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숙 끝? 돌아오는 ‘범법 배우’들…규정 없는 OTT가 주무대
“솔직한 심정으로 아주 밉고 원망스럽습니다.” 곽경택 감독은 4일 개봉한 영화 <소방관>의 제작발표회에서 주연 배우 곽도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소방관>은 곽도원 때문에 2년이나 개봉이 미뤄졌다. 곽도원은 2022년 제주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도로에 정차한 채로 잠들어 벌금 1000만원의 약식명령 처분을 받았다. <소방관>은 2001년 서울 홍제동 화재 참사를 다룬 작품으로 현장감을 생생하게 연출했다. 곽도원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는 정의로운 소방관을 연기했다. 배급사 측은 논란을 의식한 듯 포스터, 예고편, 스틸사진에서 곽도원의 모습을 제외했다.
범죄를 저지른 배우들이 줄줄이 극장과 TV에 돌아온다. 통상 배우들은 음주운전, 마약, 폭행 등의 범죄가 적발되면 수년의 ‘자숙 기간’을 거쳤다. 제작사와 감독이 문제 배우를 캐스팅하지 않았다. 윤리 의식이 투철해서가 아니라 시장 논리에 따른 판단이었다. 대중의 윤리적 지탄이 흥행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걱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콘텐츠 플랫폼 주류가 되면서 ‘자숙 기간’이 점점 빨라지는 추세다. 여론에 민감한 국내 지상파 방송과 달리 글로벌 OTT는 세계 시청자를 겨냥하기 때문에 물의를 빚은 배우 캐스팅에 거리낌이 덜한 편이다. 하정우는 2020년 마약류인 프로포폴을 투약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2021년 재판을 받으면서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을 촬영했다. <수리남>은 2022년 공개돼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사실상 ‘자숙 기간’ 자체가 없었다. 배성우는 2020년 음주운전이 적발돼 SBS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에서 하차했다. 그는 지난 5월 넷플릭스 시리즈 <더 에이트 쇼>로 복귀했고, 4일 공개된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조명가게>에선 주연을 맡았다.
사실 ‘자숙 기간’이 얼마여야 충분하냐에 대해 사회적으로 합의된 구체적 기준은 없다. 오는 26일 공개를 앞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2>에는 K팝 그룹 빅뱅 출신 최승현이 출연한다. 최승현은 2016년 대마 흡연 혐의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황동혁 감독은 지난 8월 기자간담회에서 최승현에 대해 “이미 선고가 내려졌고, 집행유예 기간도 끝났다”며 “그쯤 시간이 지났으면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문제 배우의 출연 분량을 억지로 편집하면 작품의 완성도가 크게 떨어진다. 다른 배우, 스태프, 투자자 등 무고한 관계자들까지 엄청난 피해를 받는다.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사실 배우의 문제가 터지면 작품을 만든 영화사가 가장 큰 피해를 받는다”며 “나름대로 검증 절차를 마련하지만 사생활을 조사할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문제를 미리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사전제작이 활발해지면서 해당 배우의 출연 분량을 ‘통편집’하는 것도 어렵게 됐다. 곽경택 감독은 <소방관> 시사회에서 “곽도원의 분량을 빼기 위해 편집하진 않았다. 상대 배우와의 형평성 때문에 덜어낼 수 없었다”면서도 “음주 사실과 직접적으로 연관될 만한 불편한 것(장면)들은 약간 손질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지만 OTT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윤리적 책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배우들이 진지한 반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대중에게 그런 범죄를 저질러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상파 방송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을 출연시키지 않는다’는 규칙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것인데 OTT가 무력화시킨 상황”이라며 “한국 사회에서 영업하는 플랫폼이라면 사회적 합의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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