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탄핵 거부 여당 압박하러 나왔다"… 표결 앞둔 국회 앞 인산인해
집회 신고인원 20만명, 지하철 무정차
"비상계엄이 장난입니까. 대국민 담화를 보고 화가 치밀었요. 어물쩡 넘어가기만 하나요! 이 사람이 우리 국민을 지킬 수 있습니까."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대학생 황영서(21)씨는 아침 9시에 시외버스를 타고 대전에서 이곳까지 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규탄하기 위해서다. 밤에 대전으로 돌아갈 버스표를 구하지 못한 데다 숙소도 아직 마련하지 못했지만, 그는 계속 국회 앞을 지키겠다고 했다. 황씨는 "윤 대통령이 탄핵되고, 수사를 통해 처벌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국회 본회의 탄핵 표결을 앞둔 이날 국회의사당 앞은 바늘 하나 들어갈 틈없이 인파로 가득찼다. 부모 손을 잡고 나온 어린 아이부터 대학 과잠(학과 점퍼)을 입고 나온 대학생, 지팡이를 짚고 나온 노인들까지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영상 4도의 쌀쌀한 날씨에도 시민들은 두꺼운 옷을 껴입고 한 손에는 '윤석열 탄핵' '내란죄 윤석열 체포' 등 내용이 적힌 손팻말을 든 채 "탄핵하라" 구호를 반복해 외쳤다. 집회 인파가 몰리면서 서울 지하철 9호선 운영사인 '서울시메트로9호선'은 오후 3시 38분쯤 '국회의사당역과 여의도역 무정차 통과 중'이라는 안전 안내문자를 발송했다. 오후 3시에 시작한 집회 신고 인원은 20만 명. 경찰 추산은 최소 2만1,000명이다.
참가자들은 대통령 탄핵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들 최우현(9)군과 집회에 나온 장모(39)씨는 "우리 아이가 사는 시대에 계엄령이 나오는 걸 두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계엄이 선포된 날, 헬기 때문에 집 창문이 흔들렸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며 "아이를 재우고 난 다음에 무서워서 잠을 못잤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 자리에 나온 건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경고"라며 "대통령은 하루 빨리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이날 오전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탄핵 부결 당론을 바꾸지 않고 있는 여당을 압박하기 위해 나왔다는 이들도 적잖았다. 윤 대통령은 오전 10시 용산 대통령실에서 생중계로 진행된 대국민담화에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많이 놀라셨을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자신의 거취도 당에 일임했다. 그러나 2분가량의 짦은 메시지를 진정한 사과로 볼 수 없고 일단 탄핵만 피해보려는 행보란 비판이 거세다. 김모(54)씨는 "자기 살길만 찾으려는 대통령과 여당에 크게 실망했다"며 "국민의힘 의원들을 국민이 압박하지 않으면 탄핵이 안 될 것 같아서 왔다"고 말했다. 그는 "입으로만 국민들을 위한다고 하지 말라. 민의가 아니라 이득을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일갈했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홍찬(35)씨는 "계엄령 선포는 우리 국민을 무시한 것으로, 극우 유튜버를 믿는 이 정권을 놔둘둘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집회에 참여한 이들도 눈에 띄었다. 대전 유성구에 사는 뇌병변 1급 장애인 박명용(54)씨는 "오전 8시부터 4시간 걸려 여기까지 왔다"며 "정부와 여당은 국민들 입장은 하나도 생각 안하고 마음대로 하고 있는데 집에만 있기엔 답답하고 화가 났다"고 밝혔다. 지팡이를 짚고 나온 김정수(78)씨는 "나라가 망할까봐 나왔다"고 말했다.
대학생들도 힘을 보탰다. 전국 31개 대학에서 온 대학생 1,200여 명(집회 측 추산)은 이날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시국선언을 했다. 숙명여대생 황다경씨는 "일주일간 학우 2,666명의 마음이 모였고, 기자회견에 학생 500명이 모였다"며 "대학생의 이름으로 윤석열 퇴진을 이뤄나가자"고 외쳤다. 경상국립대 재학생 정하늘씨도 "이 나라 민주주의는 안중에 없고 자기들 밥숟가락 지키기에 급급한 국민의힘의 실체를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역사의 심판대에서 공범으로 최후를 맞고 싶지 않다면 내란 동조 행위를 당장 그만두라"고 강조했다.
서현정 기자 hyunjung@hankookilbo.com
강예진 기자 ywhy@hankookilbo.com
문지수 기자 doo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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