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비상계엄’에 촛불 든 MZ세대

정윤경 기자 2024. 12. 5.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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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때 ‘박근혜 탄핵’ 지켜봐…성인 돼서 촛불 들고 싶었다”
보수성향 ‘이대남’도 변심…“尹대통령 탄핵해야 보수 살아”
“초등학생만도 못해요”…부모님과 집회 온 아이들도 ‘분노’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12월5일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시민대회'에 참여한 대학생 이아무개씨(25)와 친구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시사저널 정윤경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날, 계엄군과 용감하게 싸웠던 어른들의 모습을 뉴스에서 보고 용기를 얻었어요. 이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학교에 현장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왔습니다. 하나도 춥지 않아요!"(촛불집회에 참여한 최아무개양(19))

45년 만의 '비상계엄' 선포에 분노에 찬 MZ세대가 촛불을 들었다. '박근혜 탄핵 정국'이 이어졌던 2016년 이후 8년 만에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촛불집회에는 앳된 얼굴들이 속속 보였다. 수능이 끝난 고등학생도, 대학에서 시국선언을 하고 온 학생들도, 유튜브에서 한국의 역사를 찾아보고 왔다는 외국인 유학생도 있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윤석열 정권의 퇴진'을 외쳤다.

12월5일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시민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모습. 앳된 얼굴의 젊은층이 상당수 집회에 참여했다. ⓒ시사저널 정윤경

5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시민단체는 이날 저녁 6시부터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윤석열 퇴진 시민대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는 시민단체 소속이 아닌 개인들도 상당수 있었다. 특히 한 손에 촛불을 들고 다른 손에 '내란죄 윤석열 퇴진'이라고 적힌 피켓을 든 젊은층들이 다수 보였다.

남자친구와 함께 집회에 참여하게 됐다는 김아무개씨(28)는 "채 상병 사건,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명태균씨의 공천 개입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는데 계엄령까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거리로 나오게 됐다"며 "21세기에 벌어졌다고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대통령의 편을 들어주는 국민의힘도 공범"이라고 비판했다.

2년 전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표를 줬던 이른바 '이대남'(20대 남성)의 마음도 돌아선 모습이었다. 당시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 10명 중 6명은 윤 대통령에게 한 표를 던졌다. 보수 성향이라는 대학생 한아무개씨(21)는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해야 보수가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대로라면 총선에서 보수정당이 힘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김유호군(18)은 유튜브를 통해 과거 한국의 계엄령 사례를 공부했다고 했다. 김군은 서툰 한국어로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한국 사람들은 힘이 세요. 대통령이 잘못된 일 하면 한국 사람들이 막은 적 많아요. 이번에도 할 수 있어요".

12월5일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시민대회'에 참여한 최세윤씨(25)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비판하는 입장문을 시민에게 나눠주고 있다. ⓒ시사저널 정윤경

고등학생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지켜봤다는 학생들은 성인이 돼 직접 행동에 나서고 싶다고 했다. 대학생 이아무개씨(25)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될 때는 고등학교 3학년이어서 촛불집회에 참여하지 못했다"면서 "대학교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친구들과 뛰어왔다"고 말했다.

이날 연단에 올라서 자유 발언을 한 대학생 서희진씨(20)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 3일에도 국회 앞에서 계엄령의 부당함을 외쳤다고 했다. 서씨는 "계엄령이 선포되자마자 국회로 가는 마을버스를 탔는데, 그때 탔던 승객들이 모두 나와 같은 곳에서 내렸다"면서 "그날 하늘 위로 군용 헬기가 요란한 굉음을 내면서 지나다니고 계엄군이 들이닥쳤는데 함께 하는 국민이 있어서 전혀 무섭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12월5일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시민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모습. 앳된 얼굴의 젊은층이 상당수 집회에 참여했다. ⓒ시사저널 정윤경

자녀들에게 '역사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싶어 촛불집회를 찾은 이들도 있었다. 8살·12살 자녀를 데려온 전아무개씨는 "대통령이 법을 어기고 국민에게 총칼을 들이댔다고 아이들에게 설명했다"며 "아이들 학교와 남편 직장이 끝나자마자 광화문으로 오게 됐다"고 했다.

경기 부천시에서 6살·8살·9살 자녀와 함께 왔다는 직장인 신아무개씨(47)는 "아이들에게 계엄령이 무엇이고, 지금이 어떠한 상황인지 설명해 주니 '대통령이 잘못해놓고 사과를 안 하다니 자기 친구들만도 못하다'고 했다"며 "아이들이 원해서 집회에 나오게 됐다"고 했다.

젊은층의 적극적인 집회 참여에 기성세대도 응원을 보냈다. 김아무개씨(60)는 "어제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도 젊은 친구들이 엄청 많이 왔다"며 "나라를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데 젊은층이 앞장서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직 이 나라에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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