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방의 선물' 모티브 된 강간살인 조작사건, 억울한 옥살이 男 국가 배상 어려워
■ 방송 : FM 94.5 (06:40~06:55, 12:40~12:55, 19:40~19:55)
■ 방송일 : 2024년 12월 06일 (금)
■ 진행 : 이원화 변호사
■ 대담 : 황근주 변호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원화: 지금으로부터 50년도 더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강원도 춘천시 우두동의 논길 한 구석에서 9살 난 어린 소녀가 사망한 채로 발견됐죠. 그리고 조사 결과 그 어린 소녀는 춘천의 한 파출소장의 딸이었던 걸로 밝혀졌죠. 살인범을 잡는 일. 이건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지만 글쎄요. 누군가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닦달한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겠죠. 그런데 당시 이 명령을 내렸던 지휘관은 아마도 상식이라는 게 없었던 걸까요? 아무튼 다행인지 불행인지 경찰에선 열흘 기한에 딱 맞춰 용의자 정 씨를 검거해냈고, 정 씨는 그렇게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렇게 겉으로 보기엔 마치 정의가 실현된 듯 했지만 이 사건에 엄청난 반전이 숨겨져 있었죠.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국과수에서 밝힌 범인은 분명 A형이었는데 경찰은 왜 B형인 정 씨를 용의자로 지목했던 걸까요? 그리고 검찰과 법원 모두 왜 이 대목을 무시한 채 정 씨에게 무기징역이란 형을 선고했던 걸까요? 이 사건은 영화 7번방의 선물의 모티브가 됐던 사건이기도 한데요. 오늘 사건 X파일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 X파일 이원화입니다. 오늘도 로엘 법무법인 황근주 변호사와 함께합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황근주: 안녕하세요. 로엘 법무법인의 황근주 변호사입니다.
◇이원화: 정말 오래전에 발생했던 사건인데요. 사건 발생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린 여자아이가 사망한 채 발견되는 그런 일이 있었죠?
◆황근주: 네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관련자 모두에게 비극이었던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972년 9월 29일 강원 춘천시 우두동에 있는 논둑길에서요. 당시 10살이었던 여자아이가 나체 상태의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피해 아동은 파출소장의 딸로 밝혀졌고요. 경악스러운 점은 성폭행까지 당한 후에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원화: 지금은 워낙 기술이 발달했습니다만 당시 사건이 벌어진 게 70년대잖아요.그러다 보니 지금과 같은 DNA 식별 기술 이런 걸 기대할 수는 없었을 것 같은데요.
◆황근주: 네 맞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혈흔과 음모가 발견이 됐지만 DNA 식별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달리 이를 활용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 당시 기술로 할 수 있는 거는 혈흔의 혈액형 검사 정도였습니다.
◇이원화: CCTV 같은 것도 당연히 없었겠죠?
◆황근주: 당연히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피해자가 경찰관의 딸이었기 때문에 경찰이 대대적으로 수사를 벌였지만 범인의 윤곽조차 잡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윗선에서는 이 사건이 국가 치안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 이렇게 보고요. 열흘 안으로 범인을 잡으라고 못 잡을 경우에는 책임자를 문책하겠다고 엄포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원화: 범인 검거라는 게 시일이 지날수록 어려워진다. 빨리 해야 한다. 이건 맞는 말입니다만 그렇다고 시한을 정하고 닦달한다고 해서 안 잡히던 범인이 나오냐 그건 아니잖아요.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인 만큼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거 아닌가 싶긴 하네요.
◆황근주: 물론 빨리 범인을 잡으려는 거는 좋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데 닦달한다고 범인이 잡히겠습니까?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닦달까지 하게 되면 담당자로서는 무리를 해서라도 범인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어 보이는데요. 근데 이 사건에서는 그런 일이 실제로 발생을 했습니다. 피해 아동은 사체로 발견되기 이틀 전에 주거지 근처 만화가게로 텔레비전을 보러 갔는데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경찰은 그 만화가게 주인 정 씨가 범인이라고 발표를 했는데요. 경찰의 발표는 이렇습니다. 사건 당일 피해 아동이 범인의 만화 가게에 오니까요. 범인은 지금 TV가 잘 안 나오니까 다른 가게로 보러 가자고 피해 아동을 꼬셔서 인적이 드문 논둑길로 데려간 다음에 강간하고 살해했다는 겁니다.
◇이원화: 그러니까 정 씨가 아이를 성폭행했는데 이게 들킬까 봐 걱정이 돼서 아이를 죽였다 이건가요?
