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탄핵 집회'에 아이돌 응원봉이? 엄혹한 시절 '몬베베'‧'시즈니'들의 사랑법
2024년 최고 히트곡 중 하나인 에스파 '위플래시'의 박진감 넘치는 하우스 비트가 깔리자, 형형색색의 응원봉들이 공중에서 신명 나게 흔들거렸다. 이곳은 연말 가요 시상식이 열리는 방송국 홀도, 콘서트가 열리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도, 고척돔도 아니다. 국회의사당역 앞 시위 현장이다.
아이돌 팬덤을 상징하는 응원 도구인 응원봉이 2024년 12월 윤석열 탄핵 촉구 시위 현장을 접수했다. 가녀리고 위태로운 촛불들 사이에서 응원봉들은 남다른 발광력을 과시했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그것들의 존재감은 더욱 빛났다.
"가장 어두운 때에 가장 밝은 것을 가져오고 싶었다."
"촛불은 꺼지지만, 꺼지지 않는 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을 '몬베베', '트레저 메이커'라고 칭한 이들이 말했다. 몬베베는 아이돌그룹 몬스타엑스의 팬덤명, 트레저 메이커는 아이돌그룹 트레저의 팬덤명이다.
이들은 10대 청소년이다. 원래는 '원도어'(아이돌그룹 보이넥스트도어 팬덤명) 한 명까지 10대 세 명이 오늘의 파티원이었다. 여기에 생판 처음 본, 그러니까 오늘 이 거리에서 만나게 된 20대 몬베베 한 명이 추가됐다. "같은 몬베베라 반가워서 인사하고 같이 다니자고 했다"고 했다.
과거에는 시위 현장에서 학교‧지역‧직장조합명을 새긴 깃발 아래 하나로 뭉쳤다면, 이제는 응원봉으로 하나되는 모습이었다.
발광력 훌륭하고, 유대감을 느끼게 해주는 상징물이라는 것만으로도 응원봉의 효용 가치는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이들이 굳이 시위 현장에 응원봉을 들고 온 데에는 나름의 서사가 있었다.
"멤버 두 명이 지금 군대에 가 있고 한 명은 또 들어갈 예정인데, 계엄 선포하면 군인들 동원하는 거니까 너무 걱정된다."
"내 '최애(제일 좋아하는 이)'가 라디오 DJ를 하는데 방송 진행하다가 계엄 선포 사실을 전했다. 아이돌이 계엄 선포를 전하는 세상이 말이 되나."
몬베베 두 명이 격정을 토했다. '계엄'과 '아이돌'은 너무나 멀고 먼 세상의 단어 같지만, 이렇게나 순식간에 연결됐다. 계엄의 그림자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군대 간 아이돌을 걱정하는 팬은 몬베베만이 아니었다. 한 '시즈니(아이돌그룹 NCT 팬덤명)'의 최애 멤버 또한 올해 군대에 갔다고 했다. 그는 "처음엔 조금 걱정되는 수준이었는데, 계엄군이 더불어민주당 안귀령 대변인을 향해 총을 겨누는 것 보고 혹시나 그런 일이 있을까 봐 겁이 났다"고 했다. 아이돌 팬들은 나의 최애가 나를 향해 총을 겨눌 수 있다는 끔찍한 상상에 괴로워했다.
그는 자신의 최애를 향해 "같이 군 생활하는 청년들과 잘 연대하며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했으면 좋겠고 몸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위 현장을 빛낸 가지각색 응원봉 사이에서 네모난 연둣빛의 시즈니들의 응원봉은 유독 눈에 띄었다. 어마어마한 발광력을 뽐내는 데다 저마다 다른 '응꾸(응원봉 꾸미기)'로 오가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네모난 면에 한 글자씩 '탄', '핵'을 붙이기도 하고, '체포하자', 'OUT 윤석열 탄핵' 등 스티커를 붙인 시즈니들의 응원봉들은 이날 거리에 모인 시민들의 촬영 대상 단골손님이었다.
국회 정문 앞에서 만난 세 명의 20대 시즈니들은 '응꾸'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팬 카페에서는 탄핵 시위 대비 응원봉 꾸미기 가이드가 제공되기도 했다고 했다. 이들은 "내 최애 이름 붙여야 할 자리에 '탄핵'을 붙이고, 팬질하기도 모자란 아이돌 팬이 시위 현장까지 와야 하겠느냐"며 "제발 전처럼 걱정 없이 팬질할 수 있게 해달라"고 '윤석열 탄핵'을 외쳤다.
윤석열 대통령은 역사를 후퇴시켰지만, 시위는 진화하고 있었다. 내란죄 혐의를 받는 국가 지도자에 대한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을 하루 앞둔 2024년 12월 6일. 세상은 오늘도 한 발 나아갔다.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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