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돈 만큼 가치 못 느끼는 '이상한 고양이 스웨터' 선물 왜

2024. 12. 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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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환의 세상만사 경제학] 크리스마스 선물의 효용
블랙 프라이데이. 추수감사절이 끝나고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 선물 쇼핑을 시작하면서 늘 적자를 면치 못하던 상점들도 이때부터는 흑자로 전환된다는 시기다. 매년 연말에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요즘은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고, 국내 마케팅에도 종종 활용된다. 상점 주인은 기쁘겠지만 사실 소비자들은 머리가 아프다. 가족과 친지들에게 올해는 도대체 무엇을 사줘야 할까.

선물을 고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결혼이나 취직처럼 좋은 일이 있어서 단발성으로 주는 것이라면 그나마 나은데, 크리스마스나 생일처럼 매년 돌아오는 기념일은 은근히 두통거리가 될 수도 있다. 작년에 줬던 것하고는 달라야 할 것 같고, 새로운 것을 주고 싶긴 한데 받는 사람이 좋아할지 잘 모르겠고. 아처 창이라는 청년은 여자친구에게 무슨 선물을 줘야할지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인공지능이 대상자의 취향을 분석해 선물을 골라주는 기프트팩이라는 회사를 2020년에 차리기도 했다. 이 회사는 요즘 기업들이 임직원에게 주는 선물을 AI로 골라주고 구매, 배송까지 해주는 ‘AI Gifting Platform’으로 탈바꿈하여 성업 중이다. 명절마다 대표이사 명의로 임직원들에게 떡이랑 과일 보내느라 고생하던 비서실에서 반색할 만한 서비스가 아닌가.

손해 났는데 이익 본 사람 없는 자중손실
기프트팩의 창업자 아처 창. 여자친구에게 줄 선물을 골라주는 AI 소프트웨어를 만든 것이 창업의 계기가 되었다. [사진 기프트팩 페이스북]
선물은 보내는 사람 뿐만 아니라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어려운 문제가 되곤 한다. 영어권에서 흔히 ‘그 이상한(ugly) 고양이 스웨터’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크리스마스에 이모나 삼촌이 평소에 잘 안 보던 조카에게 선물을 사주려니, 제일 만만한게 고양이나 강아지, 사슴 등이 커다랗게 그려진 스웨터다. 이게 정작 조카 눈에는 안 예쁜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친척 어른이 주신 선물을 냅다 버리기는 미안하다. 크리스마스라고 이웃들이 파티를 하고, 이 조카는 선물받은 스웨터를 마지못해 입고 가서 한쪽 구석에 쭈뼛거리며 서 있는데, 다른쪽 구석에도 비슷한 스웨터 입고 어쩔 줄 몰라하는 어린시절 이성 친구가 보인다. 서양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첫 만남을 묘사할 때 자주 이용되는 장면이다.

1993년에 조엘 월드포겔이라는 경제학자가 이 선물 고르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끝에, 경제학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학술지에 논문을 하나 발표했다. 이름하여 ‘크리스마스의 자중손실’. 여기서 자중손실(Deadweight Loss)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손해를 보았는데 그 반대쪽에서 이익을 얻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래서 그냥 사라져버린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경제학 용어다. A와 B가 거래를 하면서 A가 손해를 본 만큼 B가 이득을 보았다면 사회 전체적으로는 손해가 아닌데, 누군가 얻을 수도 있었던 가치나 후생이 사회 전체 관점에서 아예 없어져버린 경우 자중손실이 발생했다고 한다. 왜 크리스마스처럼 행복해야 할 때에 이런 사회적 손실이 발생할까.

월드포겔은 『스크루지노믹스』에서 잘못 골라진 선물이 자중손실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진 아마존 닷컴]
월드포겔의 논의는 개인의 소비행위 분석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10만원짜리 물건을 산다고 하면, 그것을 소비하면서 내가 느끼는 기쁨과 행복감, 경제학 용어로 ‘효용’은 화폐단위로 나타낼 때 최소한 10만원, 보통은 그보다 큰 값이다. 그렇지 않다면, 즉 내가 느끼는 효용보다 더 큰 돈을 내야 한다면 애초에 구매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선물이라는 것은 어떤가. 내가 소비할 물건을 다른 사람이 골라주는 것이다. 그 사람이 내가 무엇에서 효용을 얻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 않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나. 그러다 보면 누군가가 10만원짜리 물건을 선물했는데,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그 가치가 7, 8만원밖에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생길 수밖에 없다. 내가 10만원을 들고 나를 위한 선택을 했으면 10만원보다 높은 가치를 얻었을 텐데, 남이 내 선택을 대신 해줬기 때문에 10만원보다 낮은 가치를 얻게 된 것이다. 이 차이가 바로 자중손실에 해당한다. 발생하지 말았어야 할 거래가 발생했다고 볼 수도 있고, 같은 비용으로 더 큰 효용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얘기도 된다.

