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북 작전으로 알고 나섰는데... 내려보니 국회였다”
육군 특수전사령부 예하 707특수임무단 소속 A씨가 지난 3일 오후 11시 48분쯤 헬기를 타고 내린 곳은 서울 여의도 국회였다. 최근 ‘특수 임무를 위해 이동할 수 있다’는 공지를 받았던 A씨와 부대원들은 북한 관련 특수전 작전에 투입될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한다. 적 대상 작전에 투입되는 줄 알았던 A씨 등이 행선지가 국회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헬기 탑승 직전이었다. A씨는 “이후 ‘국회의원을 다 끌어내라’는 명령을 받고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4시간 30분 전인 3일 오후 6시, 특전사 일부 부대엔 1·3공수여단장과 707특수임무단장 등 주요 지휘관이 경기 이천 특전사령부에 집결했다는 소식이 퍼졌다고 본지가 5일 인터뷰한 특전사 대원들은 말했다. A씨 부대에도 “북한 관련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 “당장 출동할 수 있으니 총기를 준비하라”는 지시가 하달됐다. A씨는 “카트리지(탄알집·탄약통)을 정리하고 출동 준비를 했다”고 했다.
A씨와 부대원들은 헬기 탑승 직전 “서울 국회로 간다”는 명령을 듣고 당황했다. 헬기 안에서도 “착륙지는 국회의사당”이라는 말을 들었을 뿐 실제 어떤 작전에 투입되는지는 임무를 하달받지 못했다고 한다. 707특수임무단은 북한 김정은 등 적국 수뇌부를 암살하는 데 특화된 최정예 ‘참수 부대’다. 작전 투입 전 목표물이 있는 건물 구조 등 지형 분석이 필수다. A씨는 “국회 구조도 파악하지 못한 채 착륙했는데 좀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당시 국회 직원들과 의원 보좌진은 특전사 대원들의 본청 진입을 저지하고자 사무실 집기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농성 중이었다. 일부는 특전사 대원들에게 소화기 분말을 뿌리기도 했다. 군인들에게 “반란군” “반역자” “윤석열의 개”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A씨는 “국회에 진입하고 한참 뒤에도 구체적인 명령은 내려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윽고 상부에서 ‘국회의원을 다 끌어내라’는 지시가 내려와서 마지못해 유리창을 깨고 본청에 진입했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하지만 A씨 등 대원들은 느릿느릿하게 움직였다. 유리창을 깨고 본청 내부로 진입할 때도 몸놀림은 그리 민첩하지 않았다. A씨는 “명령이라 일단 따랐지만, 무장하지도 않은 민간인을 상대로 707이 이사카(샷건)까지 들고 쳐들어가는 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1티어(최고 등급) 특수부대”라며 “북한 김정은이나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를 암살하는 부대인데 우리를 이용해서 국회를 턴다니 사기가 떨어졌다”고 했다.
당시 특전사 병력이 국회의원·보좌진·시민 등에게 가로막혀 본회의장에 진입하지 못했던 상황에 대해 그는 “마음만 먹었으면 10~15분 내에 정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일부러 뛰지도 않고 걸어 다녔다”고 했다.
