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빚만 800만원”…베트남인 가이드의 임금체불 울분
“9개월 동안 일하면서 오히려 빚만 800만원 넘게 생겼어요. 당장 집 재계약해야 하는데 보증금이 없어 막막해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이주민센터 동행 사무실에서 만난 베트남인 응우옌(38)씨가 눈앞에 쌓인 정산서를 보며 말했다. ‘남산 버스’ 5만3200원부터 ‘기사 식비’ 24만원, ‘남이섬’ 29만원…. 서류에는 가이드 업무를 하며 수개월에 걸쳐 받지 못한 항목들이 세세히 표시돼 있었다. 임금체불을 당한 응우옌씨는 ㄱ여행사를 고소하고 민사소송도 진행하고 있다.
응우옌씨가 ㄱ여행사를 알게 된 건 1년 전이다. 2012년 결혼이주여성으로 한국에 입국한 그는 충남 아산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2019년 서울에 정착했다. 2018년 남편과 이혼을 하면서 이주민센터 등의 도움을 받았지만, 한국에서 어린 아들을 홀로 키우기 위해서는 자립을 해야만 했다. 아는 베트남 지인이 ㄱ여행사를 소개했다. 한국으로 여행 오는 베트남인들을 대상으로 여행 가이드를 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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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우옌씨는 지난 11월 ㄱ여행사와 구두로 계약했다. 지난 2월 회사 쪽이 ‘가이드 조건표’를 보면 인솔하는 인원에 따라 일비는 기본 5만원이 지급됐다. 이에 더해 영양제 등의 상품을 판매하면 응우옌씨에게 기본 2만원의 수수료가 지급되는 방식이었다. 여행객 전원이 100% 구매를 하면 상품 한 개당 각 1만원씩의 수수료가 더 붙었다. 150% 이상 판매시 1만1000원의 수수료가, 200%가 구매를 하면 2만원의 수수료가 보너스로 더 지급된다고 적혀 있었다.
일비가 턱없이 적다 보니 응우옌씨는 상품 판매에 더 열을 올렸다. 여행객 전원에게 판매를 한 날도 다수였다. 가이드 일을 하면서 들어가는 교통비, 숙소비, 기사 운전비, 관광지 입장료 등을 계산하는 회사 카드는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나중에 정산을 해주겠다”는 여행사의 말을 믿고 응우옌씨는 주변에서 돈을 빌려 비용을 마련해가며 일했다. 관광지 입장료, 버스 기사 일당, 주차료, 식당 밥값, 베트남인 인솔자 일당 등을 응우옌씨가 냈다.
하지만 회사 설명과 달리 정산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7월까지 18차례에 걸쳐 가이드를 했지만 가이드비, 보너스 판매 수수료 및 응우옌씨가 선지급한 비용 등이 제대로 지급된 적은 한 번밖에 없었다. 그렇게 응우옌씨가 받지 못한 누적 금액은 모두 864만1605원에 이른다. 응우옌씨가 매달 회사 쪽에 정산을 요청했지만 “투어비 입금 전까지는 가이드 정산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1억 넘게 미수로 남아 있는데 들어오면 정산을 해줄 것” “정산을 안 해줄 마음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결국 응우옌씨는 지난 7월 “800여만원의 임금이 체불됐다”며 노동청에 진정을 냈다. 조정기일에 만난 여행사 쪽 임원은 “프리랜서라서 처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법을 들먹였다. 뻔뻔한 회사의 태도에 절망하면서도, 한국 땅에서 한국의 노동법 앞에 선 응우옌씨는 한없이 작아졌다. 일을 하고 돈을 못 받았는데도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노동청 한가운데서 함께 간 베트남인 활동가를 붙잡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노동청은 결국 진정을 기각했다. 응우옌씨가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집 재계약을 위한 보증금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베트남에 있는 아버지가 아픈 상황에서 병원비를 보내지도 못하고, 친언니에게 빌린 돈만 이미 1억5000만동(826만원)에 이르렀다. 응우옌씨에게 남은 선택지는 없었다. ㄱ여행사 대표를 사기죄로 고소하고,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
그러나 경찰 조사 과정은 또 한 번의 상처였다. 조사를 받으러 가기 전 “통역이 필요하다”고 얘기했지만 경찰서에는 아무도 없었다. 경찰은 “회사 대표가 태국에 있어서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자격증도 없는데 왜 가이드를 했냐”며 응우옌씨를 타박했다. 응우옌씨는 “그날 같이 동행해 준 활동가가 한국어를 잘 하지 못했다면, 조사를 아예 못 받거나 제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저는 정당한 돈을 받으러 간 것인데, 저를 범죄자 취급만 하고 증거를 가져오라는 말만 반복했다”고 토로했다.
민사소송 과정에서 ㄱ여행사는 “원고(응우옌씨)가 제출한 해당 가이드 조건표는 임시이고, 4월에 확정된 가이드 조건표가 따로 있다”며 “무자격 가이드는 유자격 가이드와 같이 행사를 진행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일비를 지급하지 않는다고 명기했다”고 주장했다. 응우옌씨가 유자격 가이드와 동행하며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비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 외 비용에 대해서도 응우옌씨가 제대로 된 정산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했다.
응우옌씨는 ㄱ여행사가 법원에 제출한 약정서를 처음 본다고 반박했다. 응우옌씨는 “4월에 만들었다는 새로운 조건표에 대해서는 전달 받은 적도 없고, 무자격 가이드가 없으면 일비를 안 준다는 내용도 들은 적이 없다”며 “회사가 가라는 곳에 가고 매칭시키는 대로 일한 거지, 일비를 안 준다고 하면 내가 혼자서 새벽같이 전국을 오가며 일을 뭐하러 하나. 일당이 없으면 일을 할 이유도 없다”고 했다. 원옥금 이주민센터 동행 대표는 “베트남 사람들을 불러서 싸게 고용하고, 무자격자 혼자 일하면 불법이라는 것을 회사가 알면서도 단속을 할 때는 한국 여행 가이드를 내세워 피하고 있는 방식”이라며 “임금체불 문제가 터지자 마치 이 모든 게 가이드의 책임이라는 듯 떠넘기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응우옌씨 외에도 ㄱ여행사에서 일하던 다른 베트남인 1명도 600여만원의 임금을 받지 못했다. 그도 고소를 검토하고 있다. 원 대표는 “사업주들이 외국인을 고용해 이용하고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고, 임금을 달라고 하면 업계에서 일을 못 하게 한다고 겁을 주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며 “진정이나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흔치 않은데, 접수돼도 공공기관들은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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