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바다 갈매기는〉, 떠나는 자와 돕는 자의 이야기

‘아침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 고기잡이 배들은 노래를 싣고’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동요가 있다. 제목은 ‘바다’. 성석제 작가의 단편소설 ‘아침 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는다’에 이 동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가사가 희망적인데 노래를 듣고 있으면 서글퍼진다는 내용이다. 박이웅 감독은 그 대목을 인상 깊게 읽었다. 만들려는 영화에 그 정서를 가져왔다. 제목처럼, 동요 가사처럼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 장면으로 시작한다.
작은 어촌 마을의 아침 풍경이 뒤를 잇는다. 생선을 말리는 덕장, 작업복을 입고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가 연이어 지나간다. 모든 게 고요한 가운데, 출렁이는 것은 오로지 파도뿐이다. 조업에 나선 어선이 출렁일 때마다 화면을 보는 관객도 덩달아 멀미가 날 것 같다. 이 고요하면서도 거친 동네에 어느 날 사건이 벌어진다. 선장 영국(윤주상)과 함께 일하는 젊은 선원 용수(박종환)가 실종되면서부터다.
용수는 희망이 없는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 자신이 사고로 죽었다고 위장해 노모인 판례(양희경)와 베트남에서 온 아내 영란(카작)에게 사망보험금을 받게 할 작정이다. 그렇게 여기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한다. 영국은 그의 유일한 조력자다. 용수가 마을을 떠난 즉시 파출소로 달려가 용수가 조업 중 바다에 빠졌다고 거짓 신고를 한다. 예상과 달리 실종자 수색이 기한 없이 길어진다. 아들과 남편이 살아 있다는 걸 모르는 판례와 영란은 해경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과 갈등을 빚는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서울 을지로의 한 고층 빌딩에서 박이웅 감독을 만났다. 빌딩숲이 내려다보이는 아찔한 높이의 위치에서, 무언가 자꾸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이미지의 이번 영화를 회고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오래전으로 거슬러간다. 박 감독이 차를 타고 가는데 열악한 환경의 농촌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 사는 이유가 뭘까?’ 뭔가 비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구상했고 비밀이 가라앉을 수 있는 곳의 이미지를 연상하다 보니 바다가 됐다. “영화를 볼 때 어떤 방식이든 스펙터클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농촌의 풍경보다는 바다에서 그 가능성이 많이 보였다.”
시나리오를 쓴 건 2008년이다. 이듬해까지 초고를 수정했다. 영화 제작까지, 쉽지 않았다. 그 사이 2022년, 첫 장편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가 먼저 개봉했다. 이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을 받게 되었다. 결정 소식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안 되는데···’였다. 예전에 쓴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작 기한이 정해져 있지만 이대로 촬영에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동해 바다를 쭉 돌고 ‘이 정도면 부끄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시나리오를 고쳤다. 두세 달 걸렸다.
“왜 마을을 떠나려고 할까?”
막상 시나리오를 읽어본 제작자는 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그로서는 많은 게 변했다. 이전 시나리오는 데뷔작으로 구상하며 썼다. 사기 사건 자체를 긴박하게 그려내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여기(어촌 마을)가 어떻기에 떠나야 하는지, 왜 할아버지는 떠나보내는 걸 돕기로 했는지 잘 납득되지 않았다. 그에 대해 설득력을 갖추는 데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내 초점만 달라진 것일 수도 있다.”
두 번째 장편영화의 개봉을 앞둔 지금, 데뷔작 때와는 마음가짐이 전혀 다르다. 2년 전 〈불도저에 탄 소녀〉가 개봉할 당시 박 감독은 자신감이 넘쳤다. “당시에는 컷을 구성하든 배우에게 얘기를 하든 마무리 편집을 하든 모든 과정에서 내가 되게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쉬웠는데 이번 작품은 너무 힘들었다.”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가기 직전, 할까 말까 고민할 때가 제일 난감했다. 시나리오의 완성도도 미심쩍고 배우를 캐스팅할 때도 고려할 게 많고, 결과물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었다. 현장에서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날까지 그 마음이 이어졌다. “내가 촬영 현장에서 괴롭힌 두 배우분이 처음 영화를 보는 자리였다. 전날, 스트레스로 입술이 다 부르텄다. 좋게 보셨다고 말하는 순간에야 마음이 놓였다.” 감독 스스로 오랫동안 확신이 없었던, 이 영화는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 KB뉴커런츠 관객상,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상 등 3관왕에 올랐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엄태화 감독이 남긴 후기처럼 “잔잔한 파도처럼 다가와서는 삶의 가장 깊숙한 곳을 흔드는 영화”다.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영국과 판례, 두 노인이다. 요즘 개봉되는 영화의 주인공으로는 드문 연령대다. 판례는 박 감독 고모할머니의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 속 판례와 실제 인물이 닮았다. 나이가 들어 무릎도 아프고 거동도 불편하지만 무척 강인하게 살아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강한 캐릭터의 영국과 상대가 되려면 역시 강한 캐릭터가 필요했다. 양희경 선배밖에 없었다. 강단이 있지만 그 안에 부드러움이나 따뜻함도 있다.” 영국 역은 고민을 많이 했다. “영국이 지금과 같은 삶을 살게 된 데에는 부인할 수 없는 과거의 폭력이 있다. 잘못한 게 있는데 그걸 안고도 관객들이 끝까지 이야기를 보게 만들려면 친근한 이미지가 중요했다.”
