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 같은 속 풀어주는… 착한 칼국수의 속 깊은 국물[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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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칼국수 마니아여서 하는 말이지만, 서민들에게 친근한 한 끼 먹거리로 칼국수만 한 건 없다고 감히 단언한다.
비슷한 지위를 누리는 짜장면과 순댓국은 집에서는 만들어 먹기 어려운 맹점이 있는데, 칼국수는 집에서 만들어 먹기도 수월하고 입맛대로 칼국수 맛집을 찾아다니는 매식도 가능하다.
칼국수를 인스턴트처럼 대충 끓여 내놓냐고? 의심하지 말지니, 찰기와 졸깃함의 정도가 적당한 두툼한 면에 생바지락 육수, 애호박, 당근, 파, 표고버섯 등이 충실하게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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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은 10평 정도에 올망졸망 28석의 자리가 있는데, 가성비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 오전 11시부터는 자리가 차고 점심시간엔 빈자리가 없을 정도다. 이 집은 백반 몇 가지도 참 맛있게 잘하지만 역시나 내겐 칼국수가 제일 맛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수년째 칼국수 가격(5000원)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가 상승에 따라 다른 메뉴들은 전부 가격 조정을 했는데, 칼국수 가격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칼국수를 인스턴트처럼 대충 끓여 내놓냐고? 의심하지 말지니, 찰기와 졸깃함의 정도가 적당한 두툼한 면에 생바지락 육수, 애호박, 당근, 파, 표고버섯 등이 충실하게 들어간다. 해장으로 그만이어서 먹구름 같은 속이 시원하게 풀린다.
어느 날 단골로서 고마운 마음으로 이 집을 본란에 소개하고 싶어 찾아가 바깥주인께 몇 가지를 물은 적 있다. 부담을 가지실까 노포 소개하는 글을 쓰는 작가라는 말 따윈 하지 않았다. “몇 년 장사 하셨어요? 일하는 분들과는 어떤 관계세요?” 일단 이렇게 물으니 이내 “몇 년 됐는지는 안 세봐서 모르고 그런 건 알 거 없으니 칼국수나 얼른 드셔.” 이렇게 정색이 묻어나는 답이 돌아왔다. 식당 안팎의 청소와 홀 서빙을 담당하시는 분인데, 평소 깔끔한 성격답게 필시 성격이 대쪽 같은 분인 게다. 그래서 이날은 포기하고 며칠 지나 다시 가서 칼국수 한 그릇을 시킨 후 이번엔 할머니께 살짝 여쭈었다. 그랬더니 성모 마리아에 보살 같은 미소를 지으며 이것저것 친절히 대답해주신다.
특히 가장 궁금했던 칼국수 가격을 한 번도 인상하지 않고 같은 가격을 유지하는 이유를 여쭈었는데, 참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대답이 돌아온다. “칼국수엔 내놓는 게 별것 없잖아요. 깍두기와 김치 정도인데 여기서 뭘 더 받겠어요. 그런데 (정갈한 반찬을 가리키며) 다른 백반 메뉴들은 반찬들이 다양하게 나가는 게 그 재료들이 안 오른 게 없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올렸지.”
이 집 메뉴판 사진을 보라. 서민들에게 한 끼를 내놓으면서 얼마나 고심했는지 쓰고 지우고 붙이고 덧붙이기를 반복한 흔적이 역력하다. 인생사엔 만고의 법칙이 있다. 비슷한 처지끼리 가장 정확히 형편을 헤아린다는 법. 이들 노부부도 어디 가서 무언가를 사먹을 땐 서민이고 일개 식객일 터. 가격을 지우고 다시 쓴 흔적에서 서민 노포의 굳고 높고 정한 갈매나무의 마음을 읽는다.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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