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살의 초보 감독 팻 머피, 공감형 명장이 궁금하면 그를 보라
#1.
스프링 트레이닝 때였다. 운동 중이던 크리스티안 옐리치와 브라이스 투랑에게 ‘머프’가 다가왔다. 대화하던 중 그는 후드 티 주머니에서 팬케이크를 꺼내서 옐리치 등에게 줬다. 일명 ‘머프의 파우치 팬케이크’다. 어떤 날은 주머니에서 와플이 나왔다. 어떤 날은 계란말이였다. ‘머프’를 차기 사령탑으로 적극 추천했던 옐리치는 말했다. “그가 어떤 음식을 당신에게 준다고 하면 꼭 거절하세요.”
#2.
60일 부상자 명단에 있던 개릿 미첼은 2024년 7월5일(현지시각) 엘에이(LA) 다저스전에서 6회 2아웃 이후 상대 실책으로 출루했다. 다저스 마운드에는 우완 타일러 글래스노가 있었고, 타석에는 거포인 리스 호스킨스가 있었다. 밀워키 브루어스는 1점 차이로 앞서 있었다. 도루하기에 적합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글래스노가 두 차례 속구를 던질 동안 미첼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답답했던 더그아웃의 ‘머프’는 큰 소리로 소리쳤다. “헤이, 프레디(다저스 1루수)! 옆에 있는 미첼에게 달리라고 전해줄래?”
#3.
‘머프랜드’(밀워키 브루어스)에는 누구나 별명을 갖고 있다. 투랑은 ‘슬림’(Slim·날씬한), 잭슨 추리오는 ‘잭 잭’(Jack Jack)으로 불린다. 이 때문에 팀의 미디어 세션을 처음 접한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구단 홍보팀은 ‘머프 별명 용어집’까지 만들었다. 별명을 보면 어떤 것은 매우 그럴듯한데, 어떤 것은 아예 왜 그렇게 불리는지 알 수 없다. 구원 투수 재러드 코닉의 경우도 ‘머프’가 왜 자기를 “드럼스틱”으로 부르는지 전혀 모른다. 하지만 팀 모두가 그렇게 부른다. 팻 머피 감독을 ‘머프’로 칭하듯이 말이다.
메이저리그(MLB) 내셔널리그 중부리그에 속한 밀워키 브루어스가 2024년 9월 뉴스레터를 통해 풀어놓은 팀 사령탑, 머피 감독에 대한 이야기 중 몇 개를 추려본 것이다. 65살의 나이에 처음 빅리그 사령탑이 된 그는 이렇듯 유쾌하다. 때로는 짓궂기도 하지만 말이다.
주머니에서 팬케이크 꺼내 주고, 별명 지어주고
머피 감독은 2024년 11월19일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발표한 내셔널리그 ‘올해의 감독상’에 선정됐다. 사령탑 데뷔 첫 시즌에 밀워키를 93승69패, 중부지구 1위로 이끌었다. 전미야구기자협회가 ‘올해의 감독상’ 수상자 투표를 시작한 1983년 이후 밀워키 감독으로는 첫 수상이다. 또한 메이저리그 경험이 없지만 올해의 감독상을 받은 10번째 사례도 된다. 1958년생인 머피 감독은 빅리그 경험이 전혀 없는 마이너리그, 독립리그 출신의 사령탑이다. 프로 선수 경력은 고작 4년밖에 안 된다. 대학 시절에는 포수와 내야수를 맡았고, 가끔 투수도 했다.
그의 지도자 생활은 대학야구에서 시작됐다. 1988년부터 1994년까지 노터데임대학에서 선수를 지도했고, 1995년부터 2009년까지는 애리조나주립대 감독으로 있었다. 1998년에는 통산 500승을 거둔 최연소 대학야구 사령탑이 됐다. 그가 노터데임대학, 애리조나주립대학에서 거둔 통산 승수는 947승(400패2무). 그가 대학야구의 전설로 불리는 이유다.