◆황근주: 경찰이 설명한 시나리오는 일단 그렇습니다. 근데 이게 끝이 아니라 경찰은 자기네들이 지목한 범인에 대해서 대중적인 확신을 좀 더 높이고 싶었는지 정 씨와 함께 일했던 종업원들을 상대로 정 씨가 종업원들을 상대로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진술까지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거기다가 경찰의 주장에 따르면 현장에서 범인이 흘린 것으로 보이는 연필과 빗이 발견이 됐는데요. 연필은 정 씨 아들의 것, 빗은 정 씨의 종업원의 것으로 밝혀졌으니 이러한 점도 정 씨가 살인범이라는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원화: 정 씨는 자신의 범행을 인정했나요?
◆황근주: 처음에 정 씨는 피해 아동이 그날 만화가게에 오지 않았다라고 진술을 했는데요. 사흘 뒤에는 자기가 범인이 맞다며 모든 범죄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정 씨가 진짜로 범인이고 반성하는 마음에서 자백을 한 거라면 뭐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요.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당시 수사경찰관이 명확하게 인정하지는 않고 있는데요. 여러 정황에 비춰봤을 때 정 씨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수사관의 강압에 못 이겨서 허위로 자백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원화: 이게 뭐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는데 수사관의 강압에 못이겨 허위로 자백을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황근주: 정 씨는 경찰관이 옷을 벗기고 구타를 하거나 몸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고문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잠을 재우지 않거나 식사를 제공하지 않기도 했고요. 이에 대해서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은 그런 고문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지만 정 씨에게 고문을 한 사실은 전혀 없다 라고 했고요. 여기까지만 보면 잔혹한 아동 강간 살인범이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허위로 고문 얘기를 지어낸 거 아니냐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요. 당시 경찰이 고문을 했었음을 의심하게 할 만한 다른 사정도 있습니다. 바로 정 씨에게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한 종업원들인데요. 당시 14살과 17살의 어린 여학생이었던 종업원들은 처음에는 정 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가 이후에는 성폭행을 당했으니까 정 씨를 강력하게 처벌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종업원들은 법정에서는 전혀 다른 얘기를 했습니다. 바로 경찰에서 고문과 감금을 당했기 때문에 풀려나려면 어쩔 수 없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허위로 진술해야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사태가 이러하니까 정 씨의 고문 얘기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겁니다.
◇이원화: 아무리 시대가 시대였다지만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대목 같거든요. 그런데 주변인 진술보다 더 강력한 증거가 있기는 했죠.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정 씨 아들의 연필, 그리고 만화방 종업원이 썼다는 빗. 이건 무시할 수 없는 그런 증거 아닌가 싶거든요.
◆황근주: 네 맞습니다. 정 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2명의 여성 종업원 중에 17살이었던 종업원은요. 현장에서 발견된 빗이 자기 것인데 정 씨가 가져가서 사용했다라고 진술을 했는데요. 말씀드린 것처럼 법정에서는 경찰의 고문과 감금 사실을 밝히면서 빗을 본 적도 없다라고 증언을 했습니다. 그 정 씨 아들 것이라는 연필도 말인데요. 수사 초반에 작성된 현장 검증조서에는 하늘색의 길이 약 15.8cm의 연필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최초로 시신을 발견했던 참고인은 당시 현장에 있던 연필이 노란색 연필이었다고 법정에서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정 씨 아들이 이 연필을 자기 것이라고 인정했다라면서 증거로 제출을 했는데요. 나중에 보니까 경찰이 아들에게 네 거 맞냐라고 보여준 연필은 노란색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정 씨의 아들은 경찰에 필통도 제출을 했었는데요. 그래서 경찰이 아들의 필통에서 하늘색 연필을 꺼내서 현장에 갖다 둔 다음에 현장 검증조서에 하늘색 연필이 발견됐다고 기재한 것 아니냐라는 의혹도 있습니다.
◇이원화: 이게 다른 것도 아니고 살인죄를 묻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억지와 거짓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몰아갈 수 있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싶거든요.
◆황근주: 오히려 살인 사건이기 때문에 더더욱 철저하게 증거를 밝혔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게 끝이 아닙니다. 경찰의 고문과 탄압에 못 이겨서 거짓으로 진술했다가 법정에서 진술을 바꾼 종업원 2명이나 경찰의 현장 검증 결과와 다르게 증언한 최초 발견자는요. 법정 증언이 경찰에서 한 진술과 다르다는 이유로 위증죄로 수사를 받고 구속됐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현장에서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혈흔이 발견됐는데요. 국과수 감정 결과 A형 혈액형이라고 나왔거든요. 근데 정씨 혈액형은 B형입니다. 당시 국과수 발표 결과를 보면 피해 아동의 혈액형 역시 B형이었고요. 즉 현장에서 발견된 혈흔은 피해 아동의 것도 아니고 정 씨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원화: 이걸 경찰이나 검찰, 국과수까지 모두 다 알고 있었을 텐데 문제 제기를 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던 모양이네요?
