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식스로 시작해 에스파 거쳐 로제로 끝났다

김영대 음악 평론가 2024. 12. 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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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웠던 2024년의 K팝 총결산

(시사저널=김영대 음악 평론가)

K팝의 2024년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끌벅적했지만 과연 그만큼의 실속과 성장이 있었나 싶은 의문도 함께했던 한 해다. 수치로만 보자면 작년을 기점으로 해외 매출 1조원 시대를 열며 코로나19 기간을 지나면서도 지속적인 양적 성장을 이뤄냈다. 글로벌 K팝 스타들의 해외 공연도 활발히 재개되며 객관적인 성장을 입증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간 주목하지 않았거나 가려져 있던 산업 내 모순이나 비리도 함께 드러나며 전반적인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늘 그렇듯 혼란의 와중에도 역사적인 히트곡은 나왔고 화제의 그룹, 화제의 바이럴 송, 그리고 글로벌 스타로서 세계시장에서 맹위를 떨친 팀들은 그 나름대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위부터 그룹 블랙핑크 로제, 그룹 에스파, 그룹 데이식스 ⓒ로제 인스타그램·에스파 X·데이식스 X

밴드 포맷 뮤지션들 위력 발휘

올해 한국의 주류 대중음악계는 데이식스로 시작해 에스파를 거쳐 로제로 끝났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데이식스는 데뷔 9주년 만에 커리어 사상 가장 화려한 한 해를 보냈다. 멤버들이 군복무를 하는 동안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와 《예뻤어》가 예상치 않게 차트 역주행을 하며 내려올 줄을 몰랐다. 제대 후 완전체로 컴백한 이들은 앨범 'Fourever(포에버)'를 발표해 《Welcome to the Show(웰컴 투 더 쇼)》와 《Happy(해피)》를 잇따라 히트시키며 연말까지도 사그라들지 않는 인기를 과시하는 중이다.

몇 년 전부터 이어져온 걸그룹의 홍수와 글로벌 K팝 스타들의 약진 속에 트로트나 발라드가 아닌 밴드 음악 포맷으로, 그것도 특히 로컬팬들의 정서에 어필해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모습은 지난 십여 년의 K팝 역사를 돌아봐도 극히 드문 사례다. 특히 이들의 인기는 다른 외부적인 요인들보다는 음악적인 힘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각별하다. 오랜 시간 무대를 통해 팬들을 만나며 조금씩 신뢰도와 인지도를 끌어올려온 이들이 결국 대기만성형 성공을 이뤄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데이식스의 인기를 필두로 2024년 가요계는 루시(LUCY), QWER, 이승윤, 우즈(WOODZ) 등 장르는 달라도 록 혹은 밴드 포맷의 음악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뮤지션들이 특히 위력을 발휘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공연장을 통해 팬들과 자주 호흡하며 음악적인 스킨십을 바탕으로 탄탄한 팬덤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데이식스와는 다른 의미로 커리어의 정점을 새롭게 한 또 하나의 그룹은 바로 에스파다. 에스파는 SM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으로 데뷔와 동시에 주목을 받았으나 멤버들의 매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콘셉트과 착장 등으로 다소 부진했고, 오히려 후배 그룹인 뉴진스와 아이브 등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내준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Spicy(스파이시)》로 반등에 성공해 '올해의 곡'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Supernova(슈퍼노바)》, 예술적인 뮤직비디오를 자랑하는 《Armageddon(아마겟돈)》과 캐치한 퍼포먼스가 일품인 《Whiplash(위플래시)》까지 모든 곡을 히트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이에는 기존의 노선을 일부 수정해 멤버 개개인의 개성과 대중적인 매력을 끌어올리고자 한 SM 측의 전략적인 판단도 주효했다. 최근 K팝의 트렌드인 이지 리스닝을 역행하는 일명 '쇠맛'의 강렬한 사운드와 퍼포먼스는 오히려 이 경쟁 속에서 에스파의 위상을 돋보이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로제는 브루노 마스와 함께 한 《APT.(아파트)》를 통해 싸이의 《강남스타일》 이후 최고의 '국산' 바이럴 송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콩글리시로 이루어진 제목, 한글 가사가 하나도 없지만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마성의 후크, 유쾌한 익살미를 담아낸 레트로 스타일의 뮤직비디오와 최고의 팝 스타인 브루노 마스라는 예상치 못한 파트너와의 결합 등 이 음악의 인기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는 차고 넘친다.

무엇보다도 로제가 블랙핑크 시절부터 다져온 음악적 신뢰와 인간적 매력에서 우러나오는 '호감'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솔로 활동을 시작해 성공을 거둔 바 있는 제니, 리사와 더불어 로제까지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론칭함으로써 K팝은 블랙핑크의 공백에 따른 스타 부재의 아쉬움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하이브-민희진 갈등이 남긴 진짜 교훈

마지막으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올해의 사건으로 하이브-민희진 갈등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이 갈등은 그야말로 1년 내내 K팝의 다른 모든 뉴스를 삼켜버릴 정도로 그 여파가 대단했을 뿐 아니라 K팝 팬뿐 아니라 전 국민의 이야깃거리가 됐다. 더구나 이 사태는 아직도 새로운 이야기를 쏟아내며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잠재적으로 2025년의 이슈라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올해 4월, 하이브가 주장한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의 경영권 탈취 시도와 이에 대한 감사 착수 소식을 시작으로 촉발된 이 사건은, 곧바로 이어진 민 전 대표의 필리버스터급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 미디어의 역사를 새로 쓴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까지 확대됐다. 양측의 개별적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사건은 몇 가지 생각할 지점을 남겼다.

우선 하이브가 의욕적으로 실험해온 '멀티 레이블' 체제의 올바른 운용과 실질적 효용에 대한 문제다. 멀티 레이블이라는 체제는 각각의 레이블이 저마다의 창조적 아이디어를 가지고 독자적인 창작물들을 선보일 때 그 궁극적 의의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서 하이브와 같은 모기업은 각 레이블의 독자적 판단과 선택을 보장하면서 혹시 있을지 모를 레이블 간 갈등을 차단하고 조정하는 일을 담당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보면 하이브가 그런 역할을 올바로 수행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게 된다.

또 하나의 시사점은 K팝에서 민 전 대표와 같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신 경영자의 존재를 각인시켰다는 것이다. 그간 K팝은 소위 '기획사'가 운영하는 K팝 공장을 정착시키는 데 주력했다. 당연히 이 '공장'을 운영하는 경영자는 연습생, 작사, 작곡가, 안무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등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K팝이라는 상품을 양산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다. 그런데 뉴진스의 등장은 여기서 민 전 대표라는 기획자 1명의 예술적 비전과 미감이 단순히 그 시스템의 부속물이 아니라 때로는 그 시스템 자체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다시 말해 뉴진스라는 고유한 결과물이 하이브라는 거대 기업의 시스템 때문이 아니라 레이블의 수장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민 전 대표의 존재가 있어서 가능했다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인 것이다. 결국 이 갈등은 민 전 대표 없는 뉴진스가 가능한가? 민 전 대표 없는 뉴진스는 뉴진스일 수 있는가? 민 전 대표를 배제하고 뉴진스와 같은 그룹을 양산하는 것이 가능한가, 혹은 타당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의 결론에 따라 향후 K팝 산업의 지형, 하이브의 위상, 그리고 당장 2025년의 K팝 판도도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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