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후폭풍’ 尹의 몰락…통치력·지지율 잃고 탄핵위기 내몰려
‘尹 추락→보수 공멸’ 우려에도…韓, 尹과 헤어질 결심 가능성
李, 거야發 탄핵 정국 주도…‘사법 리스크’ 넘을 ‘조기 대선’으로 직진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습니다."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5분경.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고 국가를 정상화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회는 비상계엄 선포 2시간30분여 만인 12월4일 새벽 재석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한 페이지'는 이렇게 극적으로, 그리고 허무하게 넘어갔다.
그렇게 대통령 윤석열은 정치적 사선에 섰다. 거야는 그간 칼집에 넣어뒀던 '탄핵'이란 칼을 빼들고 용산과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선봉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섰다. 전세는 이 대표에게 유리하다. 단단한 당심에 더해 성난 민심까지 뒤를 받치는 양상이다. 그리고 그사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탄핵 손익계산기'를 분주히 두들기고 있다. 이제 정치권의 관심은 대통령 윤석열의 '성공 가능성'이 아닌, 그의 '완주 가능성'에 쏠리기 시작했다.
실패로 끝난 위험한 도박…정치적 사선에 선 尹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큰 위험을 감수하고 큰 이득을 노리는)'의 위험한 도박이었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언문에 따르면, 그가 바란 '리턴'은 단순했다. '비상계엄 선포→반정부 인사 긴급 체포→군사 재판을 통한 처단→국가 정상화', 이 단순한 시나리오가 윤 대통령이 그린 미래였다. 문제는 △여소야대 지형에서 계엄 해제 권한을 가진 국회를 어떻게 봉쇄할지 △그 과정에서 군사력을 어디까지 사용할지 △여당과 국민을 어떻게 설득할지 등의 난제에서 그가 묘수를 찾지 못한 채 '비상계엄'을 강행했다는 점이다.
결국 윤 대통령의 도박은 아무런 득 없이 엄청난 판돈만 잃은 채 끝났다. 정치권에선 계엄이 실패하며 윤 대통령이 '정치적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는 진단이 나온다. 그가 잃은 수많은 자산 중 가장 뼈아픈 건 '우군의 궤멸'이다. 윤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잦은 인사를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 시작한 한덕수 국무총리가 계속 그의 곁을 지켰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탄핵' 위기에도 직을 내려놓지 않았다.
인재풀이 제한되면서 돌려막기, 회전문 인사란 비판이 이어졌지만 윤 대통령은 개의치 않았다. 대통령실은 지난 8월 안보라인 3명 동시 인사를 단행했는데 당시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이 국방부 장관으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국가안보실장으로, 장호진 안보실장은 7개월 만에 외교안보특보로 자리를 옮겼다.
윤 대통령은 이번 계엄 사태로 이 '충신' 대부분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당장 비상계엄을 직접 설계·건의한 것으로 알려진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계엄 해제 후 직을 내려놓았다. 김 전 장관은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로, 2022년 3월 윤 대통령의 당선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 부팀장을 지낸 최측근이다. 윤석열 정부 실세였으나, 이번 비상계엄 사태로 '내란죄 피의자'로 내몰리게 됐다.
한덕수 총리를 비롯한 그의 핵심 참모들도 줄줄이 옷을 벗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미 비상계엄이 해제된 12월4일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성태윤 정책실장 등 3실장과 수석비서관 이상 고위 참모진이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같은 날 국무위원 전원도 한 총리에게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총리가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에서, 민생 안정을 위해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내각의 의무"라며 장관들의 사의는 수용하지 않아 직은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야권뿐 아니라 여권 내에서도 '대규모 개각'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팽배한 상황이다. 특히 이번 비상계엄에 반대 의사를 표시했던 장관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면서, 윤 대통령을 향한 참모들의 신뢰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핵심 참모들의 이탈이 가시화되는 가운데, 정부가 우려해온 이른바 '늘공(직업공무원) 리스크'도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지시에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 '늘공 중심 사고' 탓에 대선 공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게 지금까지 용산이 내비쳐온 인식이었다. 국무조정실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4월22일부터 5월10일까지 3주간 세종시 정부 부처 및 소속 기관을 중심으로 '공직 기강 특별점검'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비상계엄으로 윤 대통령이 위기에 몰리면서, 관가에선 대통령실의 부처 장악력은 더 약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예산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대통령실과의 충돌이 불가피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대통령실은 '국민을 위해서'라 말한다"며 "비상계엄도 같은 명분 아니었나. 앞으로 '통'(대통령)의 말에 힘이 실리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윤 대통령이 국민, 나아가 범보수 지지층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시각도 있다. '비상계엄'은 60대 이상 유권자에겐 군부 독재의 아픈 역사를 연상케 하는 기억의 트리거(방아쇠)이며, '실용'에 예민한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 유권자에겐 '경제'를 위협하는 악재로 여겨진다. 결국 '종북 세력 처단'에 찬성하는 극우 성향 유권자를 제외하면, '비상계엄' 사태로 윤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는 유권자가 더 많을 것으로 점쳐진다.
