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떡에 밀려난 이불가게의 절규 : 광장시장의 두 얼굴 [視리즈]
광장시장의 이면 2편 두 얼굴
먹거리에만 집중돼 있는 인기
빈대떡에 밀린 한복ㆍ이불 가게
빛과 그림자 공존하는 광장시장
1년 6개월 지나도 여전한 모습
상인 노력과 지자체 지원 필요해
넷플릭스 다큐 덕에 외국인들의 한국 필수 관광코스로 떠오른 광장시장. 방문객의 70%가 외국인 관광객인 이곳은 평일에도 북적이는 인파로 시장 통로를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시장 중앙을 조금만 벗어나면 침체의 흔적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더스쿠프가 1년 6개월 만에 광장시장을 다시 찾았다. 달라진 건 없었다.
2019년은 광장시장에 커다란 분기점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길 위의 셰프들'에 광장시장이 등장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기 때문이다. '길 위의 셰프들'은 광장시장을 빠르게 변하는 서울 속에서 '전통의 맛'과 '가족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로 소개했다. 이곳이 외국인들의 필수 관광코스로 떠오른 건 오로지 이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2023년 6월. 우리는 광장시장의 매력과 한계를 지면에 담았다. 먹거리에 집중된 인기, 상대적으로 초라해진 전통의 한복집들, 먹거리 노점만 벗어나면 썰렁해지는 거리…. 그곳엔 빛과 그림자가 공존했다.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또다시 흘러간 지금, 광장시장은 어떤 모습일까. 이전의 문제점을 모두 털어냈을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11월 19일 오후 2시, 광장시장. 입구에 둥지를 튼 찹쌀 꽈배기 가게가 손님을 반긴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 관광객 30여명이 줄지어 서 있다. 통로 중앙에는 빈대떡ㆍ김밥ㆍ떡볶이ㆍ칼국수 등 다양한 음식을 파는 노점상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노점상 의자에 둘러앉은 외국인 관광객들은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며 낯선 음식을 즐기느라 바쁘다.
이제 외국인 관광객들은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SNSㆍ유튜브 등 다양한 채널에서 광장시장을 접한다. 일본에서 온 18살 동갑내기 사야양과 아카리양은 "아이돌 트와이스를 좋아해서 한국 콘텐츠를 찾아보던 중 광장시장을 알게 됐다"며 "김밥 등을 파는 노점상은 야타이(屋台ㆍ일본식 포장마차)와는 또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어 재밌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겉만 보면 광장시장은 여전히 흥興하고 있다. 시장 중앙에서 김밥과 떡볶이를 파는 빙옥순(70)씨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해 장사는 잘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만 흥이 넘친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광장시장 중앙을 조금만 벗어나 골목길로 발걸음을 옮기면, 침체의 그림자가 깔려 있다. 시장 안쪽 한복ㆍ이불 골목을 찾는 이들은 거의 없다.
간혹 카메라를 든 외국인 관광객들이 두리번거리며 골목을 지나가긴 하지만, 단순한 '구경'일 뿐 가게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우리가 1년 6개월 전 봤던 그 모습 그대로다. 광장시장은 한때 한복ㆍ침구ㆍ포목ㆍ구제의류 등으로 유명했지만, 과거의 영광이다. 공실이 많이 생긴 한복별관 2층에는 스타벅스가 입점한다는 얘기까지 돌고 있다.
광장시장 한복가게에서 45년간 일해 온 정경배(64)씨는 "요즘은 팬데믹 때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며 "하루 종일 개시를 못할 때도 더러 있다"고 토로했다. 한복을 사는 것보다 중요한 날에만 빌려 입는 문화가 생기며 매상이 쪼그라든 것이다. 정씨는 "지금은 한복이 빈대떡에 완전히 밀렸다"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이불가게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이불가게 주인 송세연(가명ㆍ53)씨는 "외국인들은 광장시장에 오면 먹거리만 찾는다"며 "손님이 없어 하루 종일 놀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추귀성 광장시장 상인회장도 "광장시장 활성화를 위해 상인 교육 등 개선에 힘쓰고 있지만, 한복과 이불가게들이 침체한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대지면적 4만3000㎡(약 1만3000평), 건물면적 8만5000㎡(약 2만5757평)에 달하는 광장시장엔 수천개의 가게가 둥지를 틀고 있다. 종로구에 따르면, 그 수만 3413개(노점 제외)에 이른다. 광장시장이 먹거리에 특화한 곳은 아니란 거다.
그런데도 한복ㆍ이불 등 '비먹거리'를 위한 지자체 차원의 홍보는 미흡하다. 일례로, 종로구는 2024년 8월 이용객들이 광장시장의 노점을 좀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노점에 카드 단말기를 보급했지만, 비먹거리 가게에는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광장시장에 내리깔린 그림자를 걷어낼 방법은 없을까. 정란수 한양대(관광학부) 교수는 "광장시장은 일반적인 재래시장이라기보다는 생필품을 사지 않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면서 말을 이었다.
"한복가게는 저고리 등 외국인 관광객들이 좋아할 만한 굿즈를 개발하고, 이불가게는 여행객들이 바로 쓸 수 있는 무릎이불을 파는 등 상황을 타개할 만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관광객들이 좋아할 만한 상품을 파는 청년 상인들의 유입도 필요해 보인다. 상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지자체의 정책적 지원도 긴요하다."
넷플릭스로 흥한 광장시장은 모두가 흥하지 않았다. 화려한 겉모습의 뒤편엔 감당 못할 임대료, 가게 간 양극화, 불균형적 성장 등 고질병이 자리잡고 있다. 1년 6개월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먹거리만 주목받는 광장시장은 계속해서 인기를 끌 수 있을까.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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