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 위협한 비상계엄 '특집뉴스', MBC 128분 KBS 58분
KBS 내부 "교범처럼 읽는 '조선일보'만 제대로 봤어도 이 수준 아닐 것"...수뇌부 퇴진 요구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기습 선포한 비상계엄이 국회 결의 이후 6시간 만에 해제된 4일, 국내외 모든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한 가운데 지상파 방송사 뉴스 프로그램도 '특집' 체제로 전환됐다. 국가기간방송사인 공영방송 KBS의 메인 뉴스는 평시와 큰 차이가 없는 1시간에 그쳤고, 내용도 부실했다는 KBS 내부의 비판을 불렀다.
4일 오후 지상파 3사 메인 뉴스프로그램 모두 비상계엄 관련 특집 체제를 꾸렸다. 메인 뉴스 프로그램 앞뒤로 특보가 이어진 가운데 SBS '8뉴스'는 3시간2분, MBC '뉴스데스크'는 2시간8분을 이어간 반면 KBS '뉴스9'는 58분에 그쳤다. 평일 '뉴스9'가 통상 50분 이내로 편성된 것에 비해 다소 연장됐지만 타 방송사 대비 절반 내지 3분의1에 못 미치는 분량이다.
이례적으로 MBC, SBS 뉴스 모두 시작과 말미에 앵커들이 이번 사태 심각성과 윤 대통령의 무책임한 대처를 지적한 반면, KBS 앵커는 관련 대목을 언급하지 않았다. KBS를 제외한 MBC·SBS 뉴스는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언론 통제를 담은 포고령이 발표된 가운데 계엄군이 계엄해제 의결을 하려는 국회를 통제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 시민과 충돌한 현장 영상을 뉴스 첫머리에 배치했다.
이날 뉴스 오프닝 멘트를 살펴보면 KBS '뉴스9' 최문종 앵커는 “시간을 50년 전으로 되돌린 듯한 비상계엄 상황은 짧게 끝났다. 하지만, 사태는 이제 시작”이라며 여섯 개 야당은 오늘(4일) 곧바로 내란 미수 혐의 등을 사유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는 말로 뉴스를 시작했다.
MBC '뉴스데스크' 조현용 앵커는 “도저히 안녕할 수 없는 날이다. 국민을 지켜야 할 대통령이 어젯밤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해 한밤중 무방비상태의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눴다”며 “공수부대까지 국회에 침입시켜 헌정 마비를 기도하고, 국민을 적으로 돌린 내란적 친위 쿠데타는 그러나 맨몸으로 뛰쳐나와 계엄군에 맞선 용감한 국민들에 의해 일단 실패로 끝났다”고 해다.
SBS '8뉴스' 김현우 앵커의 경우 “정말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싶을 만큼 믿기 힘든 일들이 지난 밤사이 펼쳐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선포한 비상 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그 후폭풍은 끝이 어딜지, 위력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며 “당장,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6개 야당은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발의하고, 최대한 신속하게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클로징 멘트를 통해서도 SBS 앵커는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어젯밤 이후 이제 꼬박 하루가 거의 다 지나고 있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게 가장 큰 임무인 대통령은 국민에게 이렇게 큰 혼란과 불안을 안겨주고도 아직 어떠한 사과나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대통령의 침묵을 짚었다.
MBC는 두 앵커가 “두려움을 느꼈지만 용기를 냈다는 분들께, 그리고 그 누구보다 지난밤 위험을 무릅쓰고 총을 든 계엄군에게 맨몸으로 맞섰던 시민들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말도 안 된다던 계엄을 몰래 준비했고, 무방비의 국민을 향해 총을 들었던 장본인이라면 무슨 일을 벌인다 해도 이상할 게 없기 때문”이라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우리 헌법의 뜻을 지키기 위해 시청자 여러분께서 마음을 모아주시길 바란다”고 보다 적극적인 논평을 더했다.
KBS 앵커들은 평시와 다름없이 뉴스를 마친다는 인사를 남겼다.