성난 민심, 벼르는 거야…尹 '식물 대통령' 위기 내몰려
당장 성난 민심을 '숫자'가 증명하고 있다. 12월5일 리얼미터가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탄핵 찬반을 조사한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이 73.6%(매우 찬성 65.8%, 찬성하는 편 7.7%)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24.0%(매우 반대 15.0%, 반대하는 편 8.9%)에 그쳤다.(12월4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504명 대상으로 무선 97%, 유선 3% RDD ARS 자동응답으로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 응답률은 4.8%,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홈페이지를 참조)
TK(대구·경북)를 비롯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탄핵 찬성'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지역별로 보면 광주·전라에서 찬성이 79.3%로 높았다. 이어 인천·경기(77.3%), 대전·충청·세종(74.0%), 부산·울산·경남(72.9%), 서울(68.9%), 대구·경북(66.2%) 순이다. 연령별로는 만 18~29세(86.8%), 40대(85.3%), 50대(76.4%), 30대(72.3%), 60대(62.1%), 70세 이상(56.8%) 순으로 전 세대에 걸쳐 찬성 여론이 우세했다.
비상계엄 사태가 내란죄에 '해당한다'고 답한 응답은 69.5%로 나타났다. 반대로 '해당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4.9%다. 지역별로는 광주·전라(78.2%), 인천·경기(73.5%), 대구·경북(70.5%), 대전·세종·충청(64.4%), 부산·울산·경남(64.3%), 서울(62.7%) 순으로 내란죄에 해당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연령별로는 만 18~29세(85.1%), 40대(85.1%), 50대(73.2%), 30대(64.7%), 60대(56.9%), 70세 이상(48.8%) 순으로 내란죄에 해당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여권 내부에선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수준으로 급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팽배하다. 2016년 12월9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안 표결 전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5%를 기록했다. 또 국민의 81%가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상계엄 직전까지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20%대를 횡보했다. 만약 계엄 여파로 지지율이 한 자릿수를 기록한다면 국정 동력이 마비되는 '심리적 탄핵 상태'에 이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지지율이 25% 미만으로 내려가면 국정 동력은 상실되고 마비된다. 낮은 지지율로 대통령의 국정과제를 순탄하게 추진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우려했다.
'행정권력'이 흔들리면서 '입법권력'을 쥔 거야의 힘은 더 세졌다. 단단한 당심에 더해 성난 민심까지 업은 이재명 대표는 명실상부한 '여의도 대통령'이 된 모습이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그의 정적인 이재명 대표는 차기 대권 구도에서 가장 유리한 입지에 선 것으로 분석된다. 이 대표는 비상계엄 직전까지 차기 대권주자 중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아왔다. 다만 그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 이로 인한 '방탄 논란' 탓에 윤 대통령을 향한 '탄핵'을 외치지는 못했다. 그러나 비상계엄이 실패하면서 이 대표가 더 적극적으로 '탄핵'과 '조기 대선'을 노릴 명분을 거머쥐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내년 초에 있을 선거법 항소심이 이 대표로서도 중요한 것이었다. 당선무효형이 나온다면 후보 교체론이 나왔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비상계엄 후 이 대표 중심으로 민주당은 더 똘똘 뭉칠 것이다. 사법부도 이 대표에 대해 더 부담을 가질 수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는 이전보다 정치적 상황이 좋아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보수의 '박근혜 트라우마'…與 앞에 놓인 '탄핵 딜레마'
결국 윤 대통령의 운명을 좌우할 열쇠는 여당이 쥐고 있다. 여당은 대통령을 지킬 마지막 보루로 여겨진다. 탄핵을 소추할 힘은 없지만, 막아낼 힘이 여당에 있어서다. 거야의 탄핵 공세와 성난 민심 앞에 여당이 '윤석열'을 품느냐, 내치느냐에 따라 정국은 요동칠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추경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친윤계가 '대통령 탄핵' 요구에 반응하지 않고 있다. 급기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야당이 추진하는 윤 대통령 탄핵을 막아내겠다'고 선언했다. 일각에는 여당이 '딜레마'에 처했다는 시각도 있다. 당이 직접 보수진영 내 '박근혜 탄핵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탄핵 후 조기 대선이 실시되면 야권이 '어부지리'를 얻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번 비상계엄으로 윤 대통령을 지키던 여당의 '방탄복'에 이미 큰 금이 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간 힘이 실리지 않던 '김건희 여사 특검법' 및 정부를 겨냥한 야당의 공세에 여당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윤석열의 운명'과 '당의 운명'을 디커플링(분리)하는 양상이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한 대표는 '대통령과 헤어질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는 이날 긴급최고위원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집행 정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당은 이날 오전 11시 비상 의원총회를 개최하고, 윤 대통령 탄핵안 표결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결국 여당의 도움으로 윤 대통령이 가까스로 탄핵을 면하더라도 '식물 정권'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무엇보다 비상계엄으로 사실상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힌 거야와, '척결'에 실패한 용산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미 '검사 탄핵'과 '예산 감액' 등을 앞세워 정부를 압박해 왔던 민주당은 더 이상 윤 대통령을 행정부 수반으로 대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향후 정부가 진행하는 핵심 사업과 여당의 입법 등에 야당이 건건이 반기를 들 것으로 보인다.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 4대 개혁(연금·의료·노동·교육 개혁)도 좌초될 가능성이 커졌다. '대통령 후보 윤석열'이 꿈꿨던 '성공한 대통령'의 꿈은,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5분을 기점으로 사실상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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