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알코올 연말 모임을 추천합니다

김신회 작가 2024. 12. 7.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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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신회의 매사 심각할 필요는 없지]
술이 나를 마셔 禁酒 3년
음주 습관을 되돌아보길

연말이다. 평소 술 안 마시는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한잔하게 되는 연말이 왔다. 하지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올해로 술 없는 연말 3년 차를 맞았다. 술을 끊은 지 삼 년이 됐다는 말이다. 야호!

일러스트=한상엽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말이면 위염을 달고 살았다. 줄기차게 이어지는 술자리에 프로 참석러를 자처하느라 생긴 만성질환이었다. 그럼에도 틈만 나면 술 마실 기회를 엿봤다. 밀린 안부를 나눈다는 명목은 핑계였고, 그저 죄책감 없이, 외롭지 않게 술을 마시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다 보니 온 세상 사람들을 다 만나고 왔음에도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이 안 났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다음 연말이면 다들 술자리에서 마주 앉을 것이기에.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고 시인 최승자는 썼다(시 ‘삼십 세’ 중에서). 그 말이 뼛속까지 파고든 지 한참 지난 어느 날 느꼈다. 이렇게 계속 마실 수도 없고 이렇게 안 마실 수도 없을 때 알코올의존증은 온다고. 나는 자박자박 술에 전 채 중년을 맞았다. 별다른 낙이나 취미도 없었기에, 일과를 마치면 냉장고에서 술을 꺼내며 퇴근을 기념하는 성실한(!) 술꾼이 됐다. 외출과 만남이 자유롭지 않았던 코로나19 시기에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1인 가구인 데다 재택근무를 하는 프리랜서로서 혼자 일하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고 잠드는 삶이 하염없이 반복되었다. 또 마시고 말았다는 죄책감이 엄습할수록 더욱 일에 매진했다. 이만큼 열심히 일했으니 마셔도 되겠지. 강도 높은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 나에게 술을 선물했다.

하루는 집 앞 공원에서 산책하는데, 벤치 구석에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출근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그곳만 유난히 시끌벅적했다. 쭈뼛쭈뼛 상황을 살피니, 어르신 중 한 분이 술에 취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를 일으키려 애쓰는 다른 어르신들의 불콰한 얼굴에서도 취기가 느껴졌다. 평소라면 그저 지나쳤을 광경에 문득 등골이 서늘해졌다. 마치 거울을 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아침부터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내가 보였다. 하지만 도망치듯 자리를 뜨고 나서도 그날 일을 마치고 냉장고를 열어 술병을 꺼내 들었다.

이후 몇 달 동안 술을 끊어보고, 한 번 마실 술의 양을 제한해 보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줄이며 음주의 유혹에서 멀어지려 애썼지만 모든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나는 그저 술을 즐길 뿐인데 왜 매번 술에 지는 것 같지? 이 생각이 들자, 내가 술을 즐기는 게 아니라 술이 나를 즐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술이 나를 마신다는 말은 그저 비유가 아니었다.

그다음부터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냥 마시기로 했다. 몸에서 받을 때까지만 마시자. 어차피 더 나이 들면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 없을 거야. 그러다 매일 취할 때까지 마시는 게 습관이 됐고, 이후 집에서조차 필름이 끊기자 ‘현타’가 왔다.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선 안 될 것 같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평생 못 멈출 것 같다는 자각이 왔다.

작정하고 집에 있는 술을 다 버렸다. 냉장고 안, 싱크대 구석구석에서 술병이 끝도 없이 나왔다. 자주 마시니까 쟁여둔 술, 선물 받은 술, 언젠가를 위해 아껴둔 술을 싱크대 배수구에 쫄쫄 따라 버리면서 그간 나는 모든 앞날을 술로 기대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마치 내 음주 인생에 찬란한 미래라도 있는 양.

그날로 술을 끊은 지 삼 년이 됐다. 지난 시간을 바탕으로 한 장편소설을 썼다. 제목은 ‘친애하는 나의 술’. “아무도 먹이지 않았어요. 나에게 술을 먹인 건 바로 나예요”라고 말하고 싶은, 과거의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썼다.

‘들뜨는 연말에 이렇게 칙칙한 글을 읽다니, 기분이 별로다!’라는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성공이다. 스스럼없이 취기에 빠져드는 이 시즌,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음주 습관을 되돌아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다 쓰고 나니 이 글을 실어도 되나 싶다. 부모님은 내가 그 지경(!)이었는지 모르시고, 교회 권사님들은 한 달에 한 번 실리는 이 글을 열심히 챙겨 읽으신다. 심지어 나는 집사이고(질끈). 그래도 열일곱 해 동안 에세이를 써오며 깨달은 사실 하나는, 솔직하게 쓰면 마음으로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믿음으로 용기를 내 본다.

얼마 전 우연히, 젊은 세대 중에서 절주나 단주를 실천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건강 관리를 위해 회식에서도 술을 거절한다는 소식에 안도감이 들었다. 술을 즐기는 사람 중에 술을 자기 의지대로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다. 내가 마신 술은 결국 나를 마시고, 나를 전혀 예상치 못하는 곳으로 데려간다. 그 여정은 결코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 올해부터 술 없는 연말 모임에 도전해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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