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여수 섬에서 대형 초식공룡 찾는다…국내 첫 공룡 발굴 프로젝트

여수(전남)=이병철 기자 2024. 12. 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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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국내 고유 화석종 발굴 사업’ 시작
대륵도와 함께 송도, 소륵도서도 공룡 화석 찾아

“대륵도뿐만 아니라 소륵도, 송도에서도 공룡 뼈 화석이 매장돼 있는 흔적을 찾았습니다. 뼈가 드러난 부분은 많지 않지만, 우리가 보는 공룡 뼈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지층 내부에는 더 많은 뼈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4일 전남 여수 송도. 이융남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공룡 뼈 화석 탐사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국가유산청과 여수시청 관계자들 앞에 섰다. 그는 지난 7월부터 국가유산청의 의뢰를 받아 대륵도와 함께 소륵도, 중륵도, 송도 등 여수 일대 섬 네 곳에서 공룡 뼈 화석을 찾고 있다. 이 중 중륵도를 제외한 섬 세 곳에서 공룡 뼈의 흔적이 확인됐다. 이 교수는 “최근 4개월 조사에서 이 일대 지점 4곳에 공룡 뼈 화석 약 60개가 묻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공룡 발자국이나 공룡 알 화석 산지가 국내에서 발견돼 조사한 사례는 이전에도 많았지만, 공룡 뼈 화석이 다수 발견돼 공식적인 발굴 조사가 이뤄진 적은 없다. 발자국과 알과 달리 뼈 화석은 지층 표면에 일부만 드러나 있어 전체 골격을 확인하려면 반드시 발굴을 해야 한다. 국가유산청은 처음으로 본격적인 공룡 화석 발굴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융남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지난 4일 전남 여수 대륵도에서 취재진과 국가유산청, 여수시 공무원들에게 공룡 뼈 탐사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여수=이병철 기자

조선비즈는 지난 5월 이 교수팀, 국가유산청(당시 문화재청)과 함께 대륵도에서 공룡 뼈 화석의 존재를 처음 확인했다. 당시 연구팀이 대륵도에서 약 1시간 동안 찾은 공룡 뼈 화석은 10여 개였다. 이번에는 주변 섬을 포함해 그보다 6배 많은 공룡 뼈가 묻혀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송도는 유일하게 주민이 사는 섬이다. 공룡 뼈 화석은 이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교수는 송도의 한 해변가에서 바닥을 가리키며 “공룡의 발목 뼈로 추정되는 화석으로 보인다”며 “발바닥 쪽이 드러나 있어 바위 속으로는 아랫다리 뼈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표 위로 드러난 뼈의 크기를 봤을 때 화석의 주인공은 큰 초식 공룡으로 추정된다. 육식 공룡의 발목이 얇은 데 반해 초식 동물은 상대적으로 두꺼운 발목을 갖고 있다. 이 교수가 초식 공룡의 뼈 화석임을 확신한 이유는 또 있다. 발목 뼈 옆으로 나와 있는 동그란 자갈 모양이다. 이 교수는 공룡이 소화를 돕기 위해 일부러 삼킨 위석(胃石)이라고 추정했다.

발목뼈와 위석으로 보이는 구조가 인접해 있는 만큼 더 많은 공룡 뼈가 묻혀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이 지역은 과거 강에서 퇴적물이 쌓인 지형으로 추정된다”며 “발자국 화석은 호숫가에서 주로 발견되고 뼈는 주로 강 근처에서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전남 여수 송도의 한 해변가에서 공룡의 발목뼈(오른쪽)와 위석(왼쪽)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확인됐다. 발목뼈의 두께와 위석의 존재로 봤을 때 이 화석의 주인공은 대형 초식공룡으로 추정된다./여수=이병철 기자

이 교수에 따르면 소륵도에는 공룡의 머리 턱 뼈로 추정되는 화석이 묻혀 있다. 만약 소륵도에 묻혀 있는 화석이 공룡의 턱뼈라면 국내 최초의 공룡 머리를 출토할 수 있다. 아쉽게도 이날 날씨 문제로 소륵도에 방문할 수는 없었다. 이 교수는 “이전에 방문한 대륵도에서 공룡 뼈 화석이 56개 확인됐고, 송도와 소륵도를 더하면 60개에 달한다”며 “공룡 뼈가 이렇게 많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국가유산청은 내년부터 본격적인 공룡 뼈 화석 발굴 사업을 시작한다. 국내 최초로 정부 지원을 받아 공룡 뼈 화석을 발굴하는 사업이다. 국가유산청은 6일 “국가적으로 보존가치가 있는 지질 유산인 중생대 공룡골격 화석의 보존과 관리, 체계적 연구를 위해 ‘국내 고유 화석종 발굴 및 관광자원화 모델 개발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한국은 지금까지 공룡 뼈 화석 발굴 경험이 많지 않고, 미국·캐나다·몽골·아르헨티나 같은 주요 공룡 뼈 화석 산지와 달리 암석이 단단해 작업 환경이 좋지 않다. 발굴한 화석을 처리하고, 보관할 수 있는 실험실과 수장시설, 전문인력도 미흡하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사업을 통해 발굴 경험을 쌓고 공룡 뼈 화석을 보존·관리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정부가 이 지역을 발굴하려는 이유는 또 있다. 현재 송도와 대륵도 일대는 매립을 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해양수산부가 추진하는 ‘광양항 광역 준설토 투기장 조성사업’이 준비 중이다. 국가유산청은 본격적인 매립이 이뤄지기 전에 공룡 뼈 화석을 발굴하지 않으면 화석 산지를 보존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전남 여수 소륵도에서 공룡의 머리 턱 뼈로 추정되는 화석이 발견됐다. 공룡의 머리 뼈는 아직까지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발굴된 적이 없다./국가유산청

박창준 국가유산청 지질유산팀 사무관은 “대륵도 일대는 물론 보호나 긴급 발굴이 필요한 곳이 더 있다면 추가적으로 발굴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성공적으로 발굴이 이뤄진다면 국내 주요 지질유산인 공룡 뼈를 전시할 수 있는 방법까지 찾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유산청은 내년 초 본격적인 발굴팀을 꾸리고 조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발굴팀은 화석 전문가와 지표조사전문기관 등으로 구성한다. 국가유산청도 주관기관으로서 함께 참여해 관리감독을 맡는다. 이외에도 채석 기술자, 중장비 기사를 비롯해 발굴팀을 구성한다.

이번 발굴에 대한 조사팀의 기대도 크다. 이성진 서울대 박사후연구원은 “지층에 묻힌 뼈들의 형태를 얼마나 잘 유지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온전한 상태로 발굴돼 정확하게 어떤 공룡인지,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공룡인지 확인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는 공룡 뼈가 발견되면 지표 위에 올라온 부분만 떼어내 연구하는데 그쳤다”며 “이번 사업을 계기로 뼈 조각만 모으지 않고 본격적인 발굴이 이뤄지면 한국의 공룡 생태계에 대한 자료가 모일 것이라고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융남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오른쪽)와 이성진 박사후연구원이 소륵도에서 공룡 뼈 화석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내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발굴팀을 꾸리고 국내 첫 공룡 뼈 발굴에 나선다. 발굴팀에는 공룡 연구자와 함께 채석 기술자, 중장비 기사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여수=이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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