월드포겔은 자기 수업을 듣는 140여 명의 학생들에게, 바로 전 크리스마스에 얼마짜리 선물을 받았는지, 그리고 그 선물이 자기에게 주관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었는지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적게는 10퍼센트에서 많게는 거의 3분의 1까지 자중손실이 발생했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러니까 100달러짜리 선물을 받았을 때,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그것이 대략 70에서 90달러 정도의 가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 학술논문의 결론은, “현금이나 기프트카드가 선물로 제일 좋다”였다. 미국에서 매년 크리스마스에 발생하는 자중손실은 12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하고, 월드포겔은 이런 이야기를 엮어 2009년에 『스크루지노믹스』라는 책까지 썼다.

이렇게 보면 세뱃돈이나 축의금처럼 현금을 주고받는 것이 보편화된 한국의 문화가 경제적으로 가장 합리적이면서도 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고 전세계 사람들은, 좋은 일이 있을 때 여전히 돈이 아닌 현물로 선물을 주고 받는다. 왜 그럴까. 우선 가장 간단하게는 정보경제학의 신호발송 이론을 이용해서 설명해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선물이라는 것은 받는 사람의 선호를 잘 모르기 때문에 주기가 어려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에게 선물을 한다는 것은, 내가 너를 그만큼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즉 내가 너와 매우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을 과시하는, 그런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실제로 월드포겔의 설문조사 결과, 선물을 준 사람이 관계가 먼 사람일수록 받는 사람이 주관적으로 평가한 가치가 낮아졌다. 부모나 형제자매, 연인이 준 선물은 주관적으로도 가치가 높은데, 조부모나 먼 친척 아저씨 아주머니가 준 선물은 마음에 덜 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선물을 준다는 행위 자체가 이미 많이 가까운 관계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선물 문화, 인간 사회 결속 다지는 역할
모스는 『선물』에서 가치의 파괴가 선물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사진 아마존 닷컴]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선물은 역설적으로 그 선물이 가치를 파괴하기 때문에, 즉 자중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오히려 가치가 생긴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시각은 20세기 초반에 『선물』이라는 책을 쓴 마르셀 모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선물에는 ‘내가 너를 위해, 또 공동체를 위해 이만한 희생을 감수했다. 그러니까 나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고 앞으로도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고, 그래서 원시사회부터 지금까지 선물이라는 문화가 인간사회의 결속력을 다지는 역할을 하면서 굳건하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사회가 정상적으로 유지되려면 구성원들 간의 신뢰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도 선물을 사려면 품목을 고민하고 쇼핑하러 돌아다니고 포장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많이 써야 하고, 또 직접적으로 자신의 소득과 재산을 희생해서 선물값을 내야 한다. 정보경제학 측면에서 볼 때 ‘나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이런 정보에는 비대칭성이 있어서, 이걸 확실하게 전달하기가 어렵다. 이때 연인에게 ‘사랑해’라고 말만 하는 것보다는 스스로의 재산을 희생하면서 값비싼 반지를 사서 선물하는 것이 좀 더 믿음을 줄 수 있다는 논리다.

월드포겔도 선물 자체에 반대한 것은 아니다. 잘 모르는 먼 친척한테는 이상한 고양이 스웨터 사주느니 상품권이나 기프트카드를 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정도의 주장을 한 것이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스크루지도 처음에는 크리스마스에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며 경멸했지만 세 유령을 만나고 난 뒤에는 크리스마스의 의미, 선물과 나눔의 의미를 깨닫는다. 선물이라는 문화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 삶에 남아있을 것이라 예상이 되고, 또 그러기를 바란다.

이태환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와 스탠퍼드대에서 공부하고 삼성경제연구소에서 한국경제의 다양한 측면을 연구했다. 주변의 사회문화 현상을 경제학으로 해석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SERICEO에서 5년 간 ‘세상만사 경제학’ 강의를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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