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나흘 만에 110초 담화…국민 아닌 여당 향한 탄핵 부결 호소
한동훈 “대통령 직무집행정지” 발언에 ‘분주’
탄핵안 표결 본회의 7시간 앞두고 대국민 담화
“임기 등 정국 안정 방안 우리 당에 일임”
“계엄, 절박함에서 비롯”…‘야당 탓’ 그대로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사태 나흘 만에 처음으로 내놓은 입장은 반성과 대국민 사과보다는 여당에 탄핵소추안 부결을 호소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탄핵 여론은 거세지고 있지만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계엄 선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여전히 여론과는 동떨어진 인식을 보이며 탄핵 필요성만 증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7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약 110초간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뒤 퇴장했다. 브리핑룸에서 생중계로 진행됐지만 취재진의 입장은 허용되지 않았고 질의응답은 없었다. 이날 오후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윤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을 일방적으로 전하는 형식의 담화였다.
윤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사과” 등 총 세 차례의 대국민 사과를 표명했다. 하지만 발표 시기와 전반적인 내용을 볼 때 궁극적으로 여당 의원들에게 탄핵소추안 부결을 호소하려는 의도가 짙은 담화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3일 밤 시작된 비상계엄 사퇴 이후 계엄군이 민의의 전당인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진입하는 모습을 전국민이 지켜봤지만 윤 대통령은 어떤 입장도 내지 않고 칩거 상태에 있었다. 윤 대통령을 움직인 것은 여당에서 제기되는 탄핵 찬성론이었다. 전날(6일) 오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집행정지가 필요하다”고 폭탄 발언을 하자 윤 대통령은 급히 한 대표를 관저로 불렀다. 여당은 전날 밤 늦게까지 10시간 넘는 릴레이 의원총회를 열었고 대국민 사과 등 요구안을 윤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윤 대통령은 탄핵을 피하기 위해서는 여당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윤 대통령은 국회 본회의 개의를 7시간 앞둔 이날 오전 10시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저의 임기 문제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며 “향후 국정 운영은 당과 정부가 함께 책임지고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여당과 한 대표에게 권력을 넘길테니 탄핵을 막아달라는 호소였다. 그러자 전날 탄핵 찬성 입장을 밝혔던 친한동훈계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탄핵 반대로 입장을 선회했다. 당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한 대표의 요구를 수용해 내놓은 담화”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당에 권한을 넘겨줘 당이 후견인 역할을 하고, 당은 윤 대통령의 탄핵은 막아주는 일종의 거래가 이뤄진 셈”이라고 말했다.
이날 담화가 당장 여당 내 탄핵 주장은 수습했을지 몰라도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는 탄핵 여론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여전히 비상계엄은 필요한 조치였다는 인식을 드러내며 오히려 여론의 반발만 키웠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이번 비상계엄 선포는 국정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으로서의 절박함에서 비롯됐다”고 변명을 이어갔다.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던 지난 3일의 입장을 유지한 것이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비판적 목소리가 나온다. 또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통화에서 “당의 실낱같은 권력 유지의 가능성을 위해 내란죄에 동조해주는 것이 맞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의 본질은 헌정 파괴다. 헌법은 비상계엄 선포 요건으로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를 규정하고 있음에도, 윤 대통령은 위헌적 비상계엄을 통해 비판 세력을 제거하고 권력을 독점하려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반헌법적 포고령,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표결 저지 시도, 정치인 체포 시도에 대해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다. 겉으론 고개를 숙였지만 반헌법적 친위 쿠데타에 대한 반성을 찾을 수 없었다. 압도적 탄핵 민심을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담화였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여권에서조차 “어차피 진심 어린 사과는 기대도 안 했다. 그 정도 책임감은 평생 보여본 적 없는 사람이라. 일생 보수만 학살하다 가는구나”(김웅 전 의원)라는 평가가 나왔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412071003001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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