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슐랭 스타들]⑬에빗, 푸른 눈을 통해 바라본 새로운 한식

이정수 기자 2024. 12. 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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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 1스타 에빗의 조셉 리저우드 셰프
틀에 벗어난 자유로운 한식 세계 꿈꾼다
조셉 리저우드 에빗 오너 셰프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푸르다(淸)’라는 단어는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직관적으로 떠올리면 청록색 비슷한 색일 수도 있다.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보면 푸르다고 하듯이 말이다. 녹음이 짙은 산을 바라보아도 마찬가지다. 그뿐만이 아니다. 때론 사람에도 이 색을 투영해 빗대기도 한다. 때묻지 않은 사람을 볼 때 우리는 그 사람을 푸르다고도 한다. 의미야 어찌 됐든 그 단어가 관통하고 있는 한 가지 뜻이 있다. 바로 순수함이다.

그 ‘푸른 눈’으로 한국 음식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바로 미슐랭 1스타 에빗의 조셉 리저우드 셰프다. 푸른 렌즈를 통해 바라본 한식은 어떨까. 먼저 순수한 시선으로 바라보니 편견이 없다. 우리는 대개 한식에 대해 자기만의 ‘공식’이 있다. 삼겹살엔 쌈장 혹은 기름장, 콩국수엔 설탕, 소금을 치는 듯이 말이다.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되면 “한식은 그게 아닌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너무 익숙하기에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조셉 셰프는 자유롭다. 어른이 순수한 어린아이의 상상력을 동경하는 것처럼, 그 또한 우리가 가지지 못한 그 비슷한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 색안경을 끼지 않고 한식을 바라보니 식재료의 배합도 무궁무진하다. 체리와 함께 담근 된장, 메주로 만든 도넛, 참기름 캐러멜 등, 색다른 접시들이 에빗엔 넘쳐난다. 물론 그 시도가 무모함에 그치지 않는다. 미슐랭으로부터 별을 받았다는 의미는 단순 색다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먼저 맛이 보장돼야 한다.

비록 낯선 이방인으로 한식을 처음 접했으나 그 애정의 깊이는 한국인 못지않다. 직접 장을 담그고 전통주도 주조하면서 몸소 한식을 체득하고 있다. 한식의 깊이를 배워 그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함이다. 다만 그는 자신의 한식을 창조 중에 있다. 앞서 말한 체리 된장이 조금 이상하지 않냐고 물었을 때, 오히려 조셉 셰프는 ‘단짠(단맛과 짠맛의 조합)’은 세계적으로도 훌륭한 조합임을 강조했다. 마치 동남아에선 칠리소스와 파인애플을 함께 곁들이듯이 말이다. 이 역시 순수하게 바라보니 가능한 일이다.

또 그가 중요시 여기는 것이 있다면 바로 ‘계절감’이다. 한국은 24절기로 나누어져 있어 식재료가 시기에 민감하다. 최적의 순간에 최고의 식재료를 전달해 최상의 맛을 내는 것. 그가 꼽은 좋은 요리의 요건 중 하나다. 올해 가을 코스 역시 가을만이 품고 있는 쿰쿰한 흙내, 떨어진 낙엽에서 피어오르는 그 향 등을 접시에 담아냈다.

에빗의 오리 요리. 잘 구워낸 오리 옆에 참기름, 배를 활용한 소스와 반시, 양하 등이 놓여 있다. /에빗

전국 각지에서 공수한 진귀한 식자재로 풀이한 조셉 셰프의 요리는 익숙하면서 새롭다. 한식의 근간은 지니고 있으나 ‘푸른’ 색채가 가미됐기 때문이다. 특히 합천 오리와 가을의 별미, 반시 등을 합친 메뉴가 그러하다.

두툼한 오리를 한입 크게 썰어 입에 넣으면 살짝 그을린 불향이 먼저 들어온다. 이어 오리의 육즙이 슬며시 배어 나오는데, 가을의 풍요로움과 닮아있다. 이어 참기름, 생강과 비슷한 맛을 내는 양하가 가금류 특유 향을 잔잔하게 가라앉힌다. 배를 홍삼과도 같이 진하게 달여낸 소스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건강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나며 한식스러움을 잊지 않았다.

산초 소르베도 별미다. 아삭하게 씹히는 사과와 산초의 청량함이 만나 그 시원함이 배다. 숨을 내뿜을 때마다 코 끝에 걸치는 상큼한 향은 가을 하늘의 청명함도 닮아있다. 가을 끝자락과 겨울 초의 그 경계는 오직 한국에서만 느껴볼 수 있기에 더 반갑다. 호박, 두부, 키조개 등을 이용한 타르트도 마찬가지다. 생김새는 서양의 것이지만 안은 잘 요리한 해물 볶음과 비슷하다. 매콤한 소스 속에 쫄깃한 키조개가 숨어 있는데, 한입 삼키고 나면 매콤한 기운이 식도를 타고 다시 올라와 몸마저 따뜻해지는 기분이 든다.

