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터전에서 나를 마주하고 내면을 채우는 시간

고은영 작가 2024. 12. 6.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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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겨울 관광] 원주의 비밀스런 명소, 3대 폐사지
법천사지 국보 101호 지광국사탑… 화려한 조각-장식이 주는 웅장함
거돈사지 산자락 아래 포근한 빈 터… 흥법사지 상처를 어루만지는 고독함

원주 3대 폐사지 가운데 하나인 법천사지. 원주시 제공
《마음에 스산한 바람이 부는 시기가 왔다. 어느새 다가온 연말은 공허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휘청거리기 쉬운 때이다. 이럴 땐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과 마주해야 한다. 내면의 여백을 허락하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도심의 소음을 떠나 자연과 역사 속에서 나에게 빠져들 수 있는 완벽한 여행지가 있다. 》

차를 타고 길을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도로가 혼자만의 것처럼 느껴진다. 고요한 시골 풍경이 차창 밖으로 펼쳐지면 나만의 시간이 열린다. 가는 길에서부터 설렘을 안고 도착한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부론면의 법천사지유적전시관. 이곳에 국보 101호인 지광국사탑이 있다.

고요해야 들을 수 있다

고려시대 문종(재위 1046∼1083)은 국사를 지낸 원주 출신 해린(海麟, 984∼1070)이 법천사로 돌아와 입적하자 ‘지광(智光)’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과 탑비를 세우도록 명했다. 자그마치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려 고려 선종 2년(1085)에 승탑이 완성됐고 그 자체로 역사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12년 일본 오사카로 반출되는 등 10여 차례 옮겨지는 수난을 당했고 한국전쟁 중 폭격으로 산산조각이 나기도 했다. 2016년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재보존과학센터가 완전 해체해 대전으로 이송한 뒤 2020년까지 과학적 조사와 보존 처리를 진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고향인 원주로 돌아왔고 113년 만에 과학적 복원 과정을 거쳐 국보의 위용을 다시 드러냈다.

113년 만에 제자리를 찾아 본래 모습을 드러낸 법천사지지광국사탑. 지난달 12일 복원기념식이 열렸다.
말로만 듣던 지광국사탑을 실제로 보자 우리나라 부도(浮屠)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칭하는 이유를 바로 이해했다. 높이 5.39m, 무게 24.6t에 달하는 웅장함은 가히 압도적이다. 평면 사각의 전각 구조에 화려한 조각과 뛰어난 장엄 장식으로 각 층마다 특징적인 장식들이 새겨져 있는 탑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광배(光背)와 도인들이 구름을 타고 불가의 세계로 향하는 모습 등 문양들이 섬세하고 입체적이다. 탑 구석구석 경이롭지 않은 곳이 없다.
113년 만에 제자리를 찾아 본래 모습을 드러낸 법천사지지광국사탑. 지난달 12일 복원기념식이 열렸다.
우리 곁에 다시 찾아온 지광국사탑은 문화재로서의 가치와 미술적 아름다움을 넘어 탑을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한 수많은 이의 노력과 염원의 결실이기도 하다. 지광국사탑은 문화유산이 제자리로 돌아온 국내 첫 사례다. 1000년을 살아낸 탑은 113년을 기다려 제자리로 돌아왔고 그 후에야 얻은 평온함을 다시 우리에게 전한다. 지광국사탑이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아무리 긴 시간이 지나도 진실한 것은 변하지 않으며 모든 고난과 시련을 넘어 결국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다

유적전시관을 나오면 법천사가 자리했던 터전이 넓게 펼쳐져 있다. 한때 활기찬 신앙의 중심지였으나 이제는 그 흔적만이 고요히 남아 있다. 이곳에는 지광국사탑과 한 쌍을 이루는 지광국사탑비(전체 높이 4.55m)가 기다리고 있다.

거북 모양 받침돌과 왕관 모양 머릿돌이 눈에 띄며 비석에는 지광국사의 행적이 기록돼 있다. 바람 소리와 함께 ‘진리가 샘물처럼 솟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법천사가 품고 있던 뜻이다. 텅 빈 공간이지만 ‘비어 있음’ 속에 새로운 진리가 채워질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원주에는 법천사지처럼 번창했던 시절을 뒤로 하고 폐사지(廢寺址)로 남아 있는 곳이 많다. 법천사지를 나와 시골길을 따라가다 보면 1000년 수령에 7m가 넘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눈에 띈다. 절집의 흥망성쇠를 묵묵히 지켜본 수문장이다.

거돈사지. 원주시 제공
그 옆으로 잘 다듬어진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거돈사지를 만난다. 거돈사는 신라 말기에 창건돼 고려시대에 화려한 꽃을 피웠으나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에 폐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유산 답사의 교과서 같았던 유홍준 교수의 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8권 ‘남한강편-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에는 ‘남한강변 폐사지 답사는 거돈사부터 가야 제격’이라고 쓰여 있다. 그럴 만한 것이 깊숙한 산자락 아래 7500평 정도의 빈터가 포근하고 평온한 느낌을 준다. 또한 거돈사지 삼층석탑(보물 제750호) 바로 뒤에 금당터가 있고 원공국사탑과 탑비 같은 보물이 남아 있다.
흥법사지. 원주시 제공
흥법사지로 발걸음을 옮기면 그곳도 마찬가지로 과거의 자취만 남아 있다. 흥법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돼 고려시대 융성한 사찰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신성한 모습과는 거리가 먼 고독한 자태다. 휑하고 허전한 느낌이 울컥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고즈넉한 산기슭에 자리 잡은 원주 3대 폐사지(법천사지, 거돈사지, 흥법사지)는 흙과 돌이 됐지만 단정한 모습을 잃지 않고 지나간 세월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삶에서 필요한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의 깊이임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폐사지에서 불심(佛心)을 깨닫지는 못해도 내면을 채우는 시간이 됐다.

저물어야 새벽을 맞이할 수 있다

이제 여행을 마무리할 시간, 마지막 장소로 이동했다. 부론면 흥호리의 흥원창(興元倉)이다. 일부러 해가 지기 시작하는 오후 5시쯤으로 맞춰 갔다. 노을 명소, 아름다운 일몰, 캠핑 명소, 자전거 타기 좋은 곳, 걷기 좋은 곳 등 수많은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과거 조선시대까지 지방의 각 고을에서 세금으로 징수한 곡식 등 세곡(稅穀)을 강변에 설치한 창고인 조창(漕倉)에 보관했다가 배를 통해 도읍지로 운송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지금은 커다란 배 모양의 조형물이 과거의 영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2일 국가생태탐방로 조성사업의 준공도 앞두고 있어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함께 흥원창의 역사적인 가치를 더욱 잘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원주시 부론면 흥원창에서의 일몰.
흥원창의 일몰이 시작된다. 붉게 물드는 하늘과 강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장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황홀하고 감동적이다. 우리 인생도 매일 저물고 다시 새벽이 오는 법이다. 누구나 좋았던 시절이 있다. 현재 어떤 시절 앞에 놓여 있던 본질만 흔들리지 않으면 된다. 이곳의 과거가 현재와 이어지듯 내 삶 속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기회와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원주의 역사적 의미를 지닌 비밀스러운 명소에서 나를 마주했던 시간, 내가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본질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얻어간다.

고은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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