전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침묵에 대한 보도에서도 차이가 두드러진다. 먼저 SBS <'불수용?' 긴장 고조…해제하며 '국회 탓'> 리포트는 “헌법 77조는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할 시 대통령은 해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계엄법 11조는 국회가 계엄해제를 요구하면 지체 없이 해제하고 공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국회 의결 뒤 3시간이 지나도록 묵묵부답이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 이후로도 3시간 여가 지난 새벽 4시30분경 비상계엄 해제 입장을 밝힌 것을 두고는 “밤새 국민들이 겪은 엄청난 혼란에 대해선 한마디의 사과나 유감 표명조차 없었다. 오히려 비상계엄 선포의 명분을 거듭 강조하며 국회의 입법 농단 때문이라고 책임을 돌렸다”며 “이번 계엄 선포를 두고 헌법이 규정한 절차와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위헌 논란이 제기되고 있어, 대통령을 향한 책임론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특히 동일한 현장 연결에 제목까지 유사한 MBC, KBS 보도 내용이 대비됐다. MBC <침묵 이어가는 윤 대통령‥이 시각 대통령실>, KBS <침묵 지킨 대통령실…이 시각 대통령실> 기사들이다.
MBC는 “기자들이 상황 파악에 나서보려고 해도, 언론 대응을 담당하는 홍보수석이나 대변인 등과 도무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며 “대통령실 한 출입기자는 대통령실 일정이 공지되는 단체 메시지방에 '대통령 기자회견을 요청한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정진석 비서실장 등 대통령실 3실장과 수석급 고위 참모진의 사퇴가 “실장·수석 일괄 사의 표명” 10글자 알림으로 공지된 문제도 지적했다.
MBC는 또한 “아직까지 윤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실도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나 배경에 대해 하루종일 함구하고 있다”면서 “윤 대통령의 침묵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국정 정상화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고 했다.
KBS는 “(대통령실에서) 탄핵 소추안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지도 아직 나온 게 없다. 다만, 비상계엄 선포의 위헌성에 대해서는 외신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면서 '비상계엄령 발동은 엄밀하게 합헌적 틀 안에서 이뤄졌고 비상계엄은 잇단 야당의 탄핵과 예산 삭감, 법률 단독 처리 등 마비된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대통령실 설명을 전했다.
KBS는 또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계엄군의 국회 투입이 비상계엄 선포 후 한 시간이 지나서야 이뤄졌고, 의원들의 국회 출입도 막지 않았다는 점 등을 설명했다”는 대목을, 이와 상반된 현장과의 차이점 언급 없이 전했다.
이날 KBS 뉴스는 KBS 보도본부장, 보도국, 국주간단을 향해 “비상 시국에 대응할 역량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물러나라”는 내부 비판으로 이어졌다. KBS기자협회는 4일 “45년 만의 비상계엄선포, 여기에 맞선 국회의 심야 계엄 해제, 야당의 탄핵 요구안 발의 등 하나하나가 역사책에 나올만한 대형 이슈들”이라며 “그런데도 우리 9시 뉴스는 평상시와 똑같은 1시간 편성에 불과하다. 지금이 평상시로 보이나”라고 반문했다.
KBS기자협회는 또한 “대통령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건지? 왜 아무 말도 없는 건지, 계엄령 선포 과정에서 내각은 어떤 역할을 한 것인지, 뒤늦게 내각이 총사퇴 결정을 했다는데 어떤 배경인지,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지금 국정운영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인지, 계엄령 선포와 포고령에는 어떤 위헌적이고 위법적인 요소가 있는 건지, 내란죄 적용은 가능한 건지, 국민들은 어떤 반응인지, 탄핵안은 국회를 통과할 수 있는 건지, 김용현 장관은 왜 과거에는 계엄을 부정한 건지, 경찰은 어떻게 연락을 받고 어떻게 대응을 한 건지 등등 궁금한 것이 한 둘이 아니다”라고 지적한 뒤 “우리 뉴스에서는 이런 궁금증들을 제대로 풀어낼 만한 아이템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KBS같이(가치)노조는 5일 “현장 기자들은 오늘도 이 추운 날씨에 거리에서 겨울바람보다 더 싸늘한 시선을 감당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수뇌부는 우리 군인이 국회에 난입한 일을 북한군의 러시아파병 보다 가볍게 여기는 듯하다”며 '이러니 욕을 먹지' 연재를 시작했다. 이를 통해 4일 '뉴스9'를 두고 “대통령이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국회에 군대를 투입한 배경은 무엇인지 본질을 애써 파헤치려 하지 않는듯 보였다”면서 “지구 반대편 외신도 사태를 이정도로 평온하게 바라보진 않는다. 매일 교범처럼 읽는 '조선일보'만 제대로 봤어도 이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꼬집었다.
앞서 KBS 다수 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4일 KBS 보도 책임자 사퇴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진행하는 한편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 국민의 방송이 되기 위한 보도방송투쟁에 나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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