프로 코칭 무대를 밟은 것은 2010년이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야구 운영 특별 보좌관으로 채용됐다. 마이너리그 트리플A 감독 등을 거쳐 2015년 6월16일부터는 해고된 버드 블랙 감독 대신 감독대행으로 샌디에이고를 시즌 끝까지 이끌었다.
2016년부터는 밀워키에 몸담았다. 크레이그 카운셀 감독을 돕는 벤치 코치 역할이었다. 카운셀 감독과는 노터데임대학 때 사제의 연이 있었다. 카운셀 감독은 늘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세 사람이 있는데,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팻 머피”라며 “그가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해왔다. ‘카운셀 감독-머피 벤치 코치 체제’는 8년간 이어졌다.
주전들 이탈과 부상 속 다양한 선수에게 기회 줘
2023시즌 직후 카운셀 감독은 중부지구 맞수 시카고 컵스 사령탑으로 이직했다. 컵스는 카운셀 감독에게 5년 4천만달러(560억원)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밀워키는 카운셀 감독을 대체하기 위해 그를 8년간 곁에서 보좌했던 머피 벤치 코치를 새 사령탑으로 임명했다. 8년간의 밀워키 조직 경험을 우대했다. 그렇게 머피 감독은 65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정식 사령탑이 됐다. 머피 감독은 당시 상황에 대해 “나는 일자리를 얻었지만 그것을 위해 애쓰지 않았다. 내 인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라고 돌아본다.
그의 앞길은 험난했다. 사이 영 수상자 코빈 번스(볼티모어 오리올스)는 트레이드로 팀을 떠났고,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던 브랜던 우드러프는 어깨 부상을 당했다. 선발에 구멍이 생긴 것을 머피 감독은 다양성으로 메웠다. 시즌 내내 17명의 선수가 선발로 밀워키 마운드에 섰다. 오프너(경기 첫 번째로 던지는 선수)도 몇 명 있었다.
마무리 데빈 윌리엄스가 허리 피로 골절로 시즌 대부분을 쉬면서 12명의 불펜 투수가 최소 한 번 이상의 세이브를 올렸다. 그런데도 메이저리그 전체 다섯 번째로 좋은 팀 평균자책점(3.65)을 기록했고, 불펜 평균자책점은 클리블랜드 가디언스(2.57)에 이어 2위(3.11)에 올랐다. 그만큼 적재적소에 선수를 기용했다고 할 수 있다. 공격 또한 2009년 이후 가장 생산적인 시즌(777득점)을 보냈다.
머피 감독은 대학 감독 시절 엘리트 선수를 스카우트하기보다는 가능성 있는 선수를 택해 팀과 함께 성장하는 식으로 지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신인왕을 거쳐 최우수선수상(MVP)까지 받았던 작은 키(175㎝)의 더스틴 페드로이아도 그렇게 메이저리거가 됐다. 카운셀 감독도 마찬가지다. 밀워키에서도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면서 ‘머프랜드’를 만들었다.
‘답은 선수들 안에 있다'는 믿음과 복제불가 소통능력
메이저리그 안팎에서 머피 감독에 대한 평가는 이렇다. 우직하고 승부욕 또한 누구보다 강하지만 공감 능력은 최고라고. 혹자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머피 감독의 능력은 복제하기 어렵다”라고까지 말한다. 그러한 능력이 어수선하던 팀을 다시 일으켰다. 머피 감독이 야후스포츠와 인터뷰했던 말로 글을 마친다.
“나는 감독이 모든 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믿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길을 가는 걸 보기를 좋아한다. 시즌 전 사람들은 우리 팀이 엉망이라고 했지만 선수들은 그들이 엉망이 아님을 증명해냈다. 그러니까 이제 그들이 무엇이 그들을 위대하게 만드는지 알기 바란다. 내가 무엇을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다.”
김양희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장 whizzer4@hani.co.kr
* 오랫동안 야구를 취재하며 야구인생을 살아온 김양희 기자가 야구에서 인생을 읽는 칼럼입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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