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에서 밥 먹는 값 “추가 8만원입니다”

이미지 기자 2024. 12. 7.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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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송년 시즌 배짱 영업
‘룸 차지’가 기가 막혀
연말 송년회 시즌에 식당 내 별도의 ‘룸’에 대한 수요가 높다. 일행끼리 따로 밥을 먹을 수 있는 룸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3만원부터 8만원까지 ‘룸 차지(공간 이용료)’를 요구하는 식당도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요즘 잘나가는 식당들은 투 잡을 뛴다. 사장님 형편이 어려워진 거냐고? 아니다. 잘나가는 식당일수록 부업으로 버는 돈이 많다. 특히 연말 송년회 시즌이면 부업으로 버는 수입이 더 커진다.

이들의 부업은 임대업이다. 물론 이 식당들이 임대업으로 등록한 적은 없다. 식당 내부 공간을 나눴을 뿐이다. 그 가게에서는 음식과 함께 손님이 자기 일행끼리, 조용한 곳에서 밥 먹고 싶어 하는 욕구를 판다. 식당 안에서 따로 나뉜 방을 이용할 때 내야 하는 자릿세, ‘룸 차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 테이블, 5만원짜리입니다

미경 숙성 한우를 판다는 서울 마포구의 S 식당은 테이블 규모에 따라 자릿세를 차등화한다. 4인석은 3만원, 6인석은 5만원, 8인석 이상은 7만원을 자릿세로 받는 것이다. 이 집 소고기 메뉴 가격은 100g당 1만5800~2만3600원 수준. 4명이 방에 앉으면 고기 100~200g가량의 비용이 추가되는 것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소고기 식당에서 공지한 룸차지. /온라인 캡처

가장 저렴한 메뉴가 5만8000원, 최고가는 14만원(1인)에 달하는 서울 광화문의 M 샤부샤부 전문점은 방을 예약할 경우 5만원을 받는다. 10개 이상의 방을 갖고 있는 이 식당은 점심·저녁 장사에서 공간 이용료로 하루 100만원 넘는 매출을 추가로 올리는 셈이다.

과거에도 ‘룸’으로 불리는 별도의 공간은 식당에서 꽤 인기 있는 자리였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일행끼리 깊은 대화를 하기에 좋고, 조금 더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는 이유였다. 매출을 올려주는 대규모 인원에 이런 자리를 배정하거나 일찍 예약한 사람에게 좋은 자리를 주는 식이었다.

호텔에서나 받던 ‘룸 차지’가 대중화된 것은 코로나 사태 이후부터다. 코로나19 유행으로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조치가 전국으로 확대되는 등 한 공간에 모일 수 있는 인원수가 제한되면서 별도 공간을 가진 식당과 아닌 식당의 희비가 갈렸다. 홀에 칸막이만 설치해 놓고 ‘룸’이라고 예약을 받아 고객이 항의하는 촌극이 벌어질 정도였다. 이후 공간을 나눠 룸을 마련하는 식당이 많아졌고, 룸 차지라는 이름의 이용료가 대중화됐다.

실제로 이런 룸 차지는 레스토랑과 식당, 노포를 가리지 않고 확산하고 있다. 서울 용산의 Q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룸 차지로 5만원을 받고, 서울 역삼동에서 숙성 돼지고기를 파는 D 식당은 점심엔 2만원, 저녁엔 5만원의 추가 비용을 내야 이용할 수 있다. 서울 한남동과 성수동의 한식 주점, 강남의 중국식 훠궈 식당도 룸을 예약할 경우 별도의 이용료를 받는다.

◇비싼 것만 드세요

‘매출 보장’을 룸 예약의 조건으로 내걸기도 한다. 룸에서는 단품 메뉴를 팔지 않거나 일정 금액 이상의 주문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룸을 이용할 경우 인당 15만원이라는 최소 금액을 설정해 놓은 서울 도산대로 근처의 한 식당. /온라인 캡처

저녁 메뉴로 9만8000원짜리 한우 스테이크, 3만2000원짜리 어란 파스타 등을 파는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인근의 이탈리아 식당은 룸을 예약할 경우 1인당 최소 사용 금액을 15만원으로 책정했다. 예약 사이트에서는 2인일 경우 30만원, 3인일 경우 45만원이라는 예시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아이는 룸을 이용할 때만 데려갈 수 있다.

서울 여의도의 이베리코 돼지고기 전문점은 8명짜리 방에선 30만원, 10명 수용이 가능한 방에선 40만원 이상을 주문해야 한다. 주문 금액이 모자라면 이용 금액으로 8만원을 받는다. 서울역의 D 중식당, 용산의 G 소고기 전문점 역시 룸에서는 코스 주문이 필수.

사람을 많이 만나는 영업직이나 거래처 등과의 식사가 잦은 기업은 “손님 대접이 중요하기 때문에 별도 비용을 기꺼이 지불한다”고 말한다. 송년회 장소를 잡아야 하는 직장 막내 직원들도 “시끄럽다, 정신없다는 직장 상사의 타박을 듣느니 돈을 쓰는 게 낫다”고 한다. 물론 그 비용이 법인 카드(법카)에서 나오기 때문에 더더욱 신경 쓰지 않는다. 서울 강남, 광화문, 여의도 등에 룸 차지 받는 식당이 모여 있는 것 역시 법카로 밥 먹는 직장인이 많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음식 값과 룸 차지는 따로?

반감도 있다. 일주일에 3~4번씩 식당 예약을 한다는 한 기업 임원은 “음식 값도 비싼 식당들이 룸 차지까지 요구하면 심보가 고약하다는 생각이 들어 예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식당 음식 값엔 공간 이용료도 포함돼 있다는 주장. 음식 값 외에 최종 결제 금액에 추가되는 룸 차지가 체감 외식 물가를 끌어올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점주들은 “재료 값, 인건비가 속수무책으로 오르는 상황에서 음식 값을 마음껏 올리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의 고육지책”이라 한다. 고객 수요가 높은 상황에서 돈 내는 고객에게 자리를 줄 수밖에 없다는 항변.

전문가들은 “식당들의 메뉴·금액 공개가 필수가 됐듯이 룸 차지도 정보를 확실히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온라인으로 예약이 활성화된 요즘도 “룸 예약은 따로 전화를 달라”는 식으로 비용 정보를 숨겨놓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과한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소비자의 부담을 높일 수밖에 없다”며 “단순히 공간 이용 비용을 넘어 추가 금액에 알맞은 서비스까지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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