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소녀 시절 지나 ‘나’를 찾다[책과 삶]
내 어둠은 지상에서 내 작품이 되었다
멀리사 피보스 지음 | 송섬별 옮김
갈라파고스 | 392쪽 | 2만1000원
대중매체가 10대 소녀를 재현하는 방법에는 몇 가지 패턴이 있다. 그중 가장 흔한 것이 ‘뽀샤시한 필터’를 씌우는 것이다. 맑고 순수한 소녀들이 ‘꺄르륵 꺄르륵’ 웃으며 보내는 일상이 알콩달콩하게 그려진다.
1980년 태어난 미국 여성 멀리 피보스의 소녀 시절은 이것과는 거리가 멀다. 아니, 아예 정반대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내 어둠은 지상에서 내 작품이 되었다>는 미국의 주목받는 에세이스트 피보스의 3번째 책이다. 그는 열여섯 살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집을 나와 보스턴과 뉴욕에서 홀로 생계를 꾸렸다. 20대 초반에는 도미나트릭스로 성노동을 했으며 한때는 헤로인 중독자였다. 도미나트릭스란 ‘성적으로 지배적인 여성’을 뜻하는 말로, 상대방을 때리거나 모욕주는 방식으로 성행위를 주도하는 것을 일컫는다. 40대 초반인 지금 그의 직업은 대학 교수다. 아이오와대학 영문과에서 논픽션 글쓰기를 가르친다.
총 7개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피보스가 어두웠던 자신의 청소년기와 20대를 돌아보고, 억압받는 여성의 몸과 자아를 고찰한다. 피보스는 2차 성징이 시작된 10~11세 무렵 주변의 남성들로 인해 트라우마적 경험을 한다. 도미나트릭스가 된 데에는 이 경험이 영향을 줬다고 피보스는 말한다.
그는 그러나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회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의 여성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 역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유사한 청년기를 보낸다는 사실을 고발한다. “평범한 여성들은 저마다의 어둠을 품고 살아온 현대의 페르세포네”라는 것이다.
평범한 여성의 그것과 동떨어져 보였던 저자의 경험은 이 과정에서 보편성을 획득한다. 이때 독자, 특히 여성 독자가 얻는 것은 일종의 해방의 감각이다. 피보스 역시 이 책을 쓰면서 “내 소녀 시절을 수정하고 나 자신을 회복하는 법을 찾아갔다”고 고백한다.
2021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비평 부문 수상작이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장 서는데 장돌뱅이가 안 가느냐”…조기 대선 출마 공식화한 홍준표
- ‘계엄 특수’ 누리는 극우 유튜버들…‘슈퍼챗’ 주간 수입 1위 하기도
- “비겁한 당론은 안 따라”···김상욱·김예지·조경태·한지아, 헌법재판관 선출안 표결 참여
- 오세훈, 윤석열 탄핵·수사지연 “옳지 않다”…한덕수에 “당당하려면 헌법재판관 임명”
- [Q&A]“야당 경고용” “2시간짜리” “폭동 없었다” 해도···탄핵·처벌 가능하다
- [단독]김용현, 계엄 당일 여인형에 “정치인 체포, 경찰과 협조하라” 지시
- 혁신당 “한덕수 처, ‘무속 사랑’ 김건희와 유사”
- 병무청, ‘사회복무요원 부실 복무’ 의혹 송민호 경찰에 수사 의뢰
- ‘믿는 자’ 기훈, ‘의심하는’ 프론트맨의 정면대결…진짜 적은 누구인가 묻는 ‘오징어 게임
- 박주민 “어젯밤 한덕수와 통화···헌법재판관 임명, 고민하고 있다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