조셉 셰프는 앞으로도 그만의 색채로 한식을 그려내고 싶다고 했다. 최근 그가 관심 깊게 보고 있는 문화는 바로 수라상이다. 이 외에도 복날에 먹는 삼계탕, 동짓날의 팥죽 등도 그가 도전해 볼 과제라고 했다. 푸른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한식이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에빗의 산초 소르베. /에빗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미슐랭 1스타 에빗을 이끌고 있는 조셉 리저우드다. 호주 태즈매니아에서 태어나 영국, 미국, 스칸디나비아 등 다양한 곳에서 요리를 해왔다. 2016년에 처음 한국에 왔다. 당시 한남에서 몇 주간 팝업 레스토랑을 운영한 것이 인연이 됐다.”

―한국 요리에 관심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한식은 여전히 널리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요리와 재료들이 많다. 이 점이 아쉽다고 생각했다. 프렌치, 일식 등에 비해 한국 요리는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한식을 떠올리면 김치와 삼겹살만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간장게장 등 한식의 여러 요리는 세계적으로도 통할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에빗은 어떤 곳인가.

“에빗은 한국 재료를 나만의 색깔로 다양하게 선보이는 곳이다. 우리 메뉴는 계절에 따라 바뀌며 ‘발효’는 에빗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전통적인 한식당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한국 요리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감사하다.”

―에빗에서는 어떤 음식을 선보이는가.

“한국의 계절감과 독특한 식재료의 매력을 충분히 살리려고 한다. 메주를 이요한 도넛, 참기름을 활용한 캐러멜 등 다소 새로운 도전도 하고 있는 곳이다.”

에빗의 호박 타르트. 타르트 속에는 키조개, 매콤한 소스 등으로 채워 놨다. /에빗

―최근 고추장과 같은 장의 매력에 빠졌다고도 들었다.

“맞다. 4년 넘게 기순도 명인께 장 담그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한국의 장은 매력적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발효 문화는 있으나 한국은 좀 더 특별하다. 각 지역마다 맛이 다를뿐더러 만드는 사람에 따라서도 천차만별이다. 보편적이면서도 개성이 각기 다른 점도 흥미롭다. 가령 전라남도, 제주도, 경기도에서 만든 된장은 모두 각기 다른 맛을 지니고 있다.”

―장을 활용한 메뉴를 만들기도 하는가.

“딸기 고추장을 만들어 쫀드기에 사용해 보기도 했다. 체리를 활용한 된장도 만들어 봤다. 앞서 말했듯 장은 한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에 많은 요리에 다양한 장들이 사용되고 있다.”

―한국 사람들에겐 다소 생소한 조합 같아 보인다.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딸기 고추장은 정말 환상적인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매운맛과 단맛은 서로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런 조합은 다른 식문화, 특히 동남아 쪽에서도 많이 사용된다. 태국 음식을 보자. 파인애플과 칠리를 함께 사용하는 요리가 많지 않냐. 체리 된장도 마찬가지다. 고기에 곁들이면 궁합이 좋다. 에빗에서는 단순히 새로운 조합을 만들기보다는 맛도 고려하고 있다.”

에빗의 디저트 중 하나. /에빗

―에빗에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방법이 궁금하다.

“네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 한국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둘째, 맛이 좋아야 한다. 셋째, 한식의 요리 기법을 담고 있느냐다. 마지막으로, 요리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지를 본다. 이 기준들을 충족하는 방향으로 음식을 개발하고 있다.”

―한식에서 흥미로운 점이 또 있다면 무엇인가.

“특정 날에 꼭 먹는 음식이 있다는 것이 재밌다. 가령 생일에는 미역국을 먹는 문화가 있다. 복날에는 삼계탕이 있듯이 말이다. 동짓날엔 팥죽을 먹는 그런 문화가 외국엔 찾기 힘들다. 반대로 시험 보러 가기 전에 미역국을 먹으면 미끄러질 수 있으니 먹지 말라는 것도 재밌다. 이런 문화를 살려 에빗에서도 선보이고 있다. 찾는 손님 중 생일인 분이 있다면 미역국에서 착안한 케이크를 만들어 주고 있다. 화이트 초콜릿에 미역 잘게 갈아 녹여 비슷하게 만든다. 미역의 짭짤한 맛이 초콜릿의 단맛과 만나면 소금 아이스크림과 같은 맛이 난다.”

조셉 리저우드 에빗 오너 셰프가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있는 모습.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관심 가는 다른 문화가 있다면 무엇인가.

“임금님이 먹었다는 수라상 문화다. 파인다이닝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 중 하나는 방문하는 모든 고객에게 최상의 경험을 주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임금님을 대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수라상은 풍성하면서도 고급스럽고 누군가를 대접한다는 점에서 파인다이닝과 닮았다고도 생각한다.”

―에빗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찾아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보내준 응원도 최근 많아졌는데, 이 또한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다. 최고의 경험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좋은 기억의 일부분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다. 언제든 방문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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