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잃은 나를 거둬준 세상에 환원… 푸드트럭 첫 수익부터 기부” [사랑의열매 - 세상을 밝히는 작은 영웅들]
(3) 세종‘착한가게’ 박종기 씨
9살때부터 동생과 사찰서 자라
아버지된 스님 평생 사회 기부
나도 남들 돕고 싶어 창업 결심
거래처 등 ‘기부 동반자’ 줄이어
예비 아내·동생도 나눔의 손길
전국‘착한가게’누적 4만6995개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스님 밑에서 자라면서 이 은혜를 꼭 사회에 환원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푸드트럭 사업 초기부터 기부를 시작한 건 저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아이들을 빨리 돕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 세종지역 ‘착한가게 800호’로 선정된 푸드트럭을 운영하고 있는 박종기(40) 씨는 지난 2일 인터뷰에서 자신의 기부 철학을 이렇게 소개했다. ‘착한가게’는 매월 최소 3만 원 이상, 매출의 일정액을 정기적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기부하는 가게에 내려지는 일종의 ‘기부 감사패’이다. 식당·병원·학원 등 다양한 업종의 가게들이 이에 참여하고 있다. 박 씨는 “푸드트럭이 자리 잡으면 그때 기부를 시작해도 되지만, 하루라도 빨리 어려운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며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푸드트럭을 운영하기 전, 전기기술자로 일했고 꾸준히 여러 지역을 돌며 봉사를 해왔다고 했다. 어려운 이들을 지켜보며 돕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고, 이를 위해서라도 개인 사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올해 2월 푸드트럭 카페를 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달인 3월 사랑의열매에 5만 원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기부금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5월부터는 ‘매일 커피 한 잔씩 기부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커피 한 잔 값인 4000원에 31일을 곱한 12만4000원을 매달 기부하고 있다.
박 씨가 작은 ‘기부 천사’가 되기로 결심한 데는 어린 시절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박 씨는 일찍 부모를 잃은 뒤 9살 어린 나이에 남동생과 세종 영평사에 거둬지게 됐는데, 이곳 주지 환성 스님은 형제에게 아버지가 돼 주었다. 환성 스님은 지역사회에 기꺼이 헌신하며 30여 년간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자신은 좁은 단칸방에서 생활하면서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왔고, 2021년 사랑의열매에 1억 원 이상 기부를 약속하면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등록됐다.
그러나 어린 시절 박 씨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박 씨는 “우리 사정부터 챙겨야지 왜 남을 자꾸 챙기는지 몰라 아버지를 미워하기도 하고 반항하기도 했다”며 “살다 보니 남을 도와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내가 남을 돕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라고 생각한다”며 “살면서 아버지만큼 남을 도울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씨의 선행은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퍼트리고 있다. 박 씨의 예비 아내인 이주현(40) 씨는 세종 지역 ‘착한가게 824호’인 푸드트럭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남동생도 커피차를 운영하며 올해 10월부터 사랑의열매에 매달 5만 원씩 기부하고 있다. 박 씨의 한 거래처도 그의 기부담을 듣고 매달 10만 원씩 사랑의열매에 기부하고 있다고 한다. 박 씨는 “이런 ‘기부 동반자들’이 있어 더 큰 나눔을 이룰 수 있었다”며 “주변에 따뜻한 에너지를 전달하니 오히려 나 자신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웃었다.
박 씨는 앞으로도 이루고 싶은 ‘기부 꿈’이 많다. 박 씨는 “사업이 자리 잡으면 기부금을 더 크게 늘려갈 수 있을 것”이라며 “언젠가 아버지처럼 1억 이상 기부해 아너소사이어티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푸드트럭은 기동성이 있어서 나눔이 펼쳐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며 “전국의 푸드트럭이 다 함께 모여 ‘기부 푸드트럭 페스티벌’을 열고 성금을 모으는 풍경도 꿈꾼다”며 눈을 반짝였다.
9월 기준 사랑의열매에는 4만6995개의 ‘착한가게’가 기부에 동참하고 있다. 이들 가게가 모은 누적 모금액은 지난달 기준 82억6403만9601원에 달한다.
18년째 ‘착한가게’로 나눔을 이어가고 있는 기유식(46) 기유식수학학원 원장은 2008년 “학원을 운영해서 번 돈, 남들과 나눠야 하지 않겠냐”는 어머니의 권유로 처음 기부를 했다. 이후로 매달 63만 원씩, 현재까지 총 9683만 원을 기부했다. 기 원장은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돕는 사람,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 도움받는 사람”이라며 “남을 도우며 사는 사람이 세상에도, 스스로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눔의 성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일말의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이런 믿음의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기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양돈식(40) 세종다온동물병원 원장도 2020년 사랑의열매와 인연을 맺고 ‘착한가게’로 활동하고 있다. 매달 5만 원씩 모금해 지난달까지 253만 원을 기부했다. 양 원장은 “아버지가 자동차 대리점을 하며 ‘착한가게’로 나눔을 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 등록하게 됐다”며 “동물병원에 다니는 고객의 소개로 반려묘 앞으로도 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지난 7월부터는 반려묘 ‘심바’ 이름으로도 기부했다”고 말했다.
김린아 기자 linay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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