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정치력 빈곤이 야기한 '계엄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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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외국 클라이언트의 문의가 빗발치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해외 투자자들이 보는 한국 상황이 심각한 것 같다."
'12·3 비상계엄' 사태의 후폭풍이 온 나라를 강타하고 있다.
정치의 거래적 속성을 철저히 무시한 대통령과 힘자랑하는 거대 야당의 극한 대결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비상계엄이라는 초현실적 현상을 야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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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의 국가 자산 손상 심각
김형호 사회부장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외국 클라이언트의 문의가 빗발치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해외 투자자들이 보는 한국 상황이 심각한 것 같다.”
‘12·3 비상계엄’ 사태의 후폭풍이 온 나라를 강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발동한 45년 만의 비상계엄 사태의 상처가 너무 깊다. 해외 고객사가 있는 로펌 등에는 지난 4일 온종일 전화가 빗발쳤다. 해외 기업의 자문을 맡은 컨설팅사, 로펌뿐만이 아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라는 초현실적 상황을 밤새 마음 졸여가며 지켜본 국민들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남겨져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남발하는 탄핵 폭거를 막기 위한 경고성 비상계엄령이었다”는 대통령실 안팎의 해명에 대다수 국민은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평소 비공개 석상에서 발언과 비상계엄 선포 담화문에 담긴 일관된 메시지라는 점에서 대통령의 잘못된 상황 인식이 빚어낸 자해극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지난해 대통령과 사석에서 만난 한 인사는 “야당과 노동계는 북한의 지령을 받는 종북 좌파세력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어 척결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공연히 드러내 깜짝 놀랐다고 전하기도 했다.
3일 비상계엄 선포 담화문에서 윤 대통령은 야당의 정부 예산안 삭감 행태를 겨냥해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고,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라고 지탄했다. 국회를 두고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로 규정했다. 이들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자유 대한민국을 재건”하기 위한 ‘구국의 결단’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올해 유독 심한 편이긴 하지만 해마다 연말이면 예산안을 두고 여야가 벼랑 끝 대치를 벌여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은 아득해졌지만 10년 전만 해도 몸싸움 난투극이 벌어지는 ‘동물 국회’도 연말 단골 풍경이었다. 나라살림의 감액 심의 권한을 가진 국회가 예산을 삭감한 후 증액 권한이 있는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칼질’당한 정부 예산을 복원하는 과정은 비효율적이기는 하지만 예산 정치의 한 부분이다. 정부 여당이 내줄 것은 내주면서 핵심 정책과 예산에 대한 야당의 반대를 무마하는 거래적 관계가 보편화한 공간이 국회다. 올해처럼 거대 야당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정부 예산안을 대폭 삭감하고 단독 처리까지 위협한 사례는 드문 경우지만 처리 시한이 10일로 순연돼 여야 간 본격 협상의 시간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일각에선 국회 예산 심의 과정의 몰이해와 탄핵, 특검을 남발하는 야당에 대한 적대적 인식이 대통령의 확증편향을 강화시켰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백번 양보하더라도 야당의 예산 심의 횡포를 빌미로 군 특수부대를 국회에 투입한 것은 헌정사의 큰 오점이자 대한민국 민주주의 시스템을 크게 훼손한 것이다. 정치의 거래적 속성을 철저히 무시한 대통령과 힘자랑하는 거대 야당의 극한 대결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비상계엄이라는 초현실적 현상을 야기한 것이다. 정치적 상상력은 사라지고, 상대를 제압 대상으로만 여기는 정치적으로 너무나 왜소해진 ‘피그미 시대’의 자화상인 셈이다.
계엄 사태로 그토록 힘겹게 일궈온 무형의 국가 자산들이 큰 손상을 입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국가라는 해외의 상찬과 신뢰, 국민적 자부심과 자존감이 상처를 입었다. 리더십 부재 속에 맞이할 혼돈의 내일에 대한 걱정은 왜 늘 국민의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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