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체포명단’ 듣다 “미친 X이구나”…메모 멈춘 국정원 차장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여라.”
홍장원 국가정보원 1차장이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직후 윤석열 대통령에게 받았다며 6일 공개한 전화 메시지다. 홍 차장은 체포 대상자 명단도 공개했다. ‘야당 경고를 위한 계엄이었다’는 윤 대통령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이다.
홍 차장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장실을 찾아 신성범 정보위원장과 면담하면서 3일 밤 윤 대통령에게 받은 전화 내용과 국군방첩사령부로부터 전달받은 체포 대상 명단 등을 공개했다고 배석한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했다. 면담에는 조태용 국정원장도 동석했다.
김 의원이 전한 홍 차장의 발언 내용을 들어보면 홍 차장은 비상계엄 선포 2시간 전인 3일 저녁 8시22분에 윤 대통령과 통화했다. 첫 전화는 저녁 8시20분에 걸려왔으나 받지 못했고, 홍 차장이 다시 전화를 걸자 “1~2시간 후에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으니 전화기 잘 들고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구체적 지시는 비상계엄 선포(밤 10시28분) 25분 뒤인 10시53분에 전달됐다. 윤 대통령이 전화해 “이번 기회에 싹 잡아들여 정리하라. 국정원에도 대공 수사권을 줄 테니 우선 방첩사령부를 도와서 지원하라. 자금이면 자금, 인력이면 인력을 무조건 도우라”고 했다는 게 홍 차장의 말이다. 이후 홍 차장은 밤 11시쯤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이때 여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검거를 위한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고 한다. 명단에는 앞서 공개된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외에 민주당에선 박찬대 원내대표, 김민석 최고위원, 정청래 의원이 포함됐고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 방송인 김어준씨, 김명수 전 대법원장, 권순일 전 대법관, 김민웅 촛불행동 대표 등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김 의원은 “(방첩사령관이) 1차, 2차 대상자를 축차적으로 검거할 예정이며 방첩사에 있는 구금시설에 구금해 조사할 예정이라고 이야기했고, 홍 차장은 이 내용을 듣고 ‘말이 안 된다, 미친 ×이구나’ 생각해 그다음부터 메모를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후 “일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시 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가 계엄이 해제된 다음 퇴근했다”는 게 김 의원이 전한 홍 차장의 3일 밤 기억이다. 홍 차장은 의원들에게 “이 내용을 그동안 자기밖에 몰랐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홍 차장은 5일 오후 4시쯤 “조태용 국정원장으로부터 ‘윤 대통령이 즉시 경질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사직서를 제출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인사기획관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는 게 김 의원의 전언이다. 그러나 차장 이임식을 마친 다음날 오전 10시쯤 조 원장이 다시 불러서 사직서를 반려하고 예전과 같이 근무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홍 차장은 조 원장이 자신의 사표를 반려한 것을 “입막음용 아닌지” 의심했다고 한다.
홍 차장이 윤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을 폭로한 이유에 대해 김 의원은 “(홍 차장이) 비상계엄과 같은 군의 개입이 이번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 차장이 볼 때 김용현 전 장관 후임인 최병혁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는 김용현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이고, 수도방위사령관과 방첩사령관 등도 모두 그대로인 만큼 대통령이 다시 마음을 먹으면 언제든 상황을 뒤엎고 다시 계엄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홍 차장은 김 의원 등에게 “지금 용산에서는 1차장 때문에 1차 비상계엄이 실패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이것 때문에 대통령께서 노발대발하면서 경질하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더구나 특수전사령관, 수방사령관, 방첩사령관 등 내란죄에 가담한 군인들은 최고 사형까지 당할 수 있는 중대 범죄인데 이판사판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홍 차장의 폭로에 대해 배석했던 조 원장은 기자들에게 “이번 비상계엄과 관련해서 대통령이 국정원장에게 정치인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전혀 하신 적이 없다”며 “그런 일이 있었다고 보도가 나왔을 때 홍장원 1차장에게 직접 그런 지시를 받은 적이 있느냐 물어봤더니 본인이 ‘오보’라고 했다”고 반박했다. 또 “국정원은 비상계엄 당시 정치인 체포에 어떤 행동이나 조치를 한 적이 없다”며 “비상계엄과 관련해 우리가 어떤 조치를 한 게 있으면 국정원장한테 지시하지, 원장을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그런 일을 하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조 원장은 홍 차장 경질과 관련해선 “아주 최근에 1차장이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해서 적절치 않은 그러한 말을 제게 한 바 있는데, 그런 것들을 고려해봤을 때 지금과 같이 엄중한 시국에서 국정원은 철저하게 본연 업무를 하고 중립성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제 판단으로 대통령에게 교체를 건의드렸다”고 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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