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매입, 내부자 배만 불리고 장기 성장에 발목

한겨레 2024. 12. 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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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파이낸스
2003~2012년 사이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은 수익의 54%를 자사주 매입에, 37%를 배당금으로 지출했다. 2024년 11월6일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DJI)가 표시된 화면이 보인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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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매입만큼 시장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주제도 흔치 않다. 이론적으로 주가는 기업의 이익에 비례해 오른다. 한데 자사주 매입은 전체 순이익은 그대로인데 주당순이익만 늘려 대중으로 하여금 기업 가치가 오른다는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자사주 매입은 시장 조작의 한 형태로 인식돼 금지됐다.

하지만 1982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규칙 10b-18을 통해 공개적 자사주 매입을 합법화했다. 기업에 자본 관리의 유연성을 제공한다는 명분이었지만 부작용은 필연이었다. 자사주 매입은 극소수 경영진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수단이라 부르짖지만, 현실은 극소수 대주주를 위한 편법으로 행사되고 있다. 이에 미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자사주 매입에 세금을 부과해 규제하고 있지만 외려 성행하고 있다.

한국은 ‘밸류업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다. 만년 저평가 상태인 주식시장을 살려보려는 의도다. 그 핵심에 자사주 매입이 있다. 일부에서는 자사주 매입이 주가 견인의 만병통치약으로 강조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주식시장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라도 자사주 매입의 부작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사주 매입 광풍

2014년 11월 윌리엄 라조닉 미국 매사추세츠대 교수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번영 없는 이익’이란 논문을 발표한다. 주요 내용은 자사주 매입이 성장의 원천이 돼야 할 기업의 소중한 재원을 임원 보상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2003~2012년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은 수익의 54%를 자사주 매입에, 37%를 배당금으로 지출했다. 즉 투자와 임금, 일자리 창출에 투자돼야 할 소중한 재원의 91%가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쓰였단 얘기다.

논문이 발표된 지 10년이 흐른 현재, 미국 주식시장에서 자사주 매입은 이제 유행을 넘어 기업들의 의무가 돼버린 듯하다. 2003년 이래 미국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액은 11조달러 이상에 달한다. 기업을 공개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식을 불특정 다수에게 팔기 위해서다. 한데 미국의 기업들은 자신들이 판 주식을 되사고 있다. 최근 들어 이런 움직임은 더 활발해졌다.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지만 기업들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골드만삭스 글로벌 투자 리서치’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자사주 매입액은 2021년 8810억달러, 2023년 7950억달러에 달했으며 2024년에는 9880억달러를 초과할 전망이다.

2023년 자사주 매입에 1%의 세금이 부과됐다. 하지만 그 정도로 자사주 매입 열풍을 막을 수는 없었다. 2024년 예정된 규모는 사상 최대다. 거의 1조달러, 우리 돈으로 약 1300조원을 넘는 천문학적 액수다. 이런 추세는 주로 기술기업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2024년 어도비는 250억달러, 메타는 500억달러, 구글은 700억달러, 애플은 1100억달러에 달하는 자사주를 매입한다.

사실, 자사주 매입에 쓰이는 재원은 미래 성장을 위해 재투자되거나 기업 구성원들에 대한 복지 확대, 연구개발에 쓰여야 할 돈이다. 미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여윳돈이어야 한다. 한데 미국 유수 기업들은 거침없이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돈을 쓰고 있다. 명분은 주주가치 제고다.

자사주 매입은 어느 정도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유통 주식 수가 줄어드니 단기적으론 주가 부양 효과가 있다. 단순히 자사주를 매입하는 개별 기업 주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해당 섹터, 더 나아가 전반적인 시장 상승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2000년 이래 자사주 매입은 시장의 가장 큰 동력이었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각 주체가 얼마나 주식을 매수했는지를 보면 기업들의 주식 매입이 가장 큰 상승 동력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2000년 이래 연금과 뮤추얼펀드의 주식 순매수 규모는 –2조7천억달러, 가계와 외국인 투자자는 2조4천억달러, 기업은 5조5천억달러였다. 같은 기간 순매수액 5조2천억달러는 기업 순매수 금액과 비슷하다. 기업의 자사주 매입이 없었다면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간 돈이 유입액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결국 미국 시장의 상승을 이끈 건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때문이라는 해석이 일부 가능하다.