◆황근주: 정씨나 관련자들이 법정에서 경찰의 고문에 대해서 증언을 하기는 했지만 아무도 귀담아듣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국과수에서도 정 씨의 혈액형 검사를 하기는 했는지 의문입니다. 결국 처음부터 정 씨가 범인이다라고 단정을 지어버리고 여기에 끼워 맞추기 식으로 수사를 진행했던 것으로 보이고요. 경찰이 적극적으로 증거 조작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정 씨는 피해 아동에 대한 강간 살인죄가 인정되어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반면에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관 중 일부는 특진에다가 내무부 장관 표창도 받았다고 합니다.
◇이원화: 진짜 어이가 없네요. 그렇게 특진해서 좋았을까 싶습니다.
◆황근주: 그러게 말입니다. 정 씨는 감옥에서 모범수로 복역해서 특별사면으로 15년형으로 감형이 되어서요. 1987년 12월 15일 성탄절 특사로 석방됐습니다. 1999년 11월에는 일부 증인의 증언이 허위라며 재심을 청구했지만요. 법원은 증언의 허위성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재심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이후에는 정 씨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를 찾아서 진실규명을 신청했습니다.
◇이원화: 위원회에서는 어떤 결론이 나왔죠?
◆황근주: 위원회에서는 당시 상당수의 증거가 조작되었거나 경찰의 고문으로 인한 허위 진술이라며 정 씨에 대해 재심을 진행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에 따라서 2008년 11월경 춘천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사건의 1심에서 정 씨에 대한 무죄가 선고됐고요. 최종적으로 2011년 10월 27일 대법원에서도 무죄를 확정받았습니다.
◇이원화: 2008년 춘천지법에서 무죄 받고 2011년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말씀해 주셨는데요. 이게 듣고도 기쁘다 다행이다 이런 마음보다 억울하고 화나는 마음이 더 크거든요. 왜냐하면 대법원에서 무죄 받기까지 걸린 시간이 거의 40년입니다. 이걸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싶고 뭘로 보상할 수 있을지 보상이 가능하긴 한지 참담한데요.
◆황근주: 40년이면 한 사람의 인생인데 이걸 무엇으로 보상을 할 수 있을지 상상이 안 갑니다. 더군다나 정 씨는 법원의 이상한 소멸시효 논리에 따라서 이미 국가를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 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했다는 이유로 보상을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정 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 법원은 국가가 정 씨와 가족들에게 26억 원 상당을 배상하라 라고 판결을 했습니다. 그런데 항소심에서는요. 정 씨의 손해배상 소송은 형사보상을 받은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제기해야 되는데 그 6개월이 지났다며 청구권이 시효 기간 도과로 소멸했다고 판결한 것입니다. 대법원도 항소심과 같은 취지로 판결했고요.
◇이원화: 딱 열흘의 시효가 지나서 배상이 어렵다. 변호사님 저희 둘 다 법조인입니다만 이건 좀 너무하다 싶죠.
◆황근주: 원래 소멸시효라는 것이 개개인의 사정에 따라서 적용되는 기간이 달라지는 건 아니거든요. 문제는 형사보상을 받은 날로부터 6개월이라는 기준이 과연 타당하냐는 것입니다. 원래는 민법의 규정대로 3년이었거든요. 이후 정 씨는 당시 수사 및 재판에 관여한 경찰과 검사, 판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를 했고요. 법원은 경찰관 및 그 유가족들이 정 씨에게 23억 원 상당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요. 정 씨는 왜 국가가 아닌 개인이 배상을 하라고 하냐면서 배상금을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원화: 결국 정 씨는 그 억울한 세월을 보내놓고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게 된 거네요.
◆황근주: 네, 그렇습니다. 이후에 정 씨는 목사로 활동을 하다가 2019년 뇌경색이 발병하셔서 투병하시던 중에 2021년 7월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국가 권력의 횡포로 인해서 한 개인과 그 가족의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진 것은 물론이고 결국에는 피해 아동을 강간하고 살해한 진범도 잡지 못해서 사건은 영구히 미제로 남게 됐습니다.
◇이원화: 사건 X파일 오늘 저희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변호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 X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
YTN 김세령 (newsfm094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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