선착장 앞에 의자를 놓고 바다에서 실종된 아들이 돌아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판례에게 영국이 다가와 이제 그만 들어가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관객은 처음으로 영국 역시 과거에 자식을 잃은 경험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전까지는 (영국을 연기한 윤주상 배우에게) 자식을 잃었다는 말씀을 안 드렸다. 영란이 판례에게 안기고 영국이 판례를 쳐다보는 것까지의 시퀀스를 좋아한다. 말과 행동이 아니라 음악과 분위기를 통해 영국이 이상한 짓을 벌이고 있는 이유가 선의에 의한 거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이주여성인 영란의 캐릭터도 인상적이다. 귀화 신청을 하기 위해 서류를 산더미만큼 준비하지만 남편과 함께 오지 않아 거절당하고, 용수의 사망보험금 액수로 동네 사람들의 입길에 오른다. 남편이 사라지자 가려져 있던 차별의 그림자가 선명해진다. 영란과 판례는 고부 이상으로 끈끈한 관계이지만 용수가 사라지자 가족으로서의 효력도 사라진다. 그러는 동안 떠날 예정이거나 떠나온 사람들이 교차한다. 고향 베트남을 떠나 한국에 온 영란은 다시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이고, 이곳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용수도 있다. 서울로 떠났다가 폐인이 되어 돌아온 형락도 있다. 왜 돌아왔느냐는 말에 형락은 답한다.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잖아요.”
박이웅 감독의 데뷔작 〈불도저에 탄 소녀〉는 삶의 터전인 중국집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스무 살 혜영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쪽 팔에 용 문신을 한 혜영이 불도저를 타고 건물을 밀어버리는 장면이 많이 회자되었다. 주로 소수자를 다룬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저 주변의 이야기일 뿐이다. “내가 대학에 들어갔던 1997년만 하더라도 운동권이 흥하던 시기는 아니라 끝물에 이런저런 경험들을 했다. 철거민 투쟁 현장 등을 보며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게 된 것도 형제가 많은 외갓집 친척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렇게 됐다. 주변에서 이야기를 찾게 되는 것 같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시작은 나다. 이번 영화도 ‘왜 저기에 살지’라는 궁금증이 시작이었다. 나와 주변이 만난 결과다.”
두려움과 공포를 찾아야 하는 이유

박이웅 감독은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되짚어보면 아버지가 일을 쉬는 날, 비디오테이프를 쌓아놓고 영화를 보던 데서 시작된 것 같다. 〈에일리언〉 이야기에 심취했고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 열광했다. 8㎜ 카메라로 영상을 찍고 필름을 잘라 붙여보기도 했다. 시네마테크가 아니라 (상업영화가 주로 상영되는) 대한극장에서 영화를 많이 봤다. 영화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학교에서 원서를 써주지 않았다. 공부를 잘하는 편이라 ‘스카이’에 진학해야 한다고 했다. 교사는 신문방송학과와 영화과가 같다고 설명했다. 진학해보니 전혀 달랐다. ‘한겨레 영화학교’에 입문하고, 영화잡지 기자 일도 1년 반 정도 했다. 영화 현장을 경험하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한 그는 “그때 배운 걸 그대로 따라 하듯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영화 만들 때의 지표도 이때 만들어졌다.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영화라는 게 도대체 뭐지? 생각할 때였다. 이창동 감독님의 수업에서 그리스 비극을 다뤘다. 그리스 비극이 당시에는 제의였다. 대중의 공포를 없애주는 목적이었다. 비가 너무 많이 오면 기도를 하고 제물을 바침으로써 공포가 사라지게 하는 기능을 했다. 서사와 비극, 영화를 다룰 때 지금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어떤 두려움과 공포를 찾고 그에 대해서 다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영화의 주제를 뭘로 삼고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지표가 되었다.” 다르덴 형제와 켄 로치 감독의 영화에서 받은 영향이 그의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주인공이, 혹은 등장인물이 잘못될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이 드는 건 박이웅 감독 영화의 특징이다. 의외의 결말도 마찬가지다. 스포일러를 하자면 연신 맘 졸인 입장에서 반가운 결말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딱 떨어지는 건 아니다. 쓰고 쓰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맞닥뜨린다. “타고난 분도 있지만 저는 되게 열심히 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하면서 몇 달씩 열심히 하다 보면 선을 딱 넘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완성된다. 이번 영화도 마지막을 고민하는데 판례의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나도 모르게 그걸 쓰고 있었다.”
박이웅 감독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동료 감독에게 재밌는 질문을 받았다. “독립영화 쪽이 아닌 것 같은데 계속 이렇게 할 생각이냐고 묻더라.” 그의 작품을 본 관객이라면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다. “어떤 시장이 있다고 생각했다. 의미 있지만 접근이 쉽지 않은 영화가 있다면, 재미가 있으면서도 주변의 일들을 생각해볼 만한 영화도 있지 않을까. 첫 영화를 찍고 나서 그런 틈새는 없구나, 생각했다.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이번 영화는 해야만 했고,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일단 만들자고 생각했다.”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은 사극이다. 시대극이지만 그동안 해온 대로 ‘주변의 이야기’다. 왕이 등장하는 영화는 아니라고 한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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