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예견된 엉성한 계엄령…“양치기 소년 전락한 尹”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은 '실패한 쿠데타'로 역사에 기록될 전망이다. 시민사회와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위헌적인 친위 쿠데타(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라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12월3일 밤의 비상계엄 선포는 절차상 하자를 차치하더라도 미흡한 점이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처음부터 실패가 예견된 오판이었던 셈이다.
윤 대통령은 3일 밤 긴급 담화문을 통해 계엄 선포의 명분이 더불어민주당의 '폭거'임을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국회는 우리 정부 출범 이후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 소추를 발의했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민주당의 활동을 "정당한 국가 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라고 규정했다.
우왕좌왕한 군∙경…일사분란한 민주당
그런데 정작 계엄 선포 직후 관계당국은 민주당의 기민한 움직임을 통제하는데 실패한 흔적이 곳곳에서 노출됐다. 경찰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3일 오후 10시28분과 거의 동시에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경찰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국회 정문(1·2문)을 포함해 동서남북의 1~7문 모두가 일제히 차벽과 인의 장벽으로 가로막혔다.
비슷한 시각 민주당 의원들도 단체로 움직였다. 민주당 원내에서는 3일 오후 10시40분 전에 이미 소집령을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0여분도 안 된 시각이다. 즉각 민주당 의원들은 속속 국회로 모여들었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계엄 선포 극초반에는 국회에 도달한 직원과 출입 기자 등이 신분증을 보여주면 경찰들이 길을 터줬다. 하지만 이내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일괄 통제가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당시 정문 앞의 경찰은 기자에게 "다른 입구로 가 보라"고 안내했지만, 정작 가리킨 입구에서는 "이쪽으로 출입할 수 있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다"며 엇갈리는 모습이 연출됐다.
민주당 의원들은 경찰의 통제에도 국회 진입을 강행했다. 이재명 대표가 경찰이 막고 있는 국회 출입문을 피해 담장을 넘어 들어가는 모습이 본인의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생중계되기도 했다. 박주민·정동영·임광현 의원 등도 담을 넘어 국회에 들어갔다. 민주당 의원들의 결집을 눈 뜨고도 못 막은 셈이다. 월담을 한 관계자 중에는 계엄 해제의 키를 쥔 우원식 국회의장도 포함돼 있었다.
당초 윤 대통령은 의원들의 동선을 끊기 위한 바탕까지는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 1항을 통해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4일 자정 계엄군이 국회에 침입해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인 것도 포고령에 따른 정치활동 저지 행위로 추정된다.
법조계 일각에선 "국회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포고령 자체가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다르다. 1981년 대법원은 "포고에서 모든 정치활동을 중지하고 정치적 발언을 일체 불허한다고 규정하고 있어도 이는 국회의 고유권한을 제한하는 것으로는 해석되지 아니한다"며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내용의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즉 정치활동을 금지한 포고령 자체는 법적 근거를 갖춘 것이다.
다만 대법원은 정치활동 금지 포고령에 관해 "국회의 계엄해제권까지 무효화시키는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헌법 77조 5항은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리하면 계엄사령부가 정치활동을 제한할 수는 있지만, 국회의 계엄해제권까지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무엇보다 현재 국회는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어 단독으로 계엄을 풀 수 있다. 계엄사령부가 헌법을 어기지 않는 이상, 계엄은 애당초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회에 출동한 계엄군이 의원들의 본회의장 진입은 따로 막지 않은 점이 주목된다. 포고령의 위법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활동 반경을 최소화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언론 통제" 포고령 자체가 어불성설
그 밖에 계엄사령부는 포고령을 대부분 이행하지도 못하고 해산을 맞이했다. 대표적인 게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고 규정한 포고령 3항이다. 당장 시사저널 편집국은 계엄사령부로부터 어떠한 지시도 받은 적이 없다. 3일 밤에는 한 민영 통신사 명의로 "내일부터 우리 편집국이 계엄사령부 지휘 아래 있게 됩니다"라고 적힌 글이 지라시 형태로 돌았다. 그러나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기자협회 관계자는 "협회나 개별 언론사가 계엄사로부터 지시를 받았다는 내용은 확인된 바 없다"고 전했다. 과거와 달리 수많은 매체가 온라인 기사를 실시간으로 쏟아내는 현실을 고려하면, 언론을 통제한다는 발언 자체가 어불성설이란 지적도 나온다.
현장 상황과 맞지 않는 내용을 포고령에 넣기도 했다.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해야 한다"고 규정한 5항이다. 의대 증원으로 불거진 의료대란을 일거에 해결하기 위해 만든 조항으로 보인다. 이는 1980년 신군부가 계엄 선포를 강요한 뒤 내놓은 '포고령 10호'에는 없던 내용이다.
의료계는 전공의 대부분이 이미 사직서를 낸 상태라 '파업'은 없다고 강조했다. 최안나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현재로선 사직 전공의로서 파업 중인 인원은 없다는 것을 계엄사령부에 밝힌다"라고 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는 입장문을 통해 "사직한 의료인은 과거 직장과의 계약이 종료되었으므로 '파업 중이거나 현장을 이탈'한 것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계엄이 나쁜 선례로 남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계엄 선포가 합법화되는 국가비상사태가 실제 일어날 경우, 대통령의 계엄령이 신뢰를 잃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청와대 출신 한 변호사는 "대통령이란 자리가 양치기 소년 정도로 전락해 버린 느낌"이라며 "이제 정말 늑대가 나타나면 어떻게 시민들을 설득할 건가"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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