같은 707특수임무단 소속 B씨도 얼마 전부터 특수 임무가 있을 수 있다는 공지를 받았고 당일도 부대 내에서 비상 대기 중이었다. 일부 동료는 “하는 일도 없는데 퇴근도 못 하고 대기해야 하나”라고 불평했다고 한다. 오후 4시부터 ‘특수항공단이 실제 작전 중’이라는 이야기를 동료에게 들었지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B씨는 “뭔가 기밀 작전이 시작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오후 11시 30분쯤 B씨와 동료 100여 명은 블랙 호크 헬기에 탑승했다. 비행 중 착륙지가 국회라는 말을 들었고 A씨와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임무를 받지 못했다. B씨는 “실탄은 안 가져갔고 훈련용 비살상탄(UTM)을 휴대했다”며 “살상력은 없고 맞으면 꽤 아픈 정도의 연습용 탄이었다”고 했다. B씨 주변에선 ‘우리가 비무장 민간인을 상대하려고 이렇게 고생했느냐’ ‘군인을 그만두고 싶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1공수여단 대원 C씨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인 오후 10시 30분, 부대에서 비상 소집 문자를 받았다고 한다. 부대에 복귀했더니 일부는 전투복조차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상황이었다. 부대장은 “긴급한 작전에 투입되니 빨리 준비하라”고 했다. C씨가 팀장(대위)에게 “어디로 가는 것이냐”고 물었지만 “나도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C씨와 부대원들이 탑승한 버스가 도착한 곳은 국회 정문 앞이었다. 팀장조차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국회는 이미 경찰이 봉쇄한 상황이었고 시민들이 모여 “계엄 반대” “윤석열은 물러가라” 같은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C씨 등은 담을 넘어서 국회 경내로 진입했다. 다른 부대원들이 탄 버스는 “나를 밟고 가라”고 버스 앞에서 맨몸으로 드러누운 시민들에게 가로막혀 움직이지 못했다.
총기를 휴대한 C씨 등이 국회 본청에 진입하자 국회 직원과 보좌진 등이 저지했다. 국회 보좌진은 군인들에게 “불법을 저지르지 말라” “국회에 진입하면 나중에 처벌될 것”이라고 했다. 비무장한 시민을 코앞에서 마주한 이들은 크게 당황했고 일부는 ‘패닉’에 빠졌다고 한다. 부대원들은 “제발 가까이 오지 말아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하지만 일부 민주당 당직자는 총부리를 손으로 잡았고, 대원들의 총기를 빼앗으려는 사람도 있었다. C씨는 “민간인 상대로 작전을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당황했다”고 했다.
같은 1공수여단 대원 D씨도 이날 버스를 타고 국회 작전에 투입됐다. 버스에 탈 때까지도 도착지를 몰랐는데 내리고 보니 국회였다고 한다. 그는 이 순간 “상부에 배신감이 들었다”고 했다. D씨는 “특전사는 작전 지역을 철저히 분석하지 않으면 투입되지 않는다”고 했다. D씨는 “국민들께 너무 죄송하고, 저희를 보고 놀란 시민들의 얼굴과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날 특전사 대원들은 본지 인터뷰에서 “국가에 배신감이 든다”고 했다. 특수전 요원은 대테러·요인 암살 등 지극히 국지적인 지역을 대상으로 작전을 시행한다. D씨는 “정치적인 판단으로 우리를 국회에 떨어뜨려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우린 국회 구조를 전혀 모르는데, 실제 전쟁 상황이었으면 우리는 다 죽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D씨는 “보안을 강조하던 상부가 우리를 믿지 못해 작전 지역이 국회라는 사실조차 도착 직전 알려준 것 아니냐”며 “우릴 그냥 쓰고 버리는 소모품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고 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 4일 특전사 대원들이 받은 문자를 공개하며 “군 지휘부가 북한 관련 상황에 투입되는 것처럼 일선 대원들을 기만했다”고 주장했다. 이 문자에서 군 지휘부가 ‘북한 관련 상황이 심각하다, 당장 출동해야 할 수도 있다’ ‘국방부 장관께서 상황 발생하면 707을 부른다고 한다’고 언급하는 내용이 나온다.
지난 4일 유튜브 등에 올라온 현장 영상에서 어느 시민이 계엄군에게 “여러분이 들고 있는 총은 국민들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사용해 달라”고 말하자 한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며 연신 고개를 숙이는 장면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 영상을 본 시민들은 ‘군인들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군인 자녀를 둔 부모로서 눈물이 난다’ 등 반응을 남겼다.
한 군사 전문가는 이날 상황에 대해 “군대는 유일하고 합법적인 폭력 기관”이라며 “대통령의 비상계엄 명령은 국민의 일상을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국민 수호 사명감으로 버티던 군의 충성심에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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