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동백마을 카페엔 정원, 전시장, 그리고 ‘민머리 탈출 음료’
민머리(대머리) 탈출용 음료를 파는 데가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나미아 잡화점의 기적’에 등장하는 잡화점 같은 곳인가 싶지만, 그런 건 아니다.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2리 동백마을에는 ‘레스빠스’가 있다. 2년 전 이 마을에 정착한 카페다. 본래 서울 11곳에 지점이 있던 카페다. 코로나 사태로 지금은 제주 레스빠스만 남았다. 주인은 건축가인 레이어디자인 윤준호(43) 대표. 그는 건축사사무소 오끼도 운영한다. 제주 사람도 아닌 그가 서귀포시 중산간에 있는, 유명 관광지도 아닌 데에 카페를 차린 이유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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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름다운 이 마을을 종종 다녔는데, 지금 레스빠스 자리에 있는 건물이 매물로 나와 덜컥 차리게 됐다”고 말한다. 건축가다운 이유도 있었다. “70년대 농협창고 건물이었는데, 당시 건축의 아름다운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라 보존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나무 트러스트 구조의 천장과 콘크리트 벽을 살렸다.
레스빠스 메뉴엔 ‘젊어지는 동안라떼’가 있다. 윤 대표 집안 내력이 스민 음료다. “탈모 집안입니다. 친척들까지 죄다 민머리인데 저만 풍성하죠.”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의 모친이 어릴 때부터 꾸준히 먹인 게 있다고 했다. “검은콩과 검은깨로 만든 음료였죠.” 그는 모친의 레시피대로 음료를 만들었다. 다른 점은 꿀을 추가한 것. 그의 윤기 나는 풍성한 머리카락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음료 때문에 제 머리카락을 지킬 수 있었다”며 그가 웃으며 내민 ‘동안라떼’는 구수하면서 달큼했다. 달보드레하고 엇구수했다. ‘레스빠스’에 ‘미쉐린 가이드’ 기준을 적용하면 ‘오직 레스빠스를 경험하기 위해 충분히 올 만하다’고 평할 수 있다. 1487㎡(450평) 규모의 카페 가운데엔 전시장이, 정원에는 물이 흐르는 수로 등이 있다. 윤 대표가 직접 조경했다.
이 마을에는 레스빠스만 있는 건 아니다. 독특한 반려동물 숍도 있다. ‘제주펫’은 반려동물 식품 제조, 판매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제주에서 나는 흑돼지, 옥돔, 진피, 말고기, 당근 등으로 반려동물 간식을 만든다. 제주펫은 간식만 팔지 않는다. 반려동물 산책교육 ‘댕댕올레 산책 교육’와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섬강생이 내 집 마련 프로젝트’ 등도 진행한다. ‘강생이’는 제주말로 ‘강아지’란 뜻이다. ‘섬강생이 내 집 마련 프로젝트’는 유기견 프로필 사진을 홍보하는 기획 행사다.
홍진수 대표는 10년 전 제주로 내려온 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제주 잉여농산물에 눈길이 갔다고 한다. “첨가물 넣지 않는 건강한 펫 푸드”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반려동물도 취향이 있어요. 아무거나 잘 먹는 녀석이 있고 씹는 식감 좋아하는 녀석이 있지요.”
제주펫 건물 옆에 너른 잔디 운동장이 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반려동물 놀이터다. 1시간당 1만5천원.
동백마을은 ‘설촌’(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공동체)을 이룬 지 300년이 넘은 동네다. 지난해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가 ‘최우수 관광마을’로 지정할 정도로 아름다운 동네다.
돌담 밖으로 탈출을 감행한 귤나무, 토종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룬 마을 숲, 10m가 넘는 동백나무들, 새들이 노니는 참식나무, 생달나무, 팽나무 등 마을은 아름다운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집합체다. 이 마을 동백고장보전연구회가 생산하는 동백기름은 맛과 질이 좋아 명성이 높다. 조리용·식용·미용으로 나뉜다. 2010년엔 아모레퍼시픽과 재료 공급 협약을 맺을 정도였다. 누리집을 통해 판매한다. 동백기름 만찬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낮엔 고요한 평화가, 밤엔 짙푸른 어둠이 여행객의 마음을 쓰다듬는다. 극강의 고요를 선사하는 동백마을. 그들의 삶에 잠시 편입하는 여행에서 쉼의 미학을 터득한다.
미향취향은?
음식문화와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자의 ‘지구인 취향 탐구 생활 백서’입니다. 먹고 마시고(음식문화), 다니고(여행), 머물고(공간), 노는 흥 넘치는 현장을 발 빠르게 취재해 미식과 여행의 진정한 의미와 정보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제주/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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