자사주 매입의 이유

많은 사람이 자사주 매입은 곧 주가 상승이라는 긍정적 요인에 집중한다. 애널리스트들은 자사주 매입에 나서는 기업에 대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한다고 칭찬하기도 한다. 잉여금을 추가 자본이라 칭하며 그것을 주주에게 되돌려주는 것을 당연시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막대한 현금을 쟁여두고 주가를 올리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는 기업을 비난하기도 한다. 사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방편은 생각보다 많다. 그중에 최고는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혁신을 주도한 기업의 주가는 자사주 매입을 하지 않더라도 오를 것이다. 안정적인 배당도 장기적으로 주가를 높일 수 있다. 그런데도 미국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사실 극소수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대표적인 몇 가지를 추려보자.

기업 내부 극소수 고위직은 자사주 매입 일정을 알고 있다. 이들은 이를 이용해 자사주 매입 기간에 보유 주식을 매도할 수 있다. 미국 주식시장에서는 이미 관행이다. 규제나 감시를 피해 내부자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에 매달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소수, 특히 내부자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2024년 구글은 700억달러, 애플은 1100억달러에 달하는 자사주를 매입한다. REUTERS

자사주를 매입하면 유통 주식 수는 감소한다. 주식 수가 줄면 주당순이익(EPS)은 높아진다. 임원 보상 패키지 대부분은 주당순이익 성장에 비례해 보너스를 결정한다. 기업 순이익은 그대로거나 줄어도 유통 주식 수가 감소하면 주당순이익이 높아져 이들은 목표를 달성한다.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

국내 기업들도 속속 도입하고 있는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과 스톡옵션은 자사주 매입과 깊은 연관을 갖는다. RSU와 스톡옵션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기존 주식을 보너스로 주느냐 아니면 신주를 발행해 주느냐에 있다. 이 둘 모두는 유통 주식 수를 증가시켜 주가 하락 요인이 된다. 하지만 권리 행사와 동시에 자사주 매입을 하면 늘어난 주식 수를 상쇄시킬 수 있다. 주가 하락 리스크가 감소하니 권리를 갖고 있는 임원 등 경영진에 이익을 준다.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가 오르니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주주는 기업이 자사주 매입을 할 때 보유 주식을 매도해야만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문제는 주가가 상승할 때 매도를 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 자사주 매입은 단기적으로 주가를 상승시키는 기재가 되지만 장기적으론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주가는 다른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성장률, 경쟁력 여부, 매크로적 이벤트에 의해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장기 투자자에겐 자사주 매입이 반드시 호재로 작용한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기업이 생산적 활동을 통해 창출한 재원을 주주들에게 환원하는 건 자본주의 체제에서 환영해야 할 일이다. 자본을 회수할 수 있기에 마음 놓고 좋은 기업에 기꺼이 투자할 수 있다. 이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이런 이유로 기업들은 자사주 매입을 ‘주주에게 자본을 돌려주는 착한 행위’로 포장한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알 수 있다. 자신이 가진 주식 수만큼 모든 주주에게 공평하게 이익이 배분되지 않아서다. 배분할 수단이 없어서가 아니다. 방법이 있음에도 기업들이 굳이 자사주 매입에 매달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소수, 특히 내부자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자사주 매입을 막는 방법

이를 막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공개 매수(Tender Offer)도 그중 하나다. 주식시장에서 불특정 다수의 주주로부터 일정 수량의 주식을 일정 가격에 사들이겠다고 공개적으로 제안하는 것이다. 주로 인수 합병이나 경영권 확보를 위해 사용하지만, 기존 주주들의 주식을 매수하기 위해서도 사용한다. 이는 공개적으로 행해지므로 투명성이 보장된다. 조작의 가능성이 낮아진다. 일정 동안만 진행되기에 주식을 매도할지는 온전히 주주들의 몫이다.

배당을 늘리는 방법도 있다. 배당은 모든 주주에게 공평하게 배분된다. 예측 가능하기에 장기 투자자에게 유리하다. 정기적인 배당금 지급은 기업이 일시적 주가 부양에 집중하기보다는 장기적 수익성 제고에 노력하게 한다.

자사주 매입은 단기적으로 주가를 지지할 수 있지만, 장기적 기업 가치 제고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제결제은행(BIS) 연구를 포함한 여러 연구에서 자사주 매입은 실제 가치 창출보다 주당순이익 조작을 우선시한다는 점이 입증됐다. 단기적 주가 상승에만 역량을 집중하는 기업이, 생산적 투자와 혁신에 집중할 수는 없다. 자사주 매입은 ‘자본 반환’으로 홍보되지만, 그 이익은 기업 내부 고위직과 단기 투자자에게만 이득을 준다.

진정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원한다면 기업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익을 더 공평하게 배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미래 성장을 위한 절실한 투자처가 있다면 자사주 매입에 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기업의 소중한 재원이 소수의 이익을 위해 낭비되지 않도록 제어하는 제도적 장치를 생각해볼 때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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