊고 변화하는 현실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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