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원내 지도부 사퇴’ 내비친 추경호…흔들리는 與 권력지형
‘비상계엄’ 수습 두고 韓-秋 연일 충돌…한동훈, 당내 주도권 쥐나
(시사저널=박나영 기자)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비상계엄 해제' 이후 처음 열린 12월4일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원내 지도부 사퇴'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총회에 참석한 복수의 국민의힘 의원의 말을 종합하면, 추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시작 전 의원들을 향해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접하고 제 거취에 대해 이미 마음을 정했으니 그 문제를 제외하고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만 논의하자'며 원내 지도부 사퇴 등을 언급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당내 일각에서는 추 원내대표가 이미 사퇴 의사를 굳히고 물러날 시기를 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계엄 사태 이후 현재까지 대통령실 실장·수석비서관 등 대통령실 참모진과 국무위원 전원이 일괄 사의를 표명한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과 '용산'의 입장을 대변하며 원내에서 친윤(친윤석열)계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추 원내대표가 흔들릴 경우 국민의힘은 물론 여권 전체의 권력지형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민의힘 투톱 중 한 명인 추 원내대표가 물러난다면 당장 여당 내 권력의 추는 한동훈 대표에게 쏠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 대표가 당내 주도권을 쥘 기회를 맞게 되는 것이다.
'원내 방패' 역할해온 秋, 사퇴하면 尹 타격
반대로 윤 대통령은 당내 강력한 우군을 잃어버리게 된다. 추 원내대표는 그간 윤 대통령의 호위무사처럼 원내에서 야권의 공세는 물론 친한계 등 여권 일각의 압박도 막아왔다. 용산 입장에서는 여당 방패의 한 축이 사라지게 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추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 6월에도 22대 국회 원 구성 협상에서 국회 운영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상임위원장직을 확보하지 못해 협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직에서 물러날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 의원들이 추 원내대표를 대신할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재신임을 요청하며 복귀했다. 지난 10월 윤·한 회동 이후 개각설이 돌 때도 추 원내대표처럼 당을 추스를 적임자를 찾기 힘들 것이라며 연임설에 힘이 실린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엔 다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당대표가 '위헌적인 비상계엄을 막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낸 상황에서, 비상계엄 해제를 위한 재적 과반수가 되지 못하도록 의원들을 국회 본회의장이 아닌 당사로 오게 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비상계엄 선포 당일 표결에 불참한 이유를 묻는 취재진에 "내 판단으로 안 했다"고만 답변했고, 현재까지 의원총회 등에서도 계엄의 위헌·위법성 등을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안팎에서는 비상계엄 사태로 당의 주도권이 한 대표에게 넘어가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추 원내대표가 전격적으로 직에서 물러난다면 이런 흐름은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서용주 전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12월5일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불법 계엄'에 대응한 추 원내대표의 모습은 원내대표로서도 국회의원으로서도 자격을 포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부총리를 역임한 다선 의원으로서 포고령만 보면 대통령이 무엇을 원했는지 알았을 것이고, 당대표가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위헌이라고) 규정했으면 원내대표로서 따라가서 백업할지 말지만 결정하면 된다. 백업을 안 해줬으면 윤 대통령의 (포고령에 적힌) 민주당에 대한 규정에 동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계엄 선포 시 포고령에 적힌 '반국가 세력 등 체제 전복 세력'이 민주당을 가리킨다는 해석이 정설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추 원내대표가 당시 사퇴를 결심했더라도 이후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면서 지금은 입장이 바뀌었을 수 있다"며 "사퇴할 마음이 있더라도 대통령실에서 임기를 채우라고 할 경우 (자신의 의사를) 단호하게 밀어붙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지금 원내대표를 하는 게 자기에게 도움이 되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겠냐"며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고 '욕받이'만 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런 (사퇴) 의사를 내비친 게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계엄 사태에서 리더십 상실한 秋, 명분 확보한 韓
비상계엄 선포 당일 국민의힘의 움직임은 사실상 분당 상태임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12월3일 밤 한 대표는 집에서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접하고 급히 여의도 당사로 이동했다가 추 원내대표를 비롯해 함께 있던 20명 남짓의 의원과 걸어서 국회 본청으로 갔다. 이후 추 원내대표가 국회로 오고 있는 의원들에게 집결 장소를 '국회→중앙당사 3층→국회 예결위 회의장→당사'로 바꾸며 메시지에 혼선을 준 것을 두고 '표결 방해' 의도가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그러는 사이 국회를 둘러싼 경찰 병력이 늘어나면서 상당수 의원이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했고 당사에 남은 의원 중 몇몇은 SNS를 통해 '계엄 반대' 의사를 밝힐수밖에 없었다.
