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학자들 “野 견제 위한 계엄... 헌법 어디에도 그런 내용 없다”
대통령실 “국정 정상화 위해 했다”는데…
대통령실의 주장과 학자들의 반박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발동한 데 대해 대통령실은 외신 기자단에 “국정을 정상화하고 회복하기 위한 조치를 시도한 것”이라며 “대통령은 헌법주의자로서 자유민주주의 파괴 세력에 대해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그 근거로 취임 전부터 있었던 대통령 퇴진 운동, 방송통신위원장 등 주요 공직자 탄핵 소추안 22건 발의, 법률안·예산안 통과 방해, 국가 안보 훼손 문제 등을 들었다.
하지만 전시(戰時), 사변(事變)에나 투입하는 군을 동원할 만큼 현재의 상황이 ‘비상사태’였느냐에 대해선 대부분 법률 전문가가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말한다.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 전시에 국민을 지키기 위한 비상수단인 계엄 발령권을 평시에 국정 정상화를 위해 썼다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라는 지적이다. 헌법학자들은 “국회는 계엄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라는 점에서 이번 계엄은 더 위험성이 컸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선 “야당 견제 등 정치적 목적이 뚜렷한 계엄이었다” “야당을 견제하기 위한 계엄은 헌법 어디에도 없는 내용”이라는 말도 나온다.
계엄 선포권은 헌법이 정하는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중 하나다. 국가긴급권에는 국회의 동의 없이 처분과 입법을 할 수 있는 긴급 재정·경제 처분 및 명령권, 긴급명령권, 그리고 계엄권이 있다.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계엄 선포권은 다른 권한과 달리 사법·행정 분야에 한시적인 군정(軍政) 통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며 “군 병력을 동원하지 않고는 비상사태 수습이 도저히 불가능한 경우에 한하기 때문에 경찰력으로 사태 수습이 가능하다면 계엄을 발령할 수 없다”고 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 계엄법에서는 비상계엄 발령의 조건으로 ‘적의 포위 공격’을 명시하고 있었다”며 “‘전시·사변에 준하는 비상사태’ 또한 전국적인 폭동이 일어나는 정도가 돼야 (계엄령을 발령) 하는데 이번엔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계엄 발동이 엄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위험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계엄법은 필요한 경우 언론·출판,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하고 영장 없이 체포·구금·압수 수색을 할 수 있는 특별 조치권까지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이 직접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취지다. 지난 3일 밤 발령된 계엄사령부의 ‘포고령 1호’도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 계엄법에 따라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 수색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의료 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들에게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지 않으면 계엄법에 따라 처단한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야당의 연이은 탄핵 시도와 법률·예산안 처리 방해 등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계엄법 2조 2항)에 해당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계엄이 가진 부작용과 위험성을 고려할 때 함부로 발동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헌법 77조는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면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하도록 하고, 국회 재적 과반수의 의결로 계엄 해제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계엄법에서도 현행범이 아닌 한 국회의원을 체포·구금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김선택 교수는 “계엄 상황에서도 국회는 건드릴 수 없도록 헌법이 정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군이 국회에 투입됐고 포고령 첫 문장이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 활동과 정치적 결사 금지였다“며 “이는 국회의 계엄 해제를 막으려고 한 것이다. 헌법과 계엄법이 말하는 계엄 형태가 아니고 헌정 질서를 유린한 것으로 보이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야당의 잘못을 경고하기 위해 계엄을 발동했다는 대통령 측 해명은 들을수록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했다.
헌재 공보관을 지낸 배보윤 변호사는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 해당하는지는 논란이 있을 수 있고 감사원장을 비롯해 고위 공직자들이 줄줄이 탄핵 대상이 되는 상황은 국가 기능의 마비 상태인 것은 명백하다”며 “그러나 계엄은 속성상 국회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적절한 조치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김해원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설사 비상사태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계엄은 군 병력을 동원하는 조치여서 최후 수단으로 고려했어야 했다”며 “김영삼 정권에서 금융실명제 시행을 위해 발령한 긴급명령권처럼 군 동원 없이 발령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고민했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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