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83] 인생의 맛

백영옥 소설가 2024. 12. 6.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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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며칠 전, 샤인 머스캣을 먹는데 조금도 달지 않아 의아했다. 생각해보니 조금 전 디저트로 망고가 든 생크림 케이크를 먹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내가 느끼는 세상은 상대적이다. 성과급 100만원에 뛸 듯이 기뻐하다가, 옆자리 동료의 보너스가 자기보다 두 배 많다는 사실을 알면 금세 상실감에 빠지는 게 사람이다. 어째서 우리는 이곳 아닌 저곳, 여기보다 저기를 꿈꾸는 걸까. 사람들은 대개 행복해 보이는 타인의 삶을 더 동경한다.

그러나 인생에서 단맛만 보는 삶은 극히 드물다. 10전 10승의 삶은 희귀하고, 대개의 승리란 골득실을 따지고 경우의 수를 계산해야 하는 복잡한 경우가 더 많다. 가령 어린 시절 환대만 받고 귀하게 자란 내 친구는 회사 낭인처럼 조직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과거를 기준 삼아 일상적인 일조차 상처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반면 청년기가 힘들었던 한 친구는 웬만한 일은 과거를 생각하면 참을 만하다고 말했다. 그녀가 겪은 초년의 쓴맛이 삶에 약이 된 경우였다.

두 사람 모두에게 이미 지나간 과거지만 한 사람에겐 불행의 이유로, 다른 한 사람에겐 행복의 이유로 다가온 건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가 고착되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현재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과거는 끊임없이 변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언제나 ‘현재, 여기, 나’란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꽃은 피고 지는 시기가 제각각이다. 4월에 피는 꽃이 있고, 9월에 피는 꽃이 있다. 얼핏 비슷해 보이는 철쭉과 진달래조차 꽃과 잎이 피고 지는 순서가 다르다. 인생에는 각자에게 맞는 때가 있다. 언젠가 홍성남 신부는 “닭이 독수리가 되는 게 아니라, 갇힌 새장 속을 나와 하늘 높이 나는 게 구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이 장미가 아니라고 슬퍼할 게 아니다. 시든 장미나 말라빠진 튤립을 과연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꽃이 되느냐는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민들레든 나팔꽃이든 자신의 때에 맞게 활짝 피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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