추 원내대표는 또 본회의장으로 들어가자는 한 대표의 계속되는 설득에도 '계엄 선포 해제' 의결이 끝날 때까지 본청 내 원내대표실에 머무르면서 용산 관계자들과 소통한 것으로 전해진다. 임이자·신동욱 국민의힘 의원도 추 원내대표와 함께 원내대표실에 머물면서 본회의장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계엄 해제 찬성에 표결한 국민의힘 의원은 18명에 그쳤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민의힘 의원은 "친한(친한동훈)계는 본회의장, 친윤(친윤석열)계는 당사로 나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메시지 혼선으로 국회에 진입하지 못한 의원들이 당사에 남게 된 것일 뿐, 진짜 문제는 본청에 들어간 국민의힘 의원들이 둘로 나뉘어 행동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친윤계와 친한계의 갈등은 계엄 사태 이후 더 심화되는 모습이다. 탄핵 부결에는 한목소리를 내면서 한 대표가 밀어붙이는 윤 대통령의 탈당에 대해서는 친윤계의 반대 의견이 높다. 한 대표는 12월5일 '대통령 탄핵 반대'가 전날 밤 의원총회에서 당론으로 결정된 사실을 자신이 뒤늦게 알게 된, 이른바 '패싱'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일각에선 당론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윤 대통령의 탄핵안에 '반대'가 아닌 '노력하겠다'는 표현으로 사실상 자유 투표를 허용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앞서 12월4일 오전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도 한 대표와 추 원내대표 간 신경전이 벌어졌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 탈당' '내각 총사퇴' '김용현 국방장관 해임' 등 3가지 요구안을 의결하자고 하자, 추 원내대표가 대통령 탈당에 반대해 "의총에서 얘기를 듣자"며 중간에 자리를 뜨려 했고, 한 대표가 "앉으세요"라고 제지한 것이다.
韓, 尹에 재차 탈당 요구…'탈당 반대' 친윤계와 대립각
"한동훈 대표 역할이 컸어요. 동창회 송년회에서 술이 좀 취해 집에 들어왔는데 느닷없이 (비상계엄이 선포됐습니다) 그래도 잤어요. 계엄 발표 하자마자 여당 대표가 '안심하라,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하니 덕분에 잤습니다."(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12월5일, CBS라디오 인터뷰)
12월3일 밤 10시30분께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즉시 입장문을 내고 "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이니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했던 한 대표는 야당이 낸 윤 대통령 탄핵안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12월5일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당대표로서 이번 탄핵안이 통과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계엄 사태 이후 처음으로 윤 대통령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계엄 선포 당일보다 어제, 오늘 새벽까지 더 고민이 컸다"는 그는 탄핵안 가·부결로 나뉠 국민의힘 운명을 두고 상당한 고심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민 10명 중 7명이 윤 대통령의 탄핵에 동의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오는 상황에, '국민 눈높이'를 강조해온 한 대표가 민심을 거스르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탄핵안 반대'의 근저에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당은 물론 보수 전체가 공멸했던 트라우마를 재현할 수 없다는 판단도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한 대표는 탄핵안에는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윤 대통령의 탈당은 계속해서 밀어붙이고 있다. 한 대표는 12월5일 "대통령의 위헌적인 계엄을 옹호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라며 "당대표로서 대통령의 탈당을 다시 한번 요구한다"고 말했다. 위헌적인 계엄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한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하는 동시에 당과 윤 대통령의 연결고리를 끊어 정치적 부담을 해소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계엄 해제 이후 한 대표는 '윤 대통령 탈당' '내각 총사퇴' '김용현 국방장관 해임' 등 3가지 요구안을 윤 대통령에게 전달했는데, 윤 대통령이 탈당 요구는 사실상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친한계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탈당하지 않을 경우 한 대표가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제명 또는 출당을 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尹의 마지막 기회?…여권에서 커지는 ‘거국내각’ 구성 요구 - 시사저널
- 野 전략 성공할까? 7일 ‘尹 탄핵안’ ‘김건희 특검법’ 동시 표결 - 시사저널
- 비상계엄 발표된 12·3…막후엔 ‘충암파’가 있었다 - 시사저널
- 지겹고 맛 없는 ‘다이어트 식단’…의외로 먹어도 되는 식품 3가지 - 시사저널
- 겨울에 더 쉽게 상하는 ‘피부’…탄력 있게 유지하려면? - 시사저널
- 허정무 출마 선언에 흔들리는 정몽규 4선 꿈(夢) - 시사저널
- 법원, ‘한동훈 명예훼손’ 유시민에 “3000만원 배상하라” - 시사저널
- 탄핵 절차 본격화? ‘진보성향’ 2명 헌재 재판관에 추천...최종 임명은 대통령이 - 시사저널
- ‘계엄 대통령과 헤어질 결심’ 못하는 친윤, 속내는? - 시사저널
- 왜 유독 농구 코트에서 폭언·폭력이 끊이지 않는 걸까 - 시사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