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엠파이어』 패럴·뉴먼 “미·중, 패권 위해 글로벌 기술적 장치를 장악해 무기화” [김용출의 한권의책]
얼마 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며 다시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는 평소 친하게 지냈던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 총리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거의 “졸도 직전까지” 격분하고 말았다. 그것은 언성을 높이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다.
2020년 2월, 트럼프는 통화에서 존슨에게 영국 통신기업의 화웨이 설비 구입 중단을 강력히 요청했는데, 존슨이 그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존슨의 입장에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당시 5G설비를 할 수 있는 회사는 노키아와 에릭슨, 화웨이 세 군데밖에 없었는데, 중국 화웨이의 가격 경쟁력이 월등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에 영국을 비롯해 화웨이의 설비를 이용하는 모든 국가는 최고 수준의 비밀정보를 공유하는 국가들로 구성된 ‘파이브 아이즈’에서 퇴출시키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존슨은 영국 5G 네트워크에서 화웨이가 제조한 네트워크 장비 사용을 6개월 만에 사용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화웨이는 5G 설비를 압도적으로 싼 가격에 내놓아서 세계 시장을 석권하려 했다. 농촌 지역을 먼저 장악한 뒤 도시로 진격하는 일종의 마오쩌둥식 사업 전략이었다. 더구나 화웨이의 회장 런정페이는 1994년 장쩌민 당시 중국 총서기와 만났을 때 “교환기 설비 기술은 국가 안보와 연결되며, 자체 교환기 설비를 갖추지 못한 국가는 군대가 없는 국가와 같다”고 말했다.
미국은 이미 자국 주도의 글로벌 정보고속도로를 통해 세계의 모든 정보통신을 장악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분산되었지만, 2002년 무렵만 해도 전 세계 인터넷 통신 중 미국을 거치지 않고 세계의 두 지역을 오간 비율은 1% 미만이었다.
예컨대, 브라질 남쪽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북부의 어느 도시로 가는 용량이 큰 이메일은 보통 미국의 마이애미를 경유해 이동한다. 브라질 내의 느려터진 구리선을 이용하는 것보다, 미국을 경유하는 초고속 광섬유 케이블을 이용하는 게 더 빠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글로벌 정보통신망이 미국의 감시 및 권력기관들에 의해서 감시 체계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즉, 미국은 초고속 통신망을 정보 및 국방기관들이 밀집해 있는 워싱턴DC 북부 버지니아 지역을 경유하도록 유도했고, 이곳을 통과하는 광섬유는 프리즘 기술을 통해 두 개의 신호로 분리되도록 했다. 하나는 원래 경로로 이동하고, 다른 하나는 신호정보를 담당하는 미 국가안보국으로 간 뒤 이스라엘 기업이 가진 기술을 통해서 정보가 수집됐다.
인터넷 및 정보통신뿐만이 아니다.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을 이용해 다른 국가를 위협할 잠재력 역시 확보했다.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 회사 대만의 TSMC를 통해서 칩을 생산할 수 있도록 했지만, 정교한 설계가 가능한 퀄컴 같은 기업은 미국 영토에 기반을 두도록 했다. 이들의 설계도와 관련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다른 나라의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도록 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전체를 장악했다. “마치 가시 달린 낚싯바늘에 미끼를 달아놓은 어부의 낚싯줄처럼”.
글로벌 기축통화가 된 달러 패권 역시 미국의 최대 권력이 됐다. 세계 각국은 미국의 첨단 제품이나 소프트웨어를 사기 위해서 달러가 필요하지만,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끼리 무역을 하기 위해서라도 달러가 필요하다. 각국 은행들은 글로벌 경제에서 활동하기 위해선 달러로 표시된 미국 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미 재무부는 바로 이 미국 내 은행 계좌를 동결시킬 권한을 바탕으로 전 세계 금융권을 통제할 수 있다.

미국은 이처럼 자국의 안전을 보호하고 이익을 위해 글로벌 인터넷과 정보통신, 금융 시스템, 달러화 패권 등 경제네트워크를 지배의 도구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바꾸었다. 마침내 언더그라운드 제국이 탄생한 것이다.
“미국은 천천히,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생각하지도 않고 세계 경제를 하나로 묶어주던 언더그라운드 네트워크를 언더그라운드 제국으로 바꿔버렸다. 이 언더그라운드 제국에서 미국은 세계의 대화를 엿듣고 적국을 세계 경제에서 고립시킬 수 있었다…. 미국은 ‘글로벌 거미줄’ 한가운데에 거미처럼 웅크리고 앉아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적국과 우방국이 나누는 대화의 미묘한 울림을 감지할 수 있다. 그리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강철보다 강한 끈으로 적대국 경제의 숨통을 조일 수 있다.”(26쪽)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과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원에서 각각 국제정치를 가르치고 있는 두 저자는 책 『언더그라운드 엠파이어』(박해진 옮김, PADO북스)에서 ‘무기화된 상호의존성’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이 중립적으로 보이는 글로벌 경제의 기술적 장치들을 장악해 무기화하고 자국 이익에 이용하는지를 추적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다음 질문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은 왜 중국산 앱인 틱톡(TikTok)을 금지하려 하는지, 미국은 왜 화웨이의 5G 교환설비를 사용하지 말라고 동맹국들에 강권했는지, 중국은 왜 수많은 미국 앱을 금지했는지, 일본은 왜 한국 네이버가 지분 절반을 가지고 있는 일본 국민 메신저 라인(LINE)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지, 왜 삼성은 TSMC만큼 파운드리 사업을 잘 해내지 못하고 있는지….
책에 따르면, 1991년 소련 붕괴 등을 거치면서 냉전 체제가 해체되고 세계화가 급속하게 진전됐다. 각 기업과 국가들은 새로운 경제적 자유를 적극 이용했고, 이에 인터넷과 국제금융, 공급망이 급격히 확산되고 글로벌화 됐다.
그리하여 20여 년 전만 해도 글로벌, 인터넷 등의 단어는 ‘정보의 바다’라는 표현처럼 국가를 초월한, 즉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도 어쩔 수 없는 ‘초국적’이라는 의미를 가졌고, 국가를 넘어 모두에게 열린 시장이 존재하고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하지만 2001년 9.11테러 이후엔 그 허상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통신망과 금융 시스템과 같은 글로벌 인프라를 국제적 통제 수단으로 발전시켰고, 중국 역시 이에 맞서면서 모두에게 평등하게 열려 있다고 믿었던 인터넷, 국제금융, 공급망이 글로벌 통제수단으로 변해버렸다.

저자는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제국이 급격하게 몰락할 수도 있다며 몰락을 피하기 위해선 안보에 대한 다른 비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조야한 내셔널리즘과 리쇼어링보다는 세상의 통행 규칙을 고안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한도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미국 이익과 세계의 이익이 겹칠 때 활발하게 작동하는 커먼웰스 비전을 제안하기도 했다.
“미국은 20년간 적을 상대로 언더그라운드 제국의 무기를 사용했다…. 제국의 뿌리는 너무 멀리, 너무 깊이 파고들어 있기에 완전히 뽑아낼 수 없다. 하지만 심연의 어둠은 벗어날 수 없어도 태양을 향해, 하늘을 향해 제국의 성장 방향을 위쪽으로 틀어가는 노력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285쪽)
2. 미 달러화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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