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난 사람]“미국, 민주화 추구 ‘이상’과 안보 우선 ‘실리’ 오가는 야누스 같은 존재”
美, 계엄 알았다면 尹 대통령 말렸을 것… 1980년대식의 헌정 유린 반기지 않아
1986년 민중봉기 확산-북한 남침 우려… 전두환 대통령 친위쿠데타 막아
분단 원인 제공한 4강, 통일에 부정적… 미-중과 남-북-미 중재 리더십 키워야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4일 이번 계엄 사태를 두고 “매우 문제 있고 위법한 행동으로 예측할 수 없었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심하게 오판한 것 같다”고 했는데….
“상식적으로 미국 측이 계엄 시도를 미리 알았다면 윤 대통령을 말렸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미국 백악관은 “윤 대통령이 계엄을 해제하는 한국 국회의 표결을 존중한 것에 대해 안도한다”, “민주주의는 한미 동맹의 근간”이라고 했다.
“미국이 1980년대식의 헌정 유린을 반기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지미 카터 대통령(재임 1977년 1월∼1981년 1월) 당시에도 미국은 동맹국 지도자의 반헌법적 조치로 안정이 손상될 것 같으면 지도자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교체를 고려했다.”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도 친위 쿠데타를 계획했다고 책에서 밝혔다.
“1986년 11월 직선제 개헌 요구가 거세지자 전두환이 장세동 안기부장에게 특명을 내려 계엄령을 준비했다. 11월 8일 비상국무회의를 소집한 뒤 밤 12시를 기해 국회 해산과 동시에 계엄을 선포할 계획이었다. 한데 11월 6∼8일 개스턴 시거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방한해 전두환과 야당 지도자들을 만난다. 시거 차관보는 ‘한국군이 병영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간 정권이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미국이 친위 쿠데타를 막은 정황이 짙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국면에서 미국의 역할은….
“그해 2월 시거 차관보는 공개 연설에서 군부 지배를 문민화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전두환에게 7년 단임제 공약 실천을 압박하는 한편 개헌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다음 달 방한한 조지 슐츠 미국 국무장관이 군부정권 연장에 반대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했지만 한국 국민의 저항에 직면하자 바로 정책을 뒤집었다. 군부독재를 지지하다간 반미주의가 확산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 정부에 민주화를 요구하고 군부의 개입을 강력히 반대했다.”
―미국은 전두환 정권을 비교적 일관되게 지지했다는 것이 통념인데….
“미국은 1979년 12·12사태의 주모자인 전두환 소장을 경원시했고, 신군부의 등장을 막으려 했다.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는 전두환의 예편을 요구했다. 1980년 초 신군부에 대항하는 역(逆)쿠데타 지원을 검토하고, 나아가 전두환을 암살하려고 했던 정황도 있다. 그러다 군(軍) 내 지지가 탄탄한 전두환을 건드려서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방침을 바꾼 것이다. 전두환은 김대중 사면과 맞바꿔 5공화국 출범 승인을 얻어냈는데, 만약 김대중을 죽였다면 권좌에서 물러나야 했을 것이다. 미국의 전두환 제거 구상은 1987년 6·29선언을 통해 우회적으로 달성됐다고 본다.”
―오랫동안 미국은 5·18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의 배후로 지목됐다.
“신군부의 병력 이동을 묵인한 책임이 있는 건 맞다. 항쟁의 마지막 국면에서 당시 시민군 지도자 윤상원이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중재를 요청했다. 윤상원의 조정 능력을 믿지 못한 대사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대사는 미국이 한국인을 대신해 전두환을 막을 순 없다고 봤는데, 만약 중재 요청이 카터 대통령에게 보고됐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여지가 있다고 본다.”
―1979년 김재규의 박정희 대통령 살해에도 미국의 힘이 작용했나.
“미국이 배후에서 김재규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본다. 10·26사태 한 달 전 글라이스틴 대사가 김재규를 만나 ‘정권 교체’를 논했다. 신호를 보낸 거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1999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미국은 자신들의 행동과 말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박 전 대통령의 몰락에 일조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고 썼다. 미국 측 핵심 인사가 남길 수 있는 최대한의 고백이다.”
―미국이 박정희 정권을 몰락시키려고 한 까닭은….
