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2차 계엄 막겠다” 절박한 마음으로 거리 채운 시민들
“12월3일 내란의 밤, 비상계엄 소식을 듣자마자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9호선을 타고 국회로 가는데 친구들이 저를 한사코 말렸어요. ‘지금 거기 가면 죽는다’고, ‘우리는 살아서 더 할 일이 있을 거’라고요. 여의도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너무 억울해서 울었습니다. ‘내가 왜 내 뜻을 밝히러 가면서 죽음을 감수해야 하나’ 하고요. …계엄령에 따르면 국회 앞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처벌 대상이었습니다. 군대가 철수하지 않았다면, 계엄령이 해제되지 않았더라면 정말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정치적 뜻을 표현하는데 목숨을 걸어서야 되겠습니까.”
대학생 김정아씨가 말했다. 김씨는 2024년 12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행동’ 대회에서 발언한 이들 중 하나다. 그는 사흘 전 12월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지켜보던 날을 담담히 이야기했다. 김씨의 말을 듣던 집회 참가자들이 “옳소”라고 외쳤다. 김씨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이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였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포고령이 알려지던 날의 두려움과 분노, 어떻게든 ‘2차 계엄’만은 막아야 한다는 다급함을 말했다. 집회 주최 쪽 추산 약 5만명이다.
“제가 5·18을 직접 몸으로 경험한 세대는 아니예요. 그런데 그날 국회의원들이 국회로 달려가고 군인이 국회에 진입하는 장면을 보니까 광주도 꼭 그랬겠더라고요. ‘우리가 지키지 못하면 그런 일이 또 일어나겠구나’ 싶었어요.”
시민 김희순(48)씨가 그날을 다시 떠올리다 눈물 흘렸다. TV 속 장면이 재연돼선 안 된다고 느꼈다. 그는 “한 사람이라도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해 집에서 1시간30분 거리를 대중교통을 타고 왔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권오륜(27)씨도 ‘2차 계엄령’을 막겠다는 다급함으로 집회를 찾았다. “국회의원에게 총구를 겨누는 사람들이 시민들에게 못 겨누겠나. 2차 계엄을 준비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집회에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권씨가 말했다.
직장인 이무현(25)씨도 탄핵 부결로 인한 2차계엄을 우려해 집회를 찾았다. "(탄핵안이 부결되는) 상황이 펼쳐질 거라고 믿고 싶진 않다. 만약 그런다면 대통령이 계엄을 다시 선포하려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막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왔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계엄의 공포가 어제처럼 생생했다고 말한다. 고등학생 박경덕씨는 “내가 2006년에 태어났는데 1980년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도 10시30분만 되면 몸이 굉장히 떨리고 두려워진다”고 털어놨다. 박씨는 “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고 저희가 편하게 잘 수 있겠냐. 수많은 사람들의 피로 민주주의를 지킨 나라에서 윤석열 정부가 자유와 인권을 군사적으로 억압하려는 모습은 더 이상 좌시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계엄 사태 다음날,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데 완전히 인터넷에 빨려들어가는 기분으로 이틀을 살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걸까, 인터넷에서 극우와 싸우기보다 거리에 한 사람이라도 나오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나왔다.” 20대 직장인 김아무개씨가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준비한 손팻말을 높이 들었다. 다른 참가자들을 위해 과자와 핫팩을 손수 준비한 시민도 있었다. 유아교육과를 전공한 대학생 한아무개씨는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어른이 되기 싫었다. 집회에 나온 순간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음을, 적어도 부끄러운 어른은 되지 않았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젊은이들만 집회를 찾은 건 아니다. 권순진(71)씨는 “오늘 모자를 쓰고 나올 수도 있었지만 이 모습 그대로 나왔다. 나처럼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도 집회에 나올 수 있다는 것, 세대와 성별 구분 없이 다 같은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와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에게 탄핵 표결을 촉구하며 108배를 한 시민 박지선씨도 집회에서 발언했다. 그는 “배 의원에게 (탄핵 찬성 표결을) 읍소하고자 108배를 하고 왔다. 기사가 알려지면서 주변 엄마들이 응원도 해 주었다. 이게 우리 국민들의 마음, 민심이라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애 키우는 엄마가 108배를 올려야겠냐,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든 윤석열 빨리 끌어내려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21 기자들도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앞에서 한겨레21 특별판을 무료로 배포하며 시민들과 함께했다. ‘윤석열을 체포하라’는 구호가 쓰여진 한겨레21 잡지를 시민들은 하늘 높이 펼쳐보였다.
시민들의 촛불집회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이 예정된 2024년 12월7일에도 오후 3시부터 국회 앞에서 이어진다. 12월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대로에서 시민단체, 민주당, 민주노총이 함께 ‘내란범 윤석열 퇴진! 사회대개혁 쟁취! 범국민대회’를 연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