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찰스 1세와 전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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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8년 잉글랜드 의회는 찰스 1세를 상대로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을 들이밀었다.
국왕은 의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 결코 과세할 수 없고, 전시가 아니고서는 계엄령인 전쟁법을 발동해 군법으로 민간인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최후 통지문이었다.
전쟁 예산이 절실한 찰스 1세는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권리청원 1년 뒤 의회를 해산해 버렸고, 전쟁법을 발동해 군사 재판을 일삼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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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8년 잉글랜드 의회는 찰스 1세를 상대로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을 들이밀었다.
국왕은 의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 결코 과세할 수 없고, 전시가 아니고서는 계엄령인 전쟁법을 발동해 군법으로 민간인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최후 통지문이었다.
전쟁 예산이 절실한 찰스 1세는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영국 왕실은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라는 절대 왕정 시기를 막 지난 직후였다. 선대왕들은 의회에 손을 벌리지 않고 왕실 토지를 매각해 전쟁 예산을 충당했다. 1215년 대헌장 때 마련된 '의회 동의 없이 과세하지 못한다'는 원칙에서 자유로웠다. 이 때문에 국왕은 존엄했고 국력은 강대했다. 하지만 찰스 1세 시대는 전혀 달랐다. 스페인(1625~1630년), 프랑스(1627~1629년), 스코틀랜드(1639~1640년)와 치른 잇따른 전쟁으로 왕실 재정은 파탄 직전이었다.
의회를 열어 유산 계층인 젠트리를 설득해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였다. 하지만 찰스 1세는 관습에 젖어 있었다. 권리청원 1년 뒤 의회를 해산해 버렸고, 전쟁법을 발동해 군사 재판을 일삼기 일쑤였다.
국왕과 의회 간 갈등의 클라이맥스는 프랑스 출신 왕비인 헨리에타 마리아를 놓고 일어났다.
1641년 아일랜드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의회 내에서는 왕비가 국왕을 꼬드겨 잉글랜드 내 청교도를 몰아낼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신변 위협을 느낀 왕비는 네덜란드로 피신했다.
급기야 왕은 친위군 400명을 이끌고 웨스트민스터로 돌진했다. 잉글랜드 영토는 곧 내전으로 얼룩졌다. 법은 이후 민간에 대해서만큼은 전쟁법을 적용 못하게 하는 방향으로 제정됐다.
1689년 권리장전, 1920년 긴급권한법, 1998년 인권법을 거쳐 현재는 비상 상황에서도 민간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법적 틀까지 마련했다.
380여 년 전 영국의 정치 상황이 오늘날 한국에서 오버랩되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이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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