“부마항쟁이 한 계기가 됐다. 미국은 민중봉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 북한의 남침을 불러일으킨다고 봤다. 한국이 공산주의에 넘어가면 일본이 위태롭고, 다음으로 하와이와 캘리포니아가 위태롭고, 워싱턴까지 도미노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은 4·19나 6월 민주항쟁 당시에도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민중의 편에 서서 민주화로 나아가도록 물꼬를 텄다. 미국의 대한 정책의 첫 번째 목표는 한국의 공산화를 막는 것이었지만 그런 면에서 한국민의 자유를 수호하고 민주주의를 후원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한국의 민주화는 내부의 동력 덕이 아닌가.
“그렇다. 힘의 원천은 한국민이다. 미국이 민주주의 편에 서지 않았다고 해도 지체됐을 뿐 민주화는 이뤄졌을 것이다. 다만 미국은 영향력을 행사해 배후에서 민주화를 앞당기는 한편 혁명적 열기가 온건한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향해 흐르도록 만들었다.”
―미국이 직접적 개입보다 은밀한 개입을 선호한 까닭은….
“노골적으로 개입했다가 민중들이 반미로 돌아서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카터 대통령이 우려했던 것도 한국이 ‘제2의 이란’이 되는 것이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 정치에 개입했나.
“미국은 김영삼 대통령의 민족주의적 지향이 불편했다. 1997년 외환위기 발생 전 미국이 한국에 불과 몇억 달러를 지원해 돕지 않은 건 한국의 정권 교체를 유도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 뒤에도 역대 정권 교체 국면 등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엔 미국의 힘과 개입 정도가 과거에 비해 크게 약화되지 않았나.
“미국의 절대적인 힘은 변화가 없는데, 한국의 힘이 성장하면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상하 관계에 가까웠던 동맹이 상호 의존 관계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힘이 약해지면 상대적으로 주변국의 힘이 다시 강해지고, 19세기 말처럼 친중 친러 친일 등으로 분열하는 상황이 오지 말란 법이 없다.”
―앞으로의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38선을 그으며 소련과 함께 분단의 원인을 제공한 미국, 북한 남침을 후원한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 6·25전쟁 당시 멸망하던 북한을 구해준 중국, (한반도를 강점했던) 일본 등 분단을 만든 배후의 4강이 분단 체제 극복에 대체로 부정적이다. 미국과 중국이 ‘결자해지’해야 하는데 상호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평화 공존을 통해 장기적으로 통일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 한국이 미중과 남북미를 중재할 수 있는 리더십을 키워야 한다.”
―미국이 38선을 긋지 않았다면?
“한반도가 통째로 소비에트연방에 편입되거나 폴란드처럼 위성국가가 됐다가 1991년에야 독립 또는 체제 전환을 했을 것이다. 해방 뒤 통일된 민족국가를 수립하는 게 최선이었겠지만 차선으로 반쪽에서라도 미국식 체제를 수립해 북한 같은 나라가 안 되게 만든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공헌이다.”
―미국의 한국 정치 개입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구하게 됐나.
“정치외교학과 79학번인데 감옥에 간 변혁주의자 친구들에게 책임감을 느꼈고, 1984년에 대학원에 들어갔다. 사회주의 체제를 대안으로 봤던 1980년대 현대사 연구는 미국을 비판적으로 보는 경향과 반미주의가 팽배했다. 우리 현대사가 민족해방(NL)파 친화적인 주제다. 하지만 1991년 소련 해체와 사회주의권 몰락을 계기로 미국을 현실 그대로 보자고 생각하게 됐다.”
―연구하며 입장이 바뀐 건가.
“자주파에 공명하는 편이었는데, 현실을 보면 동맹파에서 배울 점이 있었다. 지금은 자주와 동맹의 대립을 지양하자는 주의다. 용미(用美)랄까. 미국의 정치 개입사를 밝혀 앞으로 우리 국익을 잘 챙기기 위한 교훈을 얻자는 목적으로 책을 썼다.”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진보 진영 일각에선 광주를 유혈 진압한 신군부의 편에서 민중이 피를 흘리게 만든 존재로 본다. 보수 일각에선 6·25전쟁에서 한국을 구하고 경제 성장을 도운 은인으로 본다. 하지만 미국은 마냥 선한 제국도 그렇다고 악당도 아니다. 국면에 따라 자국의 안보만 우선하기도 했지만 한국이 북한에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되면 민주주의의 편에 서기도 했다. 공산화 방지라는 현실적 목표를 위해 민주 인권 자유를 국면마다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유동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독재의 편이냐, 민주의 편이냐 하는 단선적 질문은 지양돼야 한다. 선악이 다 있는 야누스 같은 존재이고, 변화무쌍한 나라이므로 다이내믹하고 다층적인 시각으로 봐야 한다.”
조종엽 논설위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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