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진실화해위원들 “국가폭력 중심엔 비상계엄 있었다”

고경태 기자 2024. 12. 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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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락정 진실규명 결정 취소’하던 날 비상계엄 선포
5일 비상계엄 관련 인권침해 사건 설명하는 간담회
5일 오후 서울 용산의 한 카페에서 열린 진실화해위 야당 추천 위원들의 기자 간담회에서 이상희 위원이 과거 비상계엄 관련 판례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이상훈·허상수 위원. 고경태 기자

“그동안 국가폭력의 중심에는 비상계엄이 있었다.”

5일 오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야당 추천 위원들이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그동안 진실화해위에서 결정했거나 조사 중인 비상계엄 관련 사건들을 설명했다. 이들이 이런 자리를 마련하게 된 데엔, 공교롭게도 비상계엄이 선포된 3일 낮 진실화해위 전체위원회에서 ‘전시 비상계엄하’ 군법회의 사형판결을 받은 백락정(1919년생)의 진실규명 취소 결정이 내려졌던 일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위법·무효하다는 논란이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를 계기로 백락정 사건과 그동안의 비상계엄 관련 인권침해 사건의 역사를 함께 설명하려는 취지였다.

이날 간담회에는 이상훈 상임위원과 이상희·허상수 위원이 참석했다. 이들은 먼저 “한국 현대사에서 비상계엄이 권위주의 정권의 정권 유지와 민주주의 억압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면서 수많은 시민이 죽었고 무고한 옥살이와 고문, 폭행으로 후유증에 시달린다“며 “이 때문에 3일 국회 의사당에 난입한 무장군인들이 추상적 존재가 아닌 위협적 존재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이상희 위원은 “1995년 군사반란 내란죄에 대해 전두환·노태우 기소와 함께 형사처벌이 이뤄진 시점부터 비상계엄과 이에 따른 포고령에 대해 위법·무효하다는 법적 판단이 내려졌다“며 “2005년 1기 진실화해위가 출범하면서 이에 대해 진실규명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1995년 이후 과거사 청산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가 비상계엄과 포고령을 통한 국가폭력에 대한 진실규명이 됐다는 것이다.

1951년 1월6일 11사단 군법회의에서 사형판결을 받고, 2024년 12월 진실화해위로부터 과거 사형판결이 정당하다며 이전 진실규명을 취소당한 백락정(1919년생). 유족 제공

가령 박정희 사망 직후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1979년 10월27일 04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계엄사령부가 포고1호를 발표했는데, 법원은 이 포고에 대해 위헌·무효라고 판결했다. 그 근거는 “비록 장기간에 걸쳐 최고 통수권자로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총격 사건으로 피살되는 비상사태로 인하여 사회에 다소의 혼란 발생 가능성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경찰력만으로는 도저히 비상사태의 수습이 불가능하고 군병력을 동원해야만 할 상황이었다고 보기 어렵다”(서울고등법원 2019년 11월15일 선고)는 것이었다.

법원은 또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 및 포고령 제10호, 1979년 10월18일 포고령 제1호, 1972년 10월17일 계엄포고령 제1호에 대해서도 “‘군사상 필요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고 한다. 사실상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을 제외하고는 비상계엄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사법부의 판단이 나왔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진실화해위는 비상계엄 기간에 군법회의에서 ‘계엄포고 위반’ 등으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가 진실규명을 신청한 여러 사건에서 “위헌적인 법령에 따른 영장 없는 체포·구금 등은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권력의 행사”라고 판단해왔다. 위원들은 이렇게 비상계엄에 대한 법원의 판결과 진실화해위 결정을 소개한 뒤 최근 문제가 된 백락정 사건 이야기를 꺼냈다.

허상수 위원은 “백락정의 판결문을 아무리 살펴봐도 사형선고를 내릴 만한 내용이 없었다. 그런데 군사법원도 아닌 진실화해위가 백락정에 대한 진실규명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리며 사형판결을 정당화했다”고 비판했다. 3일 전체위에서 이 안건이 표결로 의결되기 직전 야당 추천 위원 4명은 항의의 의미로 모두 중도 퇴장했다. 지난해 11월 충남 남부지역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의 희생자로 1950년 7월 대전 골령골에 묻힌 것으로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졌던 백락정은 국방경비법에 따른 군법회의 사형판결문이 뒤늦게 발견되며 지난 9월 재조사가 의결된 바 있다.

이상희 위원은 진실화해위 조사1국 4과의 조사관들이 재조사 과정에서 새롭게 얻었다는 참고인의 진술도 현저히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조사관들은 백락정의 고향 마을인 충남 서천군 시초면 풍정리를 2회 방문해 이아무개(90)씨로부터 △백락정이 전쟁 전 ‘공산당 활동을 했다 △인민군 점령 시 치안대 활동을 했다 △당시 치안대가 반동분자를 잡고 죽였다 △백락정이 수복 직전 행방불명됐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고 한다. 이 조사는 국정원 대공수사처장 출신 황인수 조사1국장의 지휘로, 조사4과 팀장인 국정원 파견 조사관이 함께 했다.

그러나 백락정이 했다는 공산당 활동이 무엇을 말하는지, 인민군 점령 시 치안대 활동을 했다면 어떤 행위를 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진술이 없고, 당시 치안대 활동에 대한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게 야당 추천 위원들의 주장이다. 오히려 백락정이 수복을 전후로 군경에 의해 체포 및 장기 구금됐을 가능성이 존재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상훈 상임위원은 “비상계엄이 너무 쉽게 선포되고, 이로 인해 시민들은 너무 심한 피해를 입어왔다. 요건에 전혀 맞지 않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계기로 그동안의 비상계엄으로 인한 인권침해들을 돌아봤으면 좋겠다”면서 “백락정 사건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사정에서 선포된 비상계엄이긴 하지만 역시 위법적인 재판에 의해 빨갱이로 인권침해를 당한 사례”라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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