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돈 만큼 가치 못 느끼는 '이상한 고양이 스웨터' 선물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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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환의 세상만사 경제학] 크리스마스 선물의 효용
블랙 프라이데이. 추수감사절이 끝나고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 선물 쇼핑을 시작하면서 늘 적자를 면치 못하던 상점들도 이때부터는 흑자로 전환된다는 시기다. 매년 연말에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요즘은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고, 국내 마케팅에도 종종 활용된다. 상점 주인은 기쁘겠지만 사실 소비자들은 머리가 아프다. 가족과 친지들에게 올해는 도대체 무엇을 사줘야 할까.
선물을 고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결혼이나 취직처럼 좋은 일이 있어서 단발성으로 주는 것이라면 그나마 나은데, 크리스마스나 생일처럼 매년 돌아오는 기념일은 은근히 두통거리가 될 수도 있다. 작년에 줬던 것하고는 달라야 할 것 같고, 새로운 것을 주고 싶긴 한데 받는 사람이 좋아할지 잘 모르겠고. 아처 창이라는 청년은 여자친구에게 무슨 선물을 줘야할지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인공지능이 대상자의 취향을 분석해 선물을 골라주는 기프트팩이라는 회사를 2020년에 차리기도 했다. 이 회사는 요즘 기업들이 임직원에게 주는 선물을 AI로 골라주고 구매, 배송까지 해주는 ‘AI Gifting Platform’으로 탈바꿈하여 성업 중이다. 명절마다 대표이사 명의로 임직원들에게 떡이랑 과일 보내느라 고생하던 비서실에서 반색할 만한 서비스가 아닌가.
1993년에 조엘 월드포겔이라는 경제학자가 이 선물 고르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끝에, 경제학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학술지에 논문을 하나 발표했다. 이름하여 ‘크리스마스의 자중손실’. 여기서 자중손실(Deadweight Loss)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손해를 보았는데 그 반대쪽에서 이익을 얻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래서 그냥 사라져버린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경제학 용어다. A와 B가 거래를 하면서 A가 손해를 본 만큼 B가 이득을 보았다면 사회 전체적으로는 손해가 아닌데, 누군가 얻을 수도 있었던 가치나 후생이 사회 전체 관점에서 아예 없어져버린 경우 자중손실이 발생했다고 한다. 왜 크리스마스처럼 행복해야 할 때에 이런 사회적 손실이 발생할까.
월드포겔은 자기 수업을 듣는 140여 명의 학생들에게, 바로 전 크리스마스에 얼마짜리 선물을 받았는지, 그리고 그 선물이 자기에게 주관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었는지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적게는 10퍼센트에서 많게는 거의 3분의 1까지 자중손실이 발생했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러니까 100달러짜리 선물을 받았을 때,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그것이 대략 70에서 90달러 정도의 가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 학술논문의 결론은, “현금이나 기프트카드가 선물로 제일 좋다”였다. 미국에서 매년 크리스마스에 발생하는 자중손실은 12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하고, 월드포겔은 이런 이야기를 엮어 2009년에 『스크루지노믹스』라는 책까지 썼다.
이렇게 보면 세뱃돈이나 축의금처럼 현금을 주고받는 것이 보편화된 한국의 문화가 경제적으로 가장 합리적이면서도 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고 전세계 사람들은, 좋은 일이 있을 때 여전히 돈이 아닌 현물로 선물을 주고 받는다. 왜 그럴까. 우선 가장 간단하게는 정보경제학의 신호발송 이론을 이용해서 설명해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선물이라는 것은 받는 사람의 선호를 잘 모르기 때문에 주기가 어려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에게 선물을 한다는 것은, 내가 너를 그만큼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즉 내가 너와 매우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을 과시하는, 그런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실제로 월드포겔의 설문조사 결과, 선물을 준 사람이 관계가 먼 사람일수록 받는 사람이 주관적으로 평가한 가치가 낮아졌다. 부모나 형제자매, 연인이 준 선물은 주관적으로도 가치가 높은데, 조부모나 먼 친척 아저씨 아주머니가 준 선물은 마음에 덜 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선물을 준다는 행위 자체가 이미 많이 가까운 관계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월드포겔도 선물 자체에 반대한 것은 아니다. 잘 모르는 먼 친척한테는 이상한 고양이 스웨터 사주느니 상품권이나 기프트카드를 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정도의 주장을 한 것이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스크루지도 처음에는 크리스마스에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며 경멸했지만 세 유령을 만나고 난 뒤에는 크리스마스의 의미, 선물과 나눔의 의미를 깨닫는다. 선물이라는 문화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 삶에 남아있을 것이라 예상이 되고, 또 그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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