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때문에…경제 충격 갈수록 태산
정치 리스크 장기화시 국가 신인도 하락 우려
[주가경향] ‘12·3 비상계엄 사태’ 후폭풍이 한국 경제까지 집어삼킬 태세다. 국무위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한 가운데 탄핵 정국이 이어질 수 있어 국가 신인도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주요국은 물론 전쟁 중인 러시아, 이스라엘 등도 지난 12월 4일 한국을 ‘여행 위험 국가’로 지정했다. 금융시장 변동성은 잦아들고 있지만, 경제·산업 정책이 동력을 잃어버리면서 국내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더 커지고 있다. 시장 안팎에서는 정치적 위험이 장기화할 경우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맞물려 국내 산업과 기업들이 관세 전쟁에 무방비로 노출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당장 한국 경제의 체력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인 원·달러 환율이 불안정하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2월 4일 오전 0시 30분께 1442원까지 치솟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받아들인 뒤 하락세로 돌아서긴 했지만, 탄핵 정국에 따른 정치 불확실성으로 여전히 1410원대를 웃돌고 있다.
한국 ‘여행 위험 국가’ 오명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 12월 4일 ‘12·3 비상계엄 사태’ 충격에 따른 시장 불안을 줄이기 위해 안정화 조치를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50조원 규모의 증시안정펀드 등을 가동하고, 한국은행은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해 직접 시중에 자금을 풀기로 했다. 하지만 불확실성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게다가 한국은 외환보유액을 풀어 달러 공급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달 한국을 ‘환율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한국을 환율 조작 가능성이 있는 요주의 국가로 꼽았다는 의미다. 한국은 평가 기준 중 ‘150억달러 이상의 대미 무역 흑자’, ‘경상수지 흑자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에 해당한다. 제재 대상은 아니지만, 미국으로부터 감시를 받아야 한다.
환율 고공행진이 이어지면 소비자물가에 악영향을 미친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 물가가 상승해 장기적으로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린다. 지난 11월 28일 한은은 경제성장률 둔화 우려로 금리를 2회 연속 내리는 이례적인 결정을 했는데, 물가가 오르면 금리 인하 효과가 제한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의 RP 매입 정책이 장기적으로는 (유동성 공급으로 인해) 원화 가치를 떨어뜨려 환율이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며 “외국인은 물론 국내 투자자들도 주식시장을 떠나고 있는 와중에 추세적인 조정이 이뤄지면 국가 신용등급 하락이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산업 현장에서는 한국 여행 금지 등으로 외국인 방문객의 소비도 줄고, 기업들이 신규 수출·수주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정치 이슈가 장기화하면 환율이 계속 올라 수입 업체들은 외국에서 대출받기도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증시의 경우 최악은 피했지만, 상승 동력이 약해 향후 반등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 사태 이후인 12월 4일 국내 주식시장이 우려했던 최악의 폭락 사태는 없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36.10포인트(1.44%) 내린 2464.00을 기록했다. 코스닥지수는 전장보다 13.65포인트(1.98%) 내린 677.15였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개장 여부를 고민할 정도로 충격이 클 것으로 우려됐으나, 밤사이 사태가 종료됐고 당국도 시장 안정화 조치에 나서면서 지난 12월 3일의 상승분을 반납하는 선에서 장을 마쳤다. 외국인이 코스피 시장에서 4100억원 가량을 순매도하긴 했지만, 규모만 놓고 보면 최근 국내 증시를 팔고 나가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다.
증시 최악 피했지만 상승 동력 제한
계엄이 조기에 해제된 데다 금융당국이 시장 안정을 위한 총력 대응을 선포한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다만 국내 경기 둔화 조짐에 외국인 투자자 이탈이 겹쳐 하락 압력이 지속된 증시에 정치적 불확실성이라는 악재가 더해지면서 당분간 조정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나증권 리서치센터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불확실성에 따른 단기 조정이 불가피하고 외국인들도 불확실성으로 인한 투자금 회수 가능성이 있다”며 “부족한 국내 시장 유동성을 감안하면 이런 현상이 나타날 경우 (주가의) 낙폭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경기의 추가 둔화와 중장기 경제 성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계엄 사태가 발생하기 전부터 한국 경제의 대내외 여건은 살얼음판이었다. 고금리 장기화와 내수 부진, 구조개혁 미진, 미래 성장동력 부재 등이 겹쳐 성장률 전망치는 떨어지고 있었다. 수출이 경착륙하고 내수 부양이 없으면 장기간 불황 국면이 지속하는 ‘L’ 자형의 장기 불황이 예상된다는 민간 연구소(현대경제연구원)의 경고까지 나온 상황이었다.
한국 경제가 내리막길로 가는 국면에서 발생한 ‘12·3 비상계엄 사태’는 부진한 소비와 투자를 더 얼어붙게 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2004년), 박근혜 전 대통령 (2016년) 탄핵 때도 소비심리가 악화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정국 불안이 장기화하면 국내 경기가 둔화할 수 있다. 소비가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고, 이 경우 올해 4분기와 내년 1분기 성장률에 추가 악재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제 수장(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 교수는 “정치적 불안 해소가 가장 우선인 상황인데, 현 경제 수장의 리더십으로는 문제를 돌파할 수 없다. (이번 사태에)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류 교수는 “국무회의 심의에 참석해 향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수장과 경제 파트너십을 맺으려 하는 국가와 기업은 없다”며 “당분간 차관 대행 체제 등으